[한국미술]K-무녀의 시공을 초월한 45년

《케이팝 데몬 헌터스》와 박생광의 <무속 3>

by 수다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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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케데헌》: 걸그룹과 무속신앙의 완벽한 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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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년 전 세계는 《케이팝 데몬 헌터스 K-Pop Demon Hunters》 앓이 중입니다. 《케데헌》은 현대문화인 K-Pop, 그 중에서도 걸그룹과 전통문화의 무속신앙을 결합한 “귀신 잡는 걸그룹”이라는 독특한 컨셉에서 출발한 애니메이션 영화입니다. 오프닝은 조선 시대부터 세 명의 무녀(巫女)들이 악귀를 물리쳐 백성들을 지켰고, 그 명맥이 루미, 미라, 조이라는 걸그룹 “헌트릭스(Huntrix)”로 이어졌다는 계보를 보여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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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귀 쫓는 3인조 걸그룹이라는 개념이 탄생할 수 있었던 건 두 가지 이유 덕분입니다. 첫째, 조선 시대 직업 예술가와 무당이 사회 최하층이었다는 역사와 둘째, 이 둘의 행위가 본질적으로 다르지 않다는 점이죠. 현재 한국에서 가수는 아티스트로 인정받지만 오랫동안 “딴따라”라며 하대 받았습니다. 조선의 국교인 유교는 음악을 비롯하여 서예와 회화를 사대부들의 자기 수양의 필수로 강조했습니다. 하지만 직업 음악가, 미술가의 활동은 정신성이 결여되어 있다는 이유로 아마추어인 사대부들의 결과물보다 하등하다 여겨졌습니다. 게다가 음악과 서화(書畫)를 생계 수단으로만 이용하는 직업 예술가들을 노비와 백정, 스님이나 무당들과 함께 천민으로 분류하였습니다.


unnamed-18.jpg 박생광(1904-1985)


접신하여 벌어지는 굿판에서 무당은 악공들이 연주하는 북과 장구, 꽹과리에 맞춰 격렬하게 몸을 움직이고 주문을 외웁니다. 굿판은 여러 사람들 앞에서 진행되곤 합니다. 이러한 특징들로 인해 무속의 의미를 걷어내고 행위 그 자체면 보면 굿은 음악에 맞춰 춤추고 노래하는 공연 예술과 완벽하게 일치합니다. 조선은 고려 시대까지 개최된 연등회와 팔관회를 폐지하여 사람들이 대규모로 음악과 춤을 즐길 기회가 사라졌습니다. 한양은 그나마 저자거리에서 광대들의 노래와 춤을 볼 기회가 있었지만 시골은 전무했습니다. 굿판은 청각과 시각을 자극하는 진기한 광경이기 때문에 사람들은 오늘날 야외 공연을 즐기듯 굿판을 구경하러 몰려 들었습니다. 이렇게 두 가지 주요 이유로 걸그룹과 무속신앙이라는 전혀 다른 개념이 결합될 수 있었고 《케데헌》은 대 히트를 기록 중입니다. 그런데 지금으로부터 40년 전, 한국의 무속신앙을 미술로 표현하여 전 세계적으로 극찬을 받은 미술가가 있습니다. 바로 박생광(1904-1985)입니다.


2. <무속 3>: 굿판을 벌이는 젊은 무녀에 관한 그림


스크린샷 2025-09-17 오후 2.15.09.png 박생광, <무속 3> (1980)


국립현대미술관은 박생광의 <무속>이라는 제목의 작품 다섯 점을 소장하고 있습니다. 박생광은 1980년부터 1985년까지 6년 동안 <무속>이라는 이름을 붙인 작품들을 연이어 제작합니다. 그는 전국방방곡곡에서 벌어지는 굿판을 찾아다니며 현장을 스케치할 정도로 《무속》 시리즈에 열정을 바쳤습니다. <무속 3>(1980)에서 무당 모자를 깊게 눌러 쓴 무당이 등장합니다. 비록 모자에 눈이 가려져 있지만 오뚝한 코, 앵두같은 붉은 입술로 보아 이 인물은 여자 무당입니다. 이 무녀는 굿을 행할 때의 복장을 입고 있는 것으로 보아 굿판이 벌어진 중이라는 걸 알 수 있습니다. 실제로 만신의 앞에는 굿상이 차려져 있습니다. 상 위에는 가운데 돼지머리를 비롯하여 그 옆으로는 사과와 감, 무지개 떡 등이 올라가 있는 걸로 보아 고사를 지내는 것 같습니다. 무녀의 얼굴 왼쪽에는 노란색 저고리를 입은 여인이 딱 붙어 있습니다. 관람자에게 등을 보인 채 얼굴의 한 쪽 면만 보이며 마치 공중에 떠 있는 모습입니다. 그녀는 영적인 존재인 것으로 보입니다. 이 여인은 만신의 귀에 무언가를 속삭이는 듯 한 모습인데 무녀는 영적 존재가 해주는 말을 유심히 듣고 있는 것 같습니다. 만신은 노란 저고리의 영적 존재가 하는 말을 잘 들은 후 굿판을 의뢰한 사람들에게 전달해줄 것입니다.


3. <무속 3>: 한국적 무속신앙을 정확히 보여주는 그림

무녀의 뒤로는 이 만신이 섬기는 세 명의 신이 보입니다. 그림 왼편에 두 명의 신이 위치해 있습니다. 화면 맨 왼쪽의 신은 붉은색 의상을, 그 옆의 신은 옥색 의상을 입고 있습니다. 화려한 귀걸이와 족두리를 착용하고, 머리 뒤로 옥비녀가 꼽혀 있는 걸로 보아 이 두 신은 할미신일 겁니다. 화면 오른쪽에는 또 다른 신이 등장합니다. 왼쪽에 위치한 두 명의 할미신보다 더 크게 묘사되어 있으며 혼자 흉배가 부착된 다른 복장을 입고 있습니다. 게다가 오른쪽 신은 족두리가 아닌 훨씬 더 화려한 보관을 쓰고 있습니다. 오른쪽 신의 왼팔 아래에는 큼지막한 복숭아를 든 소년(童子)이 위치해 있습니다. 이를 통해 화면 오른쪽 신은 불교의 관세음보살이라는 걸 알 수 있습니다.


155604_108025_533.jpg 수월관음도


관세음보살은 생물학적으로는 남성이지만 화려한 의복과 보관으로 치장하여 남성과 여성의 면모를 동시에 지녔다고 알려진 보살입니다. 대승불교 경전인 『화엄경 華嚴經』에는 선재동자가 53명의 선지식을 찾아 남쪽으로 구법(求法) 여행을 떠나는 내용이 나옵니다. 그 여정에서 선재동자는 관세음보살을 친견(親見)합니다. 《수월관음도 水月觀音圖》는 이 장면을 표현한 도상입니다. 일반적인 《수월관음도》에는 달빛이 비치는 물가에 관음보살이 우아하게 앉아 있고 발아래 합장을 하거나 복숭아나무 혹은 커다란 복숭아를 든 선재동자가 등장합니다. 대승불교의 관음보살 신앙의 《수월관음도》 도상에 비추어 보아, 박생광의 <무속 3> 속의 화면 오른쪽의 신은 관세음보살입니다.


이처럼 전통 민간 신앙 속 할미신과 불교에서의 관세음보살이 동시에 등장하는 건 한국 무속신앙만의 독특한 특징입니다. 1392년 개창한 조선은 유교를 국교로 삼으며 불교를 강력하게 탄압하였습니다. 조선 왕조가 들어서자 불교는 살아남기 위해 총력을 기울여야 했습니다. 스님들은 점을 봐주거나 부적을 써주는 등 백성들의 길흉화복을 빌어주는 무속인과 같은 역할을 하여 민간의 시주를 받아 사찰을 유지하며 명맥을 이어 나갔습니다. 그 반대급부로 무속인들 역시 신당에 불교의 관세음보살을 모시며 무속신앙과 불교가 결합되었습니다. <무속 3>에서 할미신과 관세음보살이 동시에 등장하는 것도 이러한 한국의 독특한 무속신앙의 특징을 정확하게 반영한 결과입니다.


4. “한국의 피카소” 박생광


스크린샷 2025-09-17 오후 4.46.15.png 박생광, <노적도> (1985)


1904년 경상남도 진주 출신의 박생광은 1924년 일본 교토(京都) 회화전문학교(현 교토시립예술대학)에서 유학 후, 1930년 조선미술전람회 서양화 부문에 참가하며 미술가로서의 경력을 시작합니다. 그는 <노적도>를 제작하던 1985년 7월 18일 후두암으로 사망할 때까지 60년 동안 미술가로 살았습니다. 하지만 그는 50년 동안 큰 주목을 받지 못하였습니다. 1974년 미술가로서의 재도약을 위해 일본으로 건너갔지만 한계만을 느낀 그는 1977년 귀국하여 돌파구를 모색합니다. 그는 한국의 전통 민화에서 길을 발견합니다. 박생광은 민화의 소재뿐만 아니라, 오방색으로 대표되는 강렬한 색채와 투박한 표현을 적극 수용하며 자신의 회화 양식에 급진적인 변화를 주었습니다. 70대 중반인 1980년부터의 《무속》 시리즈로 박생광의 미술가로서의 커리어가 빛을 발하기 시작합니다.


201906091427590001.jpg 1985년 파리(Paris) 그랑 팔레(Grand Palais) 《살롱 Le Salon》전 공식 포스터


미술가 박생광의 진가는 해외에서 먼저 발굴되었습니다. 박생광은 1985년 파리(Paris) 그랑 팔레(Grand Palais)에서 진행된 《살롱 Le Salon》 전시회 한국 미술 특별전에 초청받아 《무속》 시리즈를 포함한 총 14점을 공개합니다. 박생광의 <무속>은 전시의 공식 포스터로 선정되었습니다. 현지 비평가들은 박생광을 “한국의 피카소”라며 극찬하였습니다. 파블로 피카소(Pablo Picasso, 1881-1973)는 큐비즘(Cubism)을 창시하고 이후 서양 modern art에 지대한 영향을 끼친 현대 미술의 불멸의 아이콘입니다. “한국의 피카소”라는 당시 파리 비평가들의 평가가 틀리지 않았다는 듯, 박생광은 1980년대 민중미술 발전에 엄청난 공헌을 하였습니다. 피카소가 큐비즘, modern art의 아이콘이듯, 박생광은 민중미술, 한국 현대미술의 아이콘이 되었습니다. 피카소라는 전설이 시작된 도시, 파리의 사람들(Parisien)들에게 “한국의 피카소”라며 극찬을 받을 수 있었던 건 박생광이 한국의 전통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해냈기 때문입니다.


5. 가장 한국적인 게 가장 세계적인 것

“가장 한국적인 게 가장 세계적인 것”


1990년대 초반 이 문구는 한국 사회에 대단히 유행한 캐치프레이즈(catch-phrase)였습니다. 19세기 후반부터 20세기까지 최악의 시련을 겪은 우리 민족은 1970년대 중/후반이 되어서야 그 동안 전(前)근대적, 후진적이라 폄하되었던 고유한 문화와 전통을 되돌아보기 시작하고 한국인의 정체성에 대해 처음으로 의문을 제기합니다. 1981년 한국은 86아시안게임, 88하계서울올림픽의 두 메가 스포츠를 유치하면서 정상국가 이미지를 만들어야 했으며 세계화에 본격 합류해야만 했습니다. 1980년대에 외국의 문화가 갑자기 쏟아져 들어오면서 우리의 역사, 전통과 문화, 정체성에 관한 고민은 더욱 깊어졌습니다. 약 20년 동안의 혼란을 거친 후, 1990년대 초 한국 사회는 “가장 한국적인 것이 가장 세계적인 것”이라는 결론을 도출해냅니다.


스크린샷 2025-09-17 오후 2.09.44.png 박생광, <무속 4> (1980)


2000년대 초반 드라마를 주축으로 한류(韓流) 현상이 발생합니다. 한류는 2010년대에는 드라마에서 K-Pop으로 중심축이 바뀌며 더 넓은 지역으로 퍼져나갔습니다. 2020년대에는 K-Culture라는 용어로 완전히 대체되며 전 세계 주류 문화로 급부상합니다. 이런 상황에서 2025년 《케데헌》이 공개되어 K-Culture의 새 역사를 쓰고 있습니다. 《케데헌》은 무속신앙, 무녀, 한옥, 한복과 갓, 민화 등 외국인들에게 잘 알려지지 않은 전통문화를 현대적인 방식으로 세련되게 전달함으로서 “가장 한국적인 게 가장 세계적인 것”이라는 1990년대 초 한국 사회가 내린 결론이 옳았음을 증명해주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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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범 김구(1876-1949) 선생은 「나의 소원」(1947)에서 이렇게 고백하였습니다.


오직 한없이 가지고 싶은 것은 높은 문화의 힘이다.


《케데헌》의 대성공으로 사람들은 김구 선생이 하늘에서 현재의 대한민국을 자랑스럽게 지켜보고 있을 거라 이야기합니다. 김구 선생 옆에서 박생광 화백 역시 흐뭇하게 이 상황을 바라보고 있을 것 같습니다. 박생광은 한국 전통미학을 현대적 미학과 성공적으로 결합한 《무속》 시리즈로 국내보다 미술의 본고장인 유럽에서 먼저 그 진가를 인정받았습니다. 2025년은 그런 박생광의 서거 40주년이 되는 해입니다. 2025년 올해 《케데헌》이 등장해 신드룸을 일으키고 있는 게 우연은 아니겠죠? 45년 전 붓으로 K-무속을 그려낸 박생광, 그리고 2025년 애니메이션 《케이팝 데몬 헌터스》로 재탄생한 K-무속. 한국 전통문화가 지닌 힘은 시공을 초월하고 있습니다.


스크린샷 2025-09-17 오후 2.01.44.png 박생광, <무속 12> (19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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