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등이란 개념 자체라곤 전혀 없는 유튜브 알고리즘의 냉혹한 현실
유튜브 [미술에 관한 모든 수다]를 시작한지 1년 6개월 정도가 되었다. 구독자 0명에서 시작해서 300명이 되는데 1년하고 6개월이 걸렸다. 채널 개설 3개월만에 몇 천, 혹은 만 명 이상의 구독자를 모은 사람들을 보면 자괴감이 이로 말할 수 없는 수준이다. 하지만 그들은 자극적인 소재가 아니더라도 심리, 사주 등 사람들이 일반적으로 흥미가 있는 주제를 다루는 채널이다 보니 나처럼 마이너 중의 마이너하면서도 노잼인 채널과 무작정 비교하기에는 무리가 있고 단기간에 그들이 이룬 성과이 부럽기는 하지만 질투의 감정으로 번지지는 않는다.
구독자는 비록 300명이 되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영상의 조회수는 최근 몇 달 동안 오히려 떡락을 맛보고 있다. 조회수도 형편없고 심지어 노출수도 1,000을 넘지 못한다. 어떤 사람들은 올린지 30분만에 조회수 자체가 1,000을 넘던데 3주 전에 올린 영상의 노출 자체가 1,000을 넘지 못하다니 채널이 망한 게 분명하다. 그저 저 하나의 영상만 그런 게 아닌 몇 달째 저 수준이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유튜브 검색창에 "미술", 혹은 "라파엘로", "종묘" 등 최근 두 개의 영상의 주제에 관한 기본 단어만 넣은 채 검색을 해봤다. 해당 영상은 고사하고 심지어 채널 개설 이후 지금까지 꾸준히 미술 콘텐츠를 다루고 있지만 '미술'이라는 검색어로는 내 영상과 내 채널 자체도 아예 검색이 되지 않는다. 유튜브에서 나는 콘텐츠 공급자로서 1년 6개월 동안 참여하고 있지만 유튜브 세상에서 나는 없는 사람과 다를 바 없다. 나는 존재하지만 존재해서는 안 되는 유튜브 측에서는 있어서는 노출되어서는 안 되는 시장에서 자연 도태되어야 할 존재 취급을 받고 있다. 화가 난다. 열받는다. 정말 기분이 말 그대로 뭣같은 수준이다. 콘텐츠 소비자들에게 온전히 평가받을 수 있는, 즉 기회의 평등이란 건 유튜브 세상에서는 있을 수 없는 개념이다. 유튜브에서는 소비자인 인간에게 평가를 받기 전에 알고리즘이라는 눈에 보이지 않는 실체에게 평가를 받는데 그 알고리즘에게는 기회의 평등이라는 개념따위는 없는 말그대로 불평등한 세계 그 자체이다.
챗GPT에게 이 열받는 상황을 물어보니 유튜브의 검색 매커니즘은 우리가 흔히 아는 매커니즘이 아닌 말그대로 쉽게 말하면 인기가 있는 것들만 추려서 보여주는 매커니즘이라고 한다. 결국 강한자만이 살아남을 수 있고 승자독식 체계라는 거다. 나처럼 노출 자체가 안 되는 채널이나 영상은 검색어에 친절하게 해당 내용의 키워드를 넣고 검색을 해도 검색 자체가 되지 않는 게 유튜브 세상이라고 한다. 세상에 이런 불합리와 부조리, 불평등이 있을까? 난 단지 노출이 안 될 뿐 만약 "미술"이나 종묘 관련 콘텐츠면 종묘 키워드를 유튜브에서 검색하면 당연히 내 관련 영상이나 내 채널이 뜰 줄 알았다. 하지만 나에 관한 정보는 전혀 뜨지 않는다. 그냥 나는 없는 사람일 뿐이다.
한 마디로 유튜브의 알고리즘은 철저히 계량화 된 데이터를 기반으로 한다는 거다. 그 콘텐츠가 질적으로 우수한지 그렇지 않은지, 이 사람이 얼마나 진정성을 보이는 지 따위는 전혀 중요하지 않다. 그런 건 숫자와 수학을 기반으로 한 알고리즘에서는 전혀 파악될 수 없다. 아니 알고리즘 뿐만 아니라 양적 데이터 혹은 양적 데이터를 기반으로 한 계량분석의 모든 양적 정보는 질적 수준에 대한 정보를 전혀 포함하지 않는다. 어쩐지 그래서 자꾸 내 유튜브에는 AI로 만들고 TTS 기능으로 듣기 싫은 기계 목소리로 나레이션이 녹음된 영상들과 어디서 연예인 영상들 짜깁기 한 쇼츠, 외국의 릴스나 틱톡 계정에서 가져 가쉽이나 반려동물 영상을 재편집한 쇼츠 영상들만 줄줄이 뜬 건 그게 인기는 있을지언정, 즉 양적인 기준으로는 성공적이지만 그 영상이 질적으로 우수한지에 관한 정보는 전혀 고려 대상이 아닌, 아니 질적 수준에 대한 정보 자체를 반영할 수 없는 알고리즘의 비인간적인 본질 때문인 거다. 도대체 너같은 멍청한 알고리즘 따위가 뭔데 감히???!!!
드럽게 열이 받는 상황이지만 근데 나에게는 선택권이 없다. 알고리즘 혹은 양적 데이터가 기반이 된 오늘날과 같은 사회에서 이 게임의 룰에 휘둘리고 싶지 않으면 나는 이 게임의 판에서 전혀 아쉽지 않다는 식으로 카드를 던지고 미련없이 퇴장하면 된다. 이런 표피적, 표면적이고 깊이라고는 없는 판에 더 이상 휘둘리지 않을 거야. 라고 하면 이 세상에 어느 한 사람이라도 아쉬워 할 사람이 없다. 유튜브도 300명이라는 구독자도. 300명의 구독자 중 내가 당장 사라지더라도 아쉬워할 사람이 있다면 그 구독자들이 사이에서라도 영상이 조회가 되겠지. 하지만 시청자 중에 구독자 비중도 거의 없다는 건 내가 그들의 구독 리스트에서 사라지더라도 [미술에 관한 모든 수다] 채널이 더 이상 어떠한 업데이트도 이루어지지 않더라도 전혀 아쉬울 사람이 없다는 뜻이겠지. 그저 지금 이 상황에서 아쉬운 사람은 오직 나, 수다인 뿐이다. 그만큼 나는 지금 이 유튜브의 성장, 유튜브를 통해서 [미술에 관한 모든 수다]라는 채널과 그 채널의 계정 주인이자 브런치스토리에서 작가랍시도 글을 쓸 수 있는 [수다인]이라는 사람을 브랜드 화해서, 내가 그토록 꿈꾸던 성공한 사람으로서의 나를 만들기 위한 기반을 다지는 게 절실하기 때문이다. 이 판이 너무 X같지만 이 X같은 판에서 그만 GG를 치고 나가기에는 나에게는 다른 선택권이 없다는 거다.
아마 이런 열받고 어이없고 답답한 감정은 불합리한 노동환경에서 노동착취를 당함에도 당장 이 일을 그만두면 더 이상 갈 곳이 없고 더 이상 물러날 곳이 없다는 노동자들의 절박한 심정과 크게 다르지 않겠지? 다만 그들에게 불합리를 선사하는 주체는 기업, 회사 라는 보이는 실체인 반면, 나는 유튜브 알고리즘이라는 보이지 않는 fucking shit일 뿐인거고. 나는 계량화된 평가를 대단히 싫어한다. 그것을 무조건 신뢰하는 것도, 이를 만병통치약이라고 생각하는 사회과학 분야의 계량주의자들도. 그들에게 세상은, 사회는 그저 숫자로 치환될 수 있는 것들일 뿐이다. 숫자가 점점 더 사회를 지배할 수록 사회는 점점 더 표피적이고 피상적이고 비인격화될 수밖에 없다. 검색 엔진, 자동추천 등등 알고리즘이 우리의 일상의 지배하는 오늘날, 우리가 사는 현실이, 사회가 더더욱 깊이란 없고, 피상적이고, 질적인 가치는 중요하지 않으며 진지함이란 결여되고 삭막하고 비인격화되는 건 예상된 일이었다. 그런데 그 피해가 유튜브 세상에서 콘텐츠 생산자/공급자로서 참여하니 그게 더 절절히 느껴진다. 이런 세상에서 나처럼 X도 아무것도 없는 사람은 대체 어떻게 살아 가고 살아 남으라는 말이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