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과 유럽은 진정한 동지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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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인트로
뺏을 것인가? 지킬 것인가? 덴마크령 그린란드(Grønland)를 두고 2026년 현재, 미국과 유럽이 갈등을 빚고 있습니다. 미국과 유럽은 현재는 영토를 놓고 경쟁 중이지만 약 70년 전에는 미술의 주도권을 놓고 경쟁했습니다. 현재의 그린란드, 과거의 미술을 통해, 오랜 우방 사이로 알려진 미국과 유럽의 보이는 것보다 훨씬 복잡한 관계에 관한 이야기를 해보고자 합니다.
2. 2026년 미국 vs. 유럽
2025년 1월 미국 대통령에 취임한 직후부터 도널드 트럼프(Donald Trump, 1946-)는 그린란드에 대한 욕심을 숨기지 않았고 같은 해 3월에는 무력을 써서라도 그린란드를 차지하겠다 밝혔습니다. 2025년 초만 하더라도 국제사회는 기인으로 알려진 트럼프의 여러 기행들 중 하나일 뿐으로 치부했지만, 2026년 벽두부터 미국의 그린란드 편입에 반대하거나 지지하지 않는 국가들에게는 관세를 이용해 응징하겠다고 나서면서 상황은 급변하게 됩니다. 이미 보편관세 적용으로 한다면 한다는 걸 보여준 트럼프였기 때문에 자국의 영토를 지키기 위해 덴마크가 가장 먼저 그린란드에 군대를 배치하였습니다. 곧바로 2026년 1월 15일 프랑스의 엠마뉘엘 마크롱(Emmanuel Macron, 1977-) 대통령이 제1차 병력을 급파했고 수일 내에 추가 병력 파견 계획을 밝혔습니다. 독일 역시 병력을 파견했고 다른 유럽 국가들도 이에 동참하며 유럽연합(European Union, UN)이 미국의 그린란드 문제에 대항하는 행동을 개시한 겁니다. 최근에는 EU 내에서 유럽 전체가 참여하는 유럽군 창설 안까지 제기되기에 이릅니다.
트럼프는 취임 직후부터 미국의 국익을 이유로 군사 동맹 국가인 한국과 일본을 비롯해 오랜 우방 국가인 캐나다 및 영연방국가들과 심지어 유럽에게도 적으로 돌릴만한 행동을 누적해 오고 있습니다. 2026년은 미국 탄생 260주년이 되는 해입니다. 미국은 1776년 7월 4일 독립 과정에서 영국과 심각한 갈등을 겪었지만 19세기가 되면 유럽과 긴밀한 관계를 맺습니다. 제2차 세계대전(1939-1945) 동안 미국은 독일·이탈리아와는 싸웠지만, 영국 및 소련(현 러시아)은 미국과 연합하기도 했습니다. 제2차 세계대전 종전 직후 시작된 소련과의 냉전에서 서유럽은 미국의 강력한 지지 세력이 되어 유럽과 공고한 관계를 유지해왔습니다. 하지만 도널드 트럼프로 인해 200년 이상 이어져 온 미국과 유럽의 긴밀한 우방 관계는 심각한 균열이 발생하고 있습니다.
3. 유럽의 마지막 자존심, 문화
미국과 유럽의 오랜 우방 관계는 현실 정치에서는 도널드 트럼프로 인해 흔들리기 시작한 것처럼 보이지만 이미 70여 년 전 미술 분야에서 심각한 갈등을 겪었습니다. 1930년대부터 극우 정당이 정치 일면을 장악하면서 유럽 본토는 빠르게 우경화 되었습니다. 위기감을 직감한 유대인을 비롯한 소수자들은 보다 안전한 미국으로 이주하며 1930년대 초반부터 이미 유럽은 서구의 문화 중심지로서의 근간이 흔들리고 있었습니다. 제2차 세계대전으로 유럽 주요 국가들은 철저히 황폐화되었고 종전 직후에는 문화의 주도권마저도 미국에게 완전히 빼앗기게 됩니다. 이미 1900년대부터 유럽 대륙과 미국과의 경제적 격차는 눈에 띄기 시작했으며 미술·음악과 같은 문화·예술은 미국에 대한 유럽의 마지막 남은 우월감의 보루였습니다. 6년 동안 지속된 제2차 세계대전으로 유럽은 잿더미로 변했고, 먹을 것이 없어 미국의 식량 배급에 전적으로 의지해야만 하는 상황이었습니다. 종전 직후 유럽인들에게 문화와 예술은 그저 사치일 뿐이었습니다.
4. 미국 미술의 승리, 추상표현주의
미국은 이미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나기 전부터 같은 연합국이었던 소련과 또 다른 전쟁인 냉전(Cold War)을 준비합니다. 1945년 8월 15일 일본마저 무조건적인 항복을 선언하자 미국과 소련은 총성 없는 전쟁에 돌입합니다. 정치적으로는 자유주의, 경제적으로는 자본주의를 기반으로 한 미국과 사회주의와 공산주의를 기초에 둔 소련은 세계의 패권을 두고 다투기 시작합니다. 중립국인 오스트리아와 스위스를 축으로 유럽의 서쪽은 미군이, 동쪽은 소련의 군대가 주둔하며 자신들의 세력을 확보하고 나섭니다. 미국과 소련의 경쟁은 유럽뿐만 아니라 아시아, 아프리카, 중·남미 등지로 이어집니다. 미국이 자신의 세력을 확장하기 위해 사용한 무기는 경제 원조입니다. 미국은 1947년부터 제2차 세계대전으로 황폐해진 유럽, 식민지에서 독립한 아시아와 아프리카 국가들의 재건을 위해 ‘마샬 플랜’(Marshall Plan)이라는 이름으로 막대한 자금을 투입하였습니다. 마샬 플랜은 공여국인 미국과 수원국들 모두에게 이득이었습니다. 수원국들은 빠르게 전후 복구에 성공하여 불황에 따른 정치적 소요를 피할 수 있었습니다. 미국은 사회주의 공산주의 진영에 넘어갈 가능성이 높은 국가들을 소련에 빼앗기지 않음으로써 자신들의 지지 세력을 확대하며 거대 진영을 구축할 수 있었습니다.
미국은 마샬 플랜을 실행하는 동안 유럽 대륙에 추상표현주의(Abstract Expressionism)를 적극적으로 소개하였습니다. 건국 이후, 미국에서도 미술 운동이 발생했지만 이는 어디까지나 유럽 미술의 아류이며 국제 양식으로 거듭나지 못하였습니다. 제2차 세계대전으로 미국은 경제뿐만 아니라 정치적으로도 유럽 전체를 압도하는 초유의 상황을 맞이하게 되었고 추상표현주의는 이런 초유의 순간에 미국에서 발생한 미술 운동이었습니다. 추상표현주의를 적극적으로 옹호한 미술비평가 클레멘트 그린버그(Clement Greenberg, 1909-1994)는 1948년 미국이 마침내 미술에서도 유럽을 압도했다는 승리감을 노골적으로 이렇게 표현했습니다. “서양미술의 전통은, 산업 생산력과 정치권력의 중심축과 더불어, 마침내 미국으로 건너왔다.”
1950년대 미국 정부는 뉴욕(New York)의 현대미술관(Museum of Modern Art, MOMA)이 기획한 추상표현주의에 대한 유럽 순회전을 적극적으로 지원합니다. 표면적으로는 전쟁으로 문화·예술을 향유할 여유가 없는 유럽인들에게 문화에 대한 기본 권리를 충족시켜주기 위한 인도적 차원이라 홍보했지만, 본질은 미국이 그 이전까지는 얻지 못했던 문화적 주도권마저도 유럽에게서 얻어 냈다는 일종의 승전 기념식과 같았습니다. 미술사학자인 세르쥬 길보트(Serge Guilbaut, 1943-)는 이러한 미국의 속내를 정확히 간파해 문화적 제국주의라며 맹비판하기도 하였습니다.
5. 새로운 미술 운동이 필요한 프랑스
제2차 세계대전 종전 직후 유럽인들은 경제적 궁핍함으로 고통스러워했지만 서구 문화·예술의 중심지라는 위상마저 미국에게 빼앗기게 된 현실에 더 큰 정신적 충격을 받았습니다. 유럽의 자존심을 사수하기 위해 프랑스가 반격에 나섰습니다. 루이14세(Louix XIV, 1638-1715) 시대부터 프랑스는 유럽 문화의 헤게모니를 장악하였고, 19세기부터 제2차 세계대전 때까지 파리(Paris)는 명실상부한 전 세계의 문화 수도로 군림해 왔습니다. 많은 예술가들이 프랑스를 떠났지만 앙리 마티스(Henri Matisse, 1869-1954), 파블로 피카소(Pablo Picasso, 1881-1973), 페르낭 레제(Fernand Leger, 1881-1955)와 같은 모던아트의 선구자들은 전쟁 기간에도 프랑스를 떠나지 않았고 마르크 샤갈(Marc Chagall, 1887-1985) 등은 종전 후 프랑스로 돌아왔습니다. 파리는 미술의 수도로서 재건되기 위한 제반을 마련하고 나섰습니다.
하지만 모던아트의 거장들은 당시에 미술의 혁신을 가져오기에는 너무 노쇠해 있었습니다. 그들이 주도한 야수파(Fauvisme), 입체파(Cubisme)나 초현실주의(Surréalisme)로 돌아가 수는 없었습니다. 두 차례의 세계대전을 겪은 후, 이런 미술 운동은 그저 구시대의 미술로 보일 뿐이었습니다. 단지 이러한 모던아트들이 이미 당시에도 20년에서 50년 전에 등장한 미술운동이라는 이유 때문만은 아닙니다. 입체파는 사물을 분석적으로 바라보고 예술가가 기하학적으로 재구성해내는 미술운동으로 이성(reason)을 주 기능으로 사용합니다. 입체파의 본질은 유일하게 인간만이 이성을 지녔으며 이성을 통해 더 나은 미래를 건설하기 위해 지속적으로 진보해 나갈 수 있다는 계몽주의(Enlightenment)와 맞닿아 있습니다. 하지만 현대 인류 문명의 총아라고 여겨진 유럽 문명이 20세기에 두 번이나 전 세계를 자멸의 길로 이끌고 간 현실에서 이성에 대한 무한한 신뢰를 바탕으로 한 입체파는 제2차 세계대전 직후 현대미술을 이끌어갈 명분이 없었습니다. 인간의 주관에 의하여 세상을 재구성하는 야수파는 감성을 주 기능으로 사용하지만 야수파 역시 20세기 초반의 낙관주의가 기저에 깔려 있습니다. 제1차 세계대전 이후 등장한 초현실주의는 이성과 합리성을 거부함으로서 입체파를, 현실에 대한 낙관주의를 거부하며 야수파마저도 부정합니다. 초현실주의는 현실의 부조리와 불합리성, 비이성성을 강조하지만 개인의 무의식과 환상에 초점을 맞춤으로써 미술의 집단성, 공공성을 달성하지 못하였고 그런 이유로 상당수의 초현실주의자들이 공산주의에 가입했음에도 부르주아적인 미술로 비판을 받았습니다. 20세기 전반에 등장한 모던아트는 제2차 세계대전으로 완전히 달라진 세계를 대변할 수 없었습니다.
6. 파리 점령이 선사한 트라우마
제2차 세계대전은 1939년 9월 1일 독일의 폴란드 침공으로 시작되었습니다. 유럽의 맹주를 자처한 프랑스는 영국과 함께 1939년 9월 3일 독일에 선전포고하며 제2차 세계대전에 참전합니다. 하지만 프랑스군은 독일 군에 힘없이 무너졌고 결국 동부 전선의 마지노 선(Ligne Maginot)까지 뚫렸고 심지어 전쟁 시작 10개월만인 1940년 6월 14일 파리마저 함락 당하였습니다. 프랑스는 파리를 비롯한 북동쪽 대부분을 독일에게 빼앗기고 중부의 온천휴양도시 비쉬(Vichy)로 쫓겨 갔고 나치당의 괴뢰 정부와 다름없는 형태로 겨우 명맥을 유지합니다. 파리는 1940년 6월 14일부터 1944년 8월 25일의 약 4년 동안 독일의 지배를 받습니다.
제2차 세계대전 동안 파리와 이탈리아의 로마(Roma)는 폭격 제외 지역으로 전쟁으로 거의 아무런 피해를 입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프랑스-프로이센 전쟁, 일명 보불전쟁(1870-1871)으로 파리가 함락당한 후 70년 만에 또 다시 파리가 함락된 것도 모자라 4년 동안이나 파리를 비롯한 북동부 영토 대부분이 독일의 수중에 들어갔습니다. 비록 파리는 제2차 세계대전 동안 겉으로는 평화로운 일상이 유지되고 사교계는 여전히 돌아갔지만 국가의 수도를 적국에게 뺏기고 수도를 되찾을 기약이 없는 상황에서 프랑스인들은 심각한 정신적 패배감에 휩싸였습니다. 그렇지만 유럽에서 가장 자존심이 높은 프랑스인들은 독일의 지배를 순순히 받아들이지 않았고 저항군인 레지스탕스(Résistance)를 조직해 국지전으로 독일에 반격했습니다. 독일 역시 가만있지 않았고 레지스탕스 군대 혹은 그와 연관이 있다고 의심되는 사람들을 색출해 잡아다 고문하기 위해 파리 중심가에 게슈타포(Gestapo)를 설치해 운영했습니다. 많은 파리지엥들은 레지스탕스에 가담했는데 다수의 예술가들 역시 레지스탕스에 직·간접적으로 참여해 정체가 탄로나 게슈타포에 끌려가 모진 고문을 받거나 심지어 목숨을 잃기도 하였습니다. 이 당시 목숨을 잃은 파리의 미술가들로는 펠릭스 누스바움(Felix Nussbaum, 1904-1944)과 오토 프룬드리히(Otto Freundlich, 1878-1943)가 대표적입니다. 반면 쟝 포트리에(Jean Fautrier, 1898-1964), 한스 하르퉁(Hans Hartung, 1904-1989), 볼스(Wols, 1913-1951) 등은 레지스탕스와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어서 게슈타포에 끌려가 모진 고문을 당했음에도 살아남은 미술가들입니다. 이렇게 살아남은 미술가들을 중심으로 제2차 세계대전 이후 프랑스에서는 새로운 미술 운동이 태동합니다. 그들은 야수파, 입체파, 초현실주의뿐만 아니라 같은 시기 미국의 추상표현주의와도 확연히 구분되는 전후 유럽만의 아방가르드(avant-garde)한 미술 운동이었습니다.
- 이야기는 2부로 계속됩니다 (to be continu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