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미술] 유럽은 미국에 지지 않았다

미국 미술에 대한 프랑스의 반격

by 수다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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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럽은 미국에 지지 않았다: https://youtu.be/dJj-Nfm5Zi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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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야기는 1부에서 이어집니다 (the Story Goes On)-


7. 같은 듯 다른 앵포르멜 추상표현주의

제2차 세계대전(1939-1945)을 겪은 직후 프랑스에서는 젊은 미술가들을 중심으로 새로운 미술 대안의 등장을 절실하게 요구하였습니다. 그들은 야수파, 입체파와 초현실주의를 거부하지만 선배들이 이룩한 성과를 완전히 부정하지도 않았습니다. 그렇게 앵포르멜(Informel)이 탄생합니다. 앵포르멜은 비정형이라는 뜻의 프랑스어로 그 명칭에서 알 수 있듯, 추상미술의 일종입니다.


스크린샷 2026-01-22 오전 10.35.24.png 포트리에, <Head of a Little Girl> (1942)


쟝 포트리에(Jean Fautrier, 1898-1964)는 앵포르멜의 선구자입니다. 포트리에는 이미 제2차 세계대전이 한창인 1941년부터 《인질 Les Otages》 시리즈를 제작합니다. 이 인질 시리즈는 인간의 신체 일부를 표현한 듯 한 그림들에 인간을 연상시키는 제목들을 붙인 연작입니다. 나치 독일에 의해 파리가 점령되었던 시기(Paris Occupation) 이에 저항하는 레지스탕스(Résistance)와 깊은 연관이 있었던 포트리에는 1943년에는 급기야 게슈타포(Gestapo)에 끌려가 직접 모진 고문을 당합니다. 게슈타포에서 인간의 신체가 고문으로 찢겨나가고 사람들이 고통에 비명을 지르는 상황을 직접 목격한 이후 《인질》 시리즈에서는 이러한 자신의 끔찍한 경험을 예술로 녹여냅니다. 《인질》 연작의 작품들은 ‘인간의 존재와 본질이?’란 무엇인가?’ ‘전쟁과 폭력의 광기에 인간의 존엄성은 얼마나 깨지기 쉬운 가치인가?’를 사람들에게 소름끼치도록 정확하게 보여주고 있습니다. 제2차 세계대전 이전, 이성과 대비되는 감성과 무의식의 본능은 바실리 칸딘스키(Wassily Kandinsky, 1866-1944), 호안 미로(Joan Miró, 1893-1983)와 같은 미술가들에 의해 추상미술로 표현되었습니다. 초현실주의는 미술의 역사에서 최초로 무의식의 영역을 탐구하며 합리적 인간이라는 개념에 의구심을 던졌습니다. 그렇지만 인간이 초래한 광기 앞에 나약한 인간의 존재, 인간의 존엄성이라는 가치가 얼마나 부질없는 개념인지를 허무주의적인 관점에서 탐구한 건 쟝 포트리에가 처음입니다.



thumb_7445_1120_0_0_0_auto.jpg 포트리에, <A Hostage's Head #1> (1942)


포트리에는 인간의 외형을 추상적으로 재구성하는 데 그치지 않고 캔버스 그 자체를 인간의 존재로 형상화하고자 하였습니다. 그는 캔버스 위에 폭력과 전쟁으로 인해 갈가리 찢겨지고 차갑게 굳어버린 인간의 신체를 올려놓듯, 캔버스 위에 유화를 겹겹이 쌓아 올려 두께감이 느껴지는 표현 전략을 구사합니다. 유화 물감 전체를 특정 부위에 쏟아 붙듯이 그 두께감과 질감이 그대로 느껴지게 칠하는 기법을 마티에르(matière)라고 합니다. 이후 현대미술의 주요 기법으로 확산되는 마티에르는 앵포르멜을 상징하는 기법입니다. 쟝 포트리에가 개척한 새로운 추상미술 운동은 인간이 오랜 역사를 통해 축적한 인간의 존엄성이라는 가치가 하루아침에 무너져 내리는 전쟁을 직접 경험하지 못했다면 탄생할 수 없었다 해도 과언은 아닙니다. 그렇기에 앵포르멜 운동은 무거운 주제를 어둡고 탁한 색채를 사용해 깊은 절망감과 공포라는 절박한 감정을 드러낼 수밖에 없었습니다.


앵포르멜은 동시대 미국에서 발생한 추상표현주의와 비슷해 보이지만 추상표현주의와는 그 성격이 전혀 다릅니다. 미국 역시 제2차 세계대전에 참전한 국가로서 많은 인적 피해를 입었고 역사상 최초로 일본군에 의해 자신들의 영토가 침략을 받았습니다. 하지만 한 차례의 진주만 공습을 제외하고 본토는 아무 피해를 입지 않았습니다. 많은 젊은 미국 남성들이 징병되었지만 대부분의 미국인들은 제2차 세계대전을 체감하기 어려웠습니다. 제2차 세계대전에 참전했지만 미국과 유럽의 전쟁에 대한 경험과 기억은 완전히 다를 수밖에 없었습니다.


Photograph-by-Hans-Namuth-of-Jackson-Pollock-engaging-in-gestural-painting-23.png 잭슨 폴록(Jackson Pollock, 1912-1956)


제2차 세계대전 직후, 잭슨 폴록(Jackson Pollock, 1912-1956)은 바닥에 놓인 캔버스에 공업용 붓에 물감을 묻혀 흩뿌리는 액션 페인팅(action painting) 기법을 선보이며 추상표현주의가 시작됩니다. 비평가들은 폴록의 행위를 전쟁을 겪은 인간의 폭발적인 에너지와 분노의 표출로 해석했습니다. 왜 인간이, 그 중에서 가장 완성된 문명을 달성한 서양 백인 문명이 역사상 유례없이 파괴적이고 끔찍한 전쟁을 벌였는지에 대한 분노입니다. 폴록의 액션 페인팅, 그가 촉발시킨 추상표현주의에서는 분노의 감정이 읽혀지지만 미국의 새로운 추상미술에서는 전쟁을 겪은 인간의 트라우마와 전쟁 앞에 무기력한 인간의 본성은 찾기 어렵습니다. 추상표현주의에서 발견되는 분노는 미국인들의 전쟁에 대한 경험이 유럽보다 직접적이지 않기 때문입니다.


images-31.jpeg 볼스, <It's All Over> (1946-1947)


제2차 세계대전 동안 프랑스는 전쟁의 격전지는 아니었지만 독일 군에 철저하게 짓밟혔고 프랑스 전체는 큰 충격에 빠질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 충격은 너무나 커서 프랑스 전체는 패배주의와 허무주의, 냉소주의로 흘러갔습니다. 나라를 잃은 분노로 국민들은 저항운동을 벌였지만 그 저항운동은 오히려 더 끔찍한 폭력으로 돌아와 인간의 육신은 한낱 종이쪼가리만도 못하고 고깃덩어리처럼 짓이겨지는 더 잔혹한 결과로 되돌아왔습니다. 불과 몇 백 ㎞바깥에서는 전쟁으로 사람들이 종잇장처럼 찢겨 나가고 평화롭게 보이는 파리 시내의 지하에서 사람들은 끌려가 고문 받는 게 유럽과 프랑스의 현실이 되었습니다. 이런 현실에서 분노라는 감정은 사치일 뿐입니다. 극심한 두려움과 공포를 마주한 사람은 분노할 힘조차도 없습니다. 게슈타포에서 잔혹한 고문을 직접 경험하고 목격한 미술가에게 전쟁은 분노의 대상이 아닌 트라우마 그 자체입니다. 추상표현주의에서는 인간의 외침이 들리지만 앵포르멜에서는 인간의 비명이 들리는 것도 바로 이러한 이유 때문입니다.


8. 한국, 프랑스 미술의 손을 들어주다!

1945년 8월 15일 광복으로 한반도에서는 북위38도를 기준으로 북쪽에는 소련군이, 1945년 9월 8일에는 남쪽에 미군이 주둔하게 됩니다. 급기야 1948년 8월 15일 남한 지역에, 1948년 9월 9일에는 북한에 각각 단독 정부가 출범합니다. 이후 1950년 6월 25일 일요일 새벽4시 북한군의 기습 남침으로 한국전쟁이 발생합니다. 이데올로기를 이유로 자유주의 남한과 사회주의 북한과의 전쟁은 단순한 내전을 넘어서 미국과 자유주의 진영, 소련과 사회주의 진영이 참여하며 국제전으로 비화되었습니다. 전쟁은 3년 1개월만인 1953년 7월 27일 공식 휴전을 맞이합니다.


전 국토는 황폐화 되었고 전후 복구와 정치적 안정이 휴전 직후 대한민국 정부의 가장 큰 목표가 됩니다. 그 전까지 미국의 안보 전략에서 큰 주목을 받지 못한 한반도는 한국전쟁을 계기로 동아시아에서 가장 중요한 안보 지역으로 급부상하였으며 공산화를 막기 위해 강력한 경제 원조가 제공됩니다. 휴전 이후 한국은 미국의 군사적·정치적·경제적 지원에 크게 의존하며 미국의 영향력 아래 놓입니다.


스크린샷 2026-01-30 오후 2.18.15.png 박서보, <원형질 1-62> (1962)


현실 정치에서 한국은 이견이 없을 정도로 미국의 세력권으로 편입되지만 미술에서는 다른 상황이 전개됩니다. 일제강점기(1910-1945) 한국의 서양화가들은 일본이라는 필터(filter)를 통해 서양화를 수용하였습니다. 그들이 주로 유학을 떠나는 지역도 서양이 아닌 일본이었습니다. 하지만 광복 이후 한국의 미술가들은 더 이상 일본에 의존할 이유도 필요도 없었기에 서양미술의 본고장에서 직접 서양미술을 배우고자 하였습니다. 한국전쟁 휴전 이후 한국의 서양화가들은 모든 면에서 한국과 더 밀접한 미국보다는 유럽, 그 중에서도 파리를 선택했습니다. 한국의 제1세대 추상미술가들은 거의 모두들 파리로 유학을 떠났습니다. 남관(1911-1990), 김환기(1913-1974), 이성자(1918-2009), 함대정(1920-1959), 변종하(1926-2000), 박서보(1931-2023) 등은 프랑스에서 앵포르멜 미술을 직접 수학하였고 상당수는 귀국 후 한국 화단에 영향력을 떨쳤습니다. 김창열(1929-2021), 하종현(1935-), 윤명로(1936-), 박장년(1938-2009) 등은 프랑스 유학 경험은 없지만 1950년대 말부터 1960년대까지 앵포르멜 작품들을 제작하면서 한국 추상미술은 친(親) 프랑스적인 특징을 보였습니다.


스크린샷 2026-01-23 오후 2.09.24.png 윤명로, <원죄 B> (1961)


9. 20세기 말, 유럽 미술계의 반격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자유주의 진영은 미국을 선두로 세계 질서가 재편되었습니다. 이 흐름은 미술에서도 거스를 수 없었고 이후 미국은 현대미술의 중심지로 확고하게 자리 잡습니다. 추상표현주의를 대신해 1960년대는 팝아트(Pop)가 주류를 차지합니다. 팝아트는 1950년대 영국에서 시작되었지만 팝아트가 국제 양식으로 발전할 수 있었던 건 1960년대 미국에서 로버트 라우센버그(Robert Rauschenberg, 1925-2008), 앤디 워훨(Andy Warhol, 1928-1987), 클래스 올덴버그(Claes Oldenburg, 1929-2022) 등의 팝아트의 거장들이 등장했기 때문입니다. 그 후 1970년대 미국에서는 미니멀리즘(Minimalism), 개념미술(Conceptual Art), 대지미술(Land Art) 등이 등장하면서 미국은 현대미술에서 확실한 우위를 점합니다.


Untitled-Stack-by-Donald-Judd.jpg 저드, <Untitle> (1970)


유럽은 1993년 유럽연합(European Union, EU)을 출범하며 본격적으로 미국을 견제하고 나섰습니다. 그 이전 1970년대 말부터 유럽은 이미 미술 분야에서 미국에 대한 반격에 나섰습니다. 유럽은 자신들의 오래된 전통인 ‘회화’와 ‘구상’의 미술의 두 가지 키워드를 전면에 내세우며 구상회화의 복귀를 시도합니다. 독일에서는 게하르트 리히터(Gerhard Richter, 1932-), 게오르그 바젤리츠(Georg Baselitz, 1938-), 안젤름 키퍼(Anselm Kiefer, 1945-) 등의 신표현주의(Neue Wilden)가, 프랑스에서는 같은 시기 벤 보티에(Ben Vautier, 1935-2024), 로베르 꽁바스(Robert Combas, 1957-) 등을 주축으로 자유구상(Figuration Libre)이라는 미술 운동이 발생하였습니다. 미국에서도 1980년대 쥴리앙 슈나벨(Julian Schnabel, 1951-)이 미술 영역에서 유럽에서의 새로운 움직임에 공감하며 구상회화의 전통을 되살리려는 데 동참합니다.


1982_ROBERT_PEINT_DE_DOS.jpg 로베르 꽁바스(Robert Combas, 1957-)


10. 아웃트로: 영원한 친구란 존재할까?

비록 21세기에 이르러 그 영향력이 줄어들었다 하더라도 미국은 여전히 세계 최강국이며 자본주의를 바탕으로 한 자유주의 진영을 대표합니다. 그렇지만 미국이 세계를 호령한 역사는 채 100년도 되지 않습니다. 지난 80년 중 약 40년 동안은 나머지 세계는 소련과 양분하였고 1991년 12월 26일 소련이 해체되어서 단독으로 세계 최강국이 되었습니다. 하지만 개방경제 체제로 전환한 중국이 무섭게 소련의 빈틈을 차지하였고 21세기 중국은 냉전 시기 소련의 위상에 버금가는 글로벌 two로 거듭납니다. 중국은 막강한 자금력으로 전 세계에서 자신들의 영향력을 확대해 나가며 미국과 신 냉전(New Cold War) 체제에 돌입하였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미국은 점점 더 우익화 되어 가고 트럼프는 미국의 우경화를 상징하는 인물입니다. 트럼프 시대에 미국은 세계의 경찰국가로서의 역할을 포기하고 자국의 경제 이익을 최우선에 두기 시작합니다. 그 과정에서 미국은 오랜 우방들하고도 갈등을 일으키고 있습니다. 덴마크령 그린란드에 대한 영토 야욕 이전에도 트럼프 대통령은 캐나다에게는 미국의 51번째 주(state)가 되는 게 더 낫다는 터무니없는 주장을 하고, 군사 동맹인 일본이 타이완(臺灣) 문제를 두고 중국과 갈등을 빚는 상황에서 일본의 편이 아니라 은근히 중국을 두둔하기도 했습니다. 게다가 2026년 1월 17일에는 메모리 반도체를 만들고 싶거든 미국에 투자하거나 100% 관세를 내는 두 가지 선택만 있다며 주요 반도체 생산 국가인 한국에 압박을 가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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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현재 미국은 한국, 일본, 유럽 등의 자유주의 진영의 믿음직한 아군이라기보다는 언제든지 등을 돌릴 수 있는 믿을 수 없는 존재를 자초하고 있습니다. 그린란드 문제는 트럼프의 재선 이후 누적된 불만과 위기감을 유럽이 표출한 계기가 되었습니다. 미국과 유럽이 이 문제를 두고 어떻게 대응할지 현재로서는 전혀 예측하기 어렵습니다. 그러나 분명한 건 미국과 유럽의 관계는 우리 생각보다 그렇게 공고하지 않다는 겁니다. 그 균열은 유럽 국가의 영토인 그린란드 사태를 통해 드러났지만 약 70년 전 미술 영역에서 이미 분출된 바 있습니다. 시대와 이슈는 달라졌지만 194·50년대와 2026년 현재 똑같은 질문이 제기됩니다. “현실에서 영원한 동지란 존재하는가?”, “미국 중심의 자유주의 진영이란 존재하는가?” 이 두 질문은 매우 복잡하고 대답하기 어려운 질문임에는 틀림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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