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가능성에 대한 축복의 헹가래 위에서 모든 불가능성에 대한 사인 발견
누구라도 한번 즘은 어린 시절에 그 나이 때 너머의 자신의 삶에 대한 달콤한 상상에 빠져 본 적 있을 것이다.
생각해보면, 살면서 겪을 수 있는 여러 나이 대 중 20대에 대한 청사진처럼 세세하게 그려보는 연습을 해본 적이 별로 없다는 생각이 든다.
10대, 특히 고등학교 1,2, 3학년을 겪게 되는 10대에는 학교와 시험, 무엇보다도 입시라는 압박 때문에 "지금 못하는 걸 조금 참고 대학에 가면" 즉 "내가 20 살이 되면, 20대가 할 것"이라고 기대하면서 현재를 견디고 동시에 자신에게 아직 오지 않은 20대를 계획하기도 한다.
개인뿐만 아니라 20대에 부여된 그만의 젊음, 뭐든 할 수 있는 나이라는 관념이 사회 전반에 뿌리내려 있고, 사회는 20대에게 마치 영원히 응원 것 같이 그들의 청춘을 격려한다.
20살이 되면, 술을 마실 수 있고, 연애도 많이 하고, 여기저기 혼자 여행도 많이 다니고..
20대에 대한 청사진은 이렇게 10대라는 '미성숙'과 '제한'에서 "성숙"과 "자유"라는 쿨함으로 가는 길이라는 허무맹랑할지언정 하나의 연령에 대한 많은 불가능의 가능의 전환이 열리는 길목이다. 이제 막 달리기 시작한 고속도로에서 모든 가능성에 대한 가능의 표지판이 20대 인터체인지에 불 켜져 있다.
하지만 막상 30대 초가 되고 나니, 40대보다는 이제 갓 지나쳐온 20대에 더 가까우면서도 10대 후반에 20대로서의 삶을 기약했던 것처럼 "30살이 넘으면 해야지- "하는 기대나 삶의 전환을 기대하거나 자세히 뭔가 하고 싶고 뭔가를 꼭 할 것이다 라는 생각을 20대 후반에 해 본 적이 없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아니, 기대보다는 외려 "30대"가 된 것은 축복의 20대를 지나친 것, 20대 때와 다른 가속화되는 노화, 어제까지 함께였던 20대라는 그룹에서 갑자기 강제 퇴장당한 것 같은 상실의 정서를 공유하며 우리가 청춘에서 점점 더 멀어 저가는 시점에 집중적으로 집중하는 스스로를, 주변을, 내가 속한 사회를 보고 듣고 느끼게 되면서 자연스럽게 20대에는 못했지만, 30대에는 할 수 있는 새로운 것을 찾는 노력 자체를 거세당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아직까지 30대라는 집단으로 분류된 지 얼마 되지 않아 속속들이 안다고 말하기는 어렵지만, 2년이라는 시간을 보낸 나의 소감은 다소 씁쓸하다.
첫사랑에 대한 기대와 실망으로 열병을 앓는 것만 같았던 내 20대 중후반을 보내고, 마치 불붙은 훌라후프를 재빨리 뛰어넘는 서커스 사자의 묘기 대행진과 같이 지난해 나는 인간이 정해놓은 29개의 해를 지나 가까스로 30번째 해로 진입했다.(당했다고 표현해도 될 것 같다.) 그리고 달이 가고 해가 갈수록 30대라는 인간사의 분류가 더욱 실감 나는 하루하루를 겪게 되었다.
20대의 인간으로 살 때보다 30대의 인간은 인간사가 설정한 전방위적 '표준화 캠페인'은 내게 빠른 시일 내에 응답할 것을 요구당한다. 다수의 사회 구성원의 주도 하에 오랜 세월 전수되어 온 이 '특정 나이에 대한 표준화 캠페인'은 거의 내 모든 사적 일상으로 파고들기 시작했다. 나의 30대 진입과 함께 갑자기 내 주변의 인식이 보다 날카롭게 내 삶을 조각하는 것에서 비롯되었다. 그들은 원석인 나를 조각해주겠다고 끌과 망치를 들고 나를 조각한다고 생각했고, 아주 열심히 임무를 수행한다. 아쉽게도 나를 위한답시고 다들 너무 열심히 임하는 조각 프로젝트는 슬프게도 나를 새롭게 태어나게 하기는 커녕 내 마음을 후벼 파는 일 정도에 그치지 않았다.
가장 안타까운 사실은 끌이며 망치며 조각칼이며 중 무장을 하고 나타난 이들은 나로부터 동떨어진 사람들이 아닌 함께 성장해가고 있다고 믿고 있었던 가까운 주변인들이었다. 한 때 나의 지인이었던 이들은 30살이 되거나 혹은 자신의 결혼 계약과 동시에 나를 향해 맹목적인 표준화 캠페인을 펼치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그들은 내게 말한다. 나를 위해서, 내 행복을 위해서, 내 인생을 위해서 '나'라는 사람이 하루빨리 자신들과 같이 표준이 될 수 있도록, 하루빨리 '교화'되었으면 한다며 노골적으로 나를 후벼 팠다.
청춘을 찬양하고 다양한 가능성에 대해서 할 수 있다며 그토록 지지해준 사람들은 이제 그들 조차 그 열 열했던 지지자였던 자신의 모습 조차 잊어/잃어버리고 '불확실의 위협'에 겁박당해 그 누구도 응원해 볼 생각조차 못하는 사람으로 변모해 간다. 그리고 이 '불확실'이라는 일생일대의 위협과 겁박은 '표준화 사상'을 주변에 널리 전파함으로써 극복할 수 있다고 믿기 시작한다.
하지만 슬프게도 '할 수 없음의 벽'에 크게 한번 부딪혀 본 많은 사람들은 그 충격에서 쉽사리 헤어 나오지 못하는 것이 현실이다. 그들의 망연자실은 한 걸음 더 앞으로 나가면 벽 옆으로 난 작은 구멍을 발견할 의지와 가능성의 꺾임으로 이어진다.
그리고 절망한 채 자리에 주저 않아 그 앞을 지나가 보려 시도하는 사람들에게 그만의 인지 사정을 실현하는 목소리를 높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