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장을 향한 젠틀맨의 열망8_캡틴 차이나, 캡틴 카펫과 재회하다
안녕? 또 캡틴 차이나야!
지난번 펍 백작네 집에 주문 상품을 직접 건네주고 온 뒤로
나는 깊은 생각의 늪에 빠졌지...

왜 빠졌냐,,?
아무리 생각해도
그놈의 '문장' 때문인 것 같아.
웨일스의 아서 왕자 문장 도록 일부, 1520년 경
Prince Arthur's Book , an armorial of arms for Arthur, Prince of Wales,
c. 1520, depicting the proliferation of lions in English heraldry
사실 펍백작네 집으로는 처음 가 본거였는데,
(맨날 런던 시내에 있는 커피하우스에서 잠시 만나서
주문 계약서 쓰고 그랬던 게 다지 뭐)
17세기에 런던에서 운영되었던 커피하우스의 풍경이야^^ 엄청 시끌벅적하게 보이지?
런던에서 맛과 멋을 좀 안다는 젊은 남성들 사이에서 커피를 마시는 문화는 엄청 hip 한 문화적 코드였어. 상인들이 주축이 되어서 번성했던 이 커피 하우스는, 당대 영국 신사들의 메카였고, 신지식인을 자처하는 이들이 모여서 자신의 견해나 정치적 이슈, 향후 영국 사회에 대한 고뇌 같은 토론을 많이 했던 모양이야.. penny university라는 별칭을 가지고 있기도 한 이 커피하우스는 달랑 동전 몇 잎으로 수많은 지식을 접할 수 있다는 의미에서 이렇게 불뤼 기도 했는데, 실제로 여기서 토론되었던 이슈를 발전시켜서 특정 교육기관이나 정책이 실현되기도 할 정도로 영국의 커피하우스는 영향력이 컸다고 볼 수 있어.
솔직히 그 정도로 어마어마한 규모의 집에 살면서
호화스러운 집안 장식을 해놓고 살 줄은 몰랐거든.
뭔가 알 수 없게 힘이 빠지는....
요즘 말로 의문의 1패를 한 기분이랄까..?

태생적으로 귀족인 사람들만이 갖는 그 기품과, 수준 높은 취향과 미적 감각,
그리고 엄청 예의 바른 그런 모습..
londonderry house
거친 파도를 헤치면서 살아온 나의 거칠거칠한 삶은
펍 백작의 비단결 같은 삶에서 피어나는 고귀한 빛으로
녹아버릴 듯한 기분이 들었어.
하아..
뭔가 40여 년을 살아오면서 이 악물고 버티면서 여기까지 왔는데...
그리니치에 이렇게 크고 멋진 집도 짓고
자식들도 전부 최고급 교육을 시켰는데도...
요건 옥스퍼드 대학교 문장이야 :D 나의 보석 윌리엄이 다니고 있지 ㅎㅎ
뭔가 만족스럽지 않은 알 수 없는 이 기분... 뭘까?
집 안팎에, 아주 세세한 곳까지
온통 펍 백작의 문장으로 장식한 모습을 보면서
정말 범접할 수 없는 고귀한 사람이라는 사람이 자꾸자꾸 만 들었어..
여기저기 장식된 집안 문장을 보면서
와... 펍 백작은 진짜 고귀하신 분이구나..
라는 생각이 절로 들더라고.

흐음...
나는 좀 뭔가 알 수 없는 열등감?
나도 저렇게 살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서 조금은 우울해졌어.
사랑하는 나의 부인 안젤라가 내가 엄청 좋아하는 자바 커피를 한 솥을 끓여서 갖다 줘도,
비싼 열대과일이랑 펀치를 한 사발을 줘도..
영 기분이 나아지지 않아...
휴...
!! 그래서!!
오늘은 기분전환도 할 겸
큰 맘먹고 우리 가족들이랑 오페라 구경을 하러
런던 시내에 있는 링컨 인 필드 극장에 나왔어.

오늘은 내가 제일 좋아하는! 영국 작가 존 게이의 신작
'서푼짜리 오페라'를 보러 왔지.
왼쪽 이미지는 18세기 영국에서 이름 날린 화가 윌리엄 호가스가 그린 서푼짜리 오페라의 한 장면 묘사야.
Painting based on The Beggar's Opera, scene 5, William Hogarth, c. 1728, in the Tate Britain
오른쪽은 존 게이의 발라드 오페라 "서푼짜리 오페라(the begger's opera)" 포스터지!
제발 재미있었으면 좋겠다...!

극장 좌석은 등급제인데,
제일 좋은 좌석은 일반 좌석 가격에 3~4배에 달해.
그래서 주로 귀족들이나 나처럼 돈 많은 상인들이 차지하기 마련이지.
나는 오늘 부인 안젤라와
우리 보석 같은 아들 윌리엄이랑
최고급 옷을 입고 멋지게 극장에 짜잔~하고 등장해서
1등석에 앉아서 연극 관람을 예정이라
엄청 들떴어. ㅎㅎㅎ
내 하인 모카를 시켜서 티켓박스에 가서
1등석 좌석 표 3장을 끊어오라고 말하고
나와 안젤라, 윌리엄은 연극이 시작되기 전 달뜬 분위기의
극장 근처를 둘러보기로 했지.
귀족, 평민 할 것 없이 주체할 수 없는 흥이 가득 찬 이 거리 위에서
다들 곧 시작될 공연을 들뜬 마음으로 기다리고 있어.

오! 마치 우리 모카가 표를 사 왔고,
우리 가족은 위풍당당하게 1등석 전용 입구로 극장에 들어갔지!
(모카한테는 3등석 표를 2장 끊어줬지! 여친이랑 같이 보라고 ㅎㅎ 이참에 데이트도 하고 좋잖아?ㅋ)
이건 로열 극장의 풍경이야. 사람들이 어마어마하게 모여 있네!
Royal Theatre interior, Drury lane, 1808
자~ 이것 봐! 1등석 좌석에는 모로코 산 최고급 카펫이 깔려있어.
친한 친구 중에 캡틴 카펫이라고 불뤼는
나처럼 무역 범선 선장이 하나 있는데,
들리는 이야기로는
주로 모로코산 고급 카펫을 왕실이나 귀족들한테 팔아서
돈을 무지하게 많이 벌었나 보더라고.
그놈 못 본 지도 어언~3년이 다 되어가네.
예전에 선장 연수 같이 받으면서 런던 뒷골목에서 커피 마시고
이런저런 이야기 많이 나누었는데~
아하 옛날이여~

그러던 중에 어디선가 나를 반갑게 부르는 목소리가 들려와!
익숙한 이 걸걸한 목소리!!! 이건 바로!!
"해리! 해리! 여기야!! 여기!! 휘이휘히이이~~"
뒤를 돌아보니 왁자지껄 떠들어대는 관중 사이로
어떤 지체 높은 귀족 양반이 손수건을 흔들면서
나를 보면서 웃고있....다고 생각했는데!!!
이게 누구야!!!
내가 방금 말했던 그 캡틴 카펫!
내 오랜 친구 올란도잖아!!!!
"올란도!! 어떻게 된 거야! 못 알아보겠다!!"
캡틴 카펫 이름은 올란도 야.
그런데 행색이 예전에 내가 알던 그 캡틴 카펫이 아닌데? 완전 귀족 같아 보여!
그나저나 어떻게 된 거지?
(출처: Carina Press Historical Authors' Blog,
http://romancingthepast.blogspot.kr/2013/04/university-classes-regency-style.html)
이 녀석 재킷 포켓 위에 문장이 떡하니 박혀있잖아?!!!
어떻게 된 거야? 올란도? 너 귀족이야???
내가 너무 놀란 얼굴로 올란도 어깨를 붙잡고 마구 흔들어 댔어!
여기저기 훑어보면서!!
그러니까 올란도가 내 어깨 위에 손을 척~하고 올리더니
한팔로 나를 감싸 안고 극장 구석으로 급히 나를 데리고 가는 거야,
갑자기!
그러더니 씨~익 웃어 보이면서 말했어!
잘 지냈냐? 해리? 너 캡틴 차이나라면서? 소문이 자자하더니만!
이열~ 짜아식, 돈 많이 벌었나 보네? ㅎㅎ 일등석 좌석에서 연극도 보고!
그건 내가 할 소리!
올란도 니 재킷 위에 이거 뭐야! 웬 문장이야?
어디서 났어? 이거 이래도 되는 거야?
아직 못 들었구나! 나 이제 신사야! 이제 평민이 아니라고! ㅎㅎ
으잉? 그게 뭔 소리래??
너 내가 모로코 카펫 팔아서 돈 많이 번거 알지?
내가 왕실 바닥에 깔 카펫을 왕창 수입해서
납품해서 돈을 좀 만졌어요~
그래서 내가 어떻게 했느냐!
알잖아 나 완전 야망 넘치는 남자인 거.
귀족 놈들 잘난 체하는 거에 굽신 대는 인생도 신물 나고~
그래서 귀족은 못돼도 신사라도 돼야겠다 해서 생각하고 있었는데!
마침내 고향 동네 스트랫퍼드에 사시는
4촌 형님의 조카의 사돈에 삼촌 친구가 준 정보인데,
내 스트랫퍼드에 몰락한 귀족이 소유하고 있는 땅이
대거 시장에 나왔다는 것 아니겠나!
돈 쌓아두면 뭐하겠냐!
그 땅을 내가 얼른 샀고 이제 나는 지주가 돼서
신사 계급으로 신분 상승하게 된 거지! ㅋㅋ
나 이제 세금도 신사라서 신사 레벨로 많이 내고 있어 ㅎㅎ
대박이지?ㅋㅋㅋ
그리고 이 문장?
이거 그냥 내가 맘대로 화가 하나 고용해서
디자인해서 장식하고 다니는 거야!
문장원에 신청해서 인준받고 그 짓거리하면서
몇 년을 돈 낭비 시간 낭비하면서 스트레스 받고 싶지가 않아..
나는 지금 한시라도 빨리 문장을 도배하고 다녀도 모자라다고..
내 나이 40줄에 겨우 문장 생겼는데
내가 얼마나 살지도 모르고 한시가 급했어.
그러니 뭐 내 맘대로 문장 만들어서 내 거다 하고 다니는 거지 뭐.
그래도 되는 거야? 그거 불법이잖아!
문장원에 발각되면 엄청 큰일 날 걸로 알고 있는데?
이 순진한 친구야...
요즘 왕실 제정이 궁핍해서 돈만 주면 없던 작위도 만들어주는 세상이야.
그런데 귀족 체면 살려주는 문장원 위상이 예전 같겠냐고~
외려 문장원에서 활동하던 문장 디자이너들이 은밀하게
신사 계급이나 혹은 신사 계급인 척하려고 하는 도시 부자들 상대로
문장 디자인해주고 주머니를 채우고 있는 게 지금 현실이야..
뭘 아무것도 모르는 구만!
그으래??
내가 잠시 런던 떠난 사이에
세상이 뒤집어지긴 뒤집어진 모양이구나...
안 그래도 나도 실은 에일 백작이라고 얼마 전에 파산한 귀족 백작이 하나 있는데,
그 집 외동딸이랑 우리 윌을 연결시켜주려고 하거든...
그래서 그 에일 백작 4촌인 펍 백작한테 상품 구매 대행해주고
내가 그 딸 결혼 선물도 중국 도자기로 만든 티세트에 문장 장식해서
중국에서 여기까지 그 먼길을 가져다가 선물해주었는데..
근데 맘이 자꾸 쓰여.
그놈의 문장 때문에. 부럽고..
나도 갖고 싶고..ㅠ
그런 건 걱정을 하덜덜말어! 이 친구야!
나 문장 그려준 문장원 소속 디자이너 중에 하이드라는 사람이 있는데,
너 소개하여줄 테니까 너도 문장 만들어 얼른!
그래서 마구 장식해. 너 아시아 무역해서 비싼 물건 웃돈 안 주고 살 수 있잖아!
그런 중국 도자기처럼 엄청나게 비싼 거!
그런 데다가 막 니 문장 장식해!
그래서 막 사람들도 집으로 초대하고 그래서 그거 자랑하고 그래~
너가 그런 식으로 '내가 이런 사람이다~'하고 내색하면
니 주변도 이전이랑 대하는 게 달라질 거야.
내가 요즘 참 그런 걸 많이 느껴.
깡촌 시골 지주라도 지주는 지주인 거야.
나는 이제 정식으로 신사라고.
신사가 되니까 주변 사람들이 보는 시선도 그
리고 나랑 친하게 지내고 싶어 하는 사람들도 전보다 훨씬 많아져.
그리고 귀족들 집에 만찬 초대도 종종되기도 하지!
너도 알다시피 무역 주식 투자 관련 정보는
우리같이 무역 상인만큼 그 누구도 잘 알지를 못하잖아.
그러니까 자꾸 투자할만한 새 무역 상품을 추천해달라고
은근히 날 구슬리는 거 있지.
그러려고 만찬에 정기적으로 초대도 하고 말이야..
아니, 왜?
가면 엄청 영광스럽고,
맛있는 음식도 높은 사람들이랑 네트워킹도 하고
그래서 출세하는데 되게 도움되고 좋을 것 같은데?
그렇긴 하지.
그래도 그게 다가 아니더라고..
신사가 돼서 이전보다 나아진 거지
그렇다고 내가 엄청 높은 신분의 귀족이 된 건 아니잖아.
그러니까 식사 가면 그 집 안주인이 정해준대로 자리에 앉고
음식 주는 순서도, 대화를 이끄는 사람도 순서대로 정해지는데
언제나 온갖 귀족들 다음 차례가 되는 게
영 기분이 좋지가 않아..
휴..
이렇게 내가 돈 쓰고 노력하고
엄청 아등바등 신사 계급까지 땄는데도..
뭔가 부족해..
그리고 은연중에 내 교양 수준이나
취향 이런 걸 무시하는 것 같아.
자기들끼리 소네트(Sonnet) 같은 시구로 대화 주고받을 때도 있는데..
우리 같은 무역 수습생 출신들이
옥스브리지(옥스퍼드 +캠브릿지)까지 나온
혈통 좋은 귀족 선생들을 무슨 수로 이길 수 있겠나?
심지어 막 자기네 끼리 라틴어 인용도 하는데
무슨 말인지 모르겠어서
그냥 옆에서 아는 척하는 것도 엄청 피곤해...
모르는 거 들킬까 봐 조마조마하기도 하고... ㅠ
그래서 말인데..
내가 해리 너한테 긴히 부탁할 게 하나 있어!
뭔데?
어차피 학식이나 교양 이런 건
내가 다시 태어나는 수준이 아니고서야
저 귀족 놈들을 따라잡을 수가 없어.
그래도 내가 저들보다 돈은 많잖아.
아, 너 돈이 그렇게 많아?
나 런던이랑 바스 지방 쪽까지 합쳐서
대저택을 3채나 소유하고 있어.
무역회사 주식으로도 돈 벌고..
또 지금 제임스 왓트라는 기술자가 만드는 신기술에 거금을 투자하고도 있고.
또 왕실 출입하는 궁정인들도 많이 알아서 궁정 살림살이 장만을 내가 거의 도맡아서 하고 있지.
아 대박, 진짜 그 정도야?
와~ 이 시 키
너 진짜 출세했구나! ㅎㅎㅎㅎ
그렇지 뭐.. 그래서 말인데, 내가 너한테 좀 큰 부탁을 하려고 하는데 말이지~
뭔데?
귀족네 집에 정찬 초대받아서 가면 코스 요리로 식사 대접을 해줘.
많게는 12코스까지 엄청 다양한데,
각 코스마다 짝이 맞는 접시 세트 위에다가 음식을 내어 주거든..
그 테이블웨어라고. 우리 와이프가 환장하게 좋아하는
(우리 와이프뿐만 아니라 귀족 와이프들도 환장을 하고 좋아하지..)
그 테이블웨어가 보통 적게는 200세트 많게는 500세트 정도인데,
내가 보니까 아무리 귀족들이라고 해도
그 많은 세트를 전부 은도금 기나 중국 도자기 같은 비싼 접시로 사용 못하더라고..
중국산 도자기는 디저트나 티세트 정도에 사용될 정도야..
다 뭐 중국 자기 따라 하는 네덜란드산 델프트 웨어가 주를 이루지..
그래서 말인데,
내가 한 번은 요 귀족들 코를 납작하게 해줘야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그래서 내가 뭘 도와줄 수 있다는 말이야?
그러니까 말이지,
나는 이 정찬 코스에 사용되는 500점 정도 되는 테이블 웨어를 전부 다
중국산 도자기로 구성하고,
모든 접시, 소스 보트, 숟가락 받침대, 컵 뭐 이런 거 표면에
전부 다 내 문장을 형형색색으로 장식한 문장 자기 정찬 세트를 갖고 싶다는 말이야.
그걸 중국에서 니가 주문 제작해서 좀 만들어왔으면 해서.
????????
뭐.
라.
고.
??????
그게... 말이나..
아니.. 그게 얼마나 돈이 많이 들어갈지 상상은 해봤어?
그깟 식기류에.. 그 정도로 돈을 써야 된다니,
올란도 너 진짜
도랏니.ㄷ ㄷㄷ ㄷ
나도 알아 돈이 엄청 들 거라는 거.
미친 소리 같겠지... 이런 발상 자체가..
그런데 나는 안 되겠어.
귀족들이 입이 떡 벌어지는 꼴을 꼭 봐야겠는데
아무리 생각해도 어쭙잖게 아무나 돈 있으면 사는 그런 무역 상품 정도로는 약해.
어마어마한 것을 보여주고 내가 이런 사람이야~ 할 수 있는 스케일은 되야겠어.
그래야 내가 직성이 풀릴 것 같아...
야이 제대로 미친 자식아...
너 진짜 출세하려고 독을 품었구나..??
그건 그렇고 네가 말한 데로 하려면 얼마나 시간이 많이 걸리는지 알아?
일단 니 문장을 어떻게 더 장식적으로 그려서,
무슨 색을 쓰고 주변 장식으로 뭘 할지 디자이너랑 또 상의해야 돼..
그리고 각 식기 형태 별로 그 문장을 어디에 어떻게 배열할지
하나하나 다 정해야 된다고.. 물론 접시야 어렵지 않겠지만..
주전자나 소스 보트 이런 건 또 하나하나 디자인 배열 이렇게 다 고려해야 돼..
그뿐이냐고..
내가 언제 출항할지 모르는데
아무튼 그 디자인 시안을 종이에다 그려서
나 광저우로 출항하기 전에 건네줄 수 있어야 한다고..
나는 바쁜 와중에 또 자네 시안 가지고서 거의 1년을 배를 타고 중국에 가야 돼..
그 디자인 시안이 그려진 종이를 운나쁘게 잃어버릴 지도 모르지..
그럼 나나 자네나 망하는 거라고...
광저우 겨우 도착해서 도착하자마자
현지 공방 가서 주문을 맡긴다 하더라도..
장난하냐고..
500점을 나 출항 전까지 만들려면
얼마나 많은 도자 공이며 화 배공(도자기 표면에 회화 장식을 하는 장인)이 동원되야하며...
그리고 가장 큰 문제는
중국 사람들, 우리 서양 화법에 익숙하지가 않아..
사람이고 풍경이고 뭐고 입체감이 없어.. 완전 납딱하다고 평평해 그림이..
걔네 전통 그림들이 다 그래..
영어도 당연히 모르고.. 자네 문장에 적혀있는 알파벳 그런 거 전혀 모를걸?
문장이 뭔지도 모르고 그냥 그림이라고 생각할 거야.
일전에 내가 펍 백작 딸 이자벨라 결혼 선물로
중국에서 티세트에다가 문장을 장식해서 선물을 했다고 말했잖아,
그거 주문 제작하는 과정에서 완전 빡쳤던 게
그 이자벨라 예비 남편네 집안 문장에 글쎄 사자 그림이 그려져 있는데,
알고 보니 중국 땅에는 사자가 없다네..
그래서 사자가 뭔지를 몰라..
그래 놓고 완성품이라고 가져온 게
이건 사자가 아니라
개도 아니여 곰도 아니여 여우도 아닌 요상한 모습을 그려놨더라고..
(내 중국인 상인 친구가 그러던데 그거 해태 아니냐고 묻더만!!)
한번 생각해 봐..
문장이라는 개념이 없는 사람들한테 그것도 화법도 완전 다르고...
접시 500점에 문장 그리라고 기껏 주문했더니
사자가 아니라 해태라는 알지도 못하는 이상한 동물 그려놓으면
그게 그 사람 문장이야?
너도 알다시피
문장은 정확하게 그려서 쓰지 않으면 아무 의미가 없어...
(뭐 어차피 니 문장은 공증받은 것도 아니라 별 상관도 없겠지만. ㅠ)
하물며 500점 전부에 잘 못 그리면..
그걸 누가 책임지나~ 그래?
내가? 니가? 중국 화배공이?
아이고 머리야...
내가 광저우에 가면 보통 9~10개월 있는데,
너가 원하는 퀄리티면 아마도 중국 경덕진산 백자 정도는 돼야 될 건데
그 경덕진이 하도 내륙지방이라서
광저우까지 니가 주문할 상품에 쓸 백자 500점 배로 실어 나르다가
와장창 다 깨지기라도 해봐.
완전 망하는 거야...
너무 위험부담이 커...
친구야.. 그냥 포기해...
포기하면 편해..
내가 그거 해주면,
값은 아시아에 있는 한국이라는 나라의 미래에,
좋다 2016년 기준으로 한화 2500만원 정도로 치를게.
선금으로 완납할 수 있어.
나 지금 가진 게 돈밖에 없어.
2500만원 정도는 내가 모로코로 한번 카펫 구매대행 알바 뛰면 금방 벌 수 있어.
그건 문제도 아니야.
그래도 싫어.. 아니 너무 귀찮아...
부담스럽고...
가져오다가 다 깨트릴 수도 있잖아...
나 조심성 없는 거 너도 알잖아..
조심성 없어서 안젤라랑도 그렇게... 그래서 덜컥 윌리엄이 생기고...ㅠㅠ
해리..
윌리엄을 생각해.
그럼 생각이 달라질 거야.
너 윌리엄 에일 백작 딸이랑 결혼시키고 싶다고 했지?
ㅇㅇㅇㅇ(끄덕끄덕)
내가 아주 좋은 정보를 알려 줄 까?
자네가 아주 솔깃 할만한 이야기인데..
뭔데 뭔데??
(그때 갑자기 극장 직원이 소리친다.)
"공연 시작 3분 전입니다!!
관람객들은 모두 착석해주세요!! 중간 입장 안됩니다!!
땅콩이랑 맥주는 미리미리 사두시고 화장실은 건물 왼쪽 오른쪽에 있고
불이 나면 다들 Say, '불이야~'하고 샤우팅을 부탁드리며
아이 세이 '불!'하면 유 세이 '이야~' 죱~ 스웩 첵...어쩌구저쩌구...
그 에일 백작 딸 아이린이 우리 딸 아델이랑
같은 기숙학교 다니는다는 사실은 들어는 봤나?
정말??레알??진심??
그럼! 당연히 진짜지.
그런데 가엾게도 아일린이 에일 백작 자금사정이 나빠지면서
학교 졸업이 무사하게 되기 어려울 것 같다는 소식을
우리 아델을 통해서 들었다네..
물론 귀족 입장에서는 자식 학비를
평민 신분인 자네한테 받는다는 게 자존심에 심히 스크래치 당할 거라고 생각은 하네만...
그래도 지금 그게 문제인가!!
딸아이가 양가집 규수들이면 다 다니는
기숙학교 졸업도 못해서야 되겠냐고 생각하지 않겠나?
그러니까 이걸 기회로 생각하고 자네 아들 윌리엄을
아이린의 후원자가 되어 주는 거야! 키다리 아저씨처럼 말이지!
오호라... 그런 방법이 있었네!!!
내년에 윌리엄이 옥스퍼드를 졸업한다고?
ㅇㅇ
그럼 내년까지 아이린의 장학금과 사교생활을 후원해주고
윌리엄이 졸업할 때 슬쩍 혼담을 오가게 하면 정말 좋을 것 같지 않나?
그치그치
그리고 펍백작을 잘 아는 내 지인이 있어서..
아무래도 투자 상품 상담 명목으로다가
그 집에 조만간 만찬 초대를 받을 것 같으니 말이지..
자네 알다시피 에일백작이 4촌인데
그 자리에 오지 말라는 법이 또 있겠나?
내가 가서 자네 집안이 얼마나 그럴싸하며
윌리엄이 얼마나 훌륭한 인재인지,
내가 바람잡이 역할을 톡톡하게 해줄 테니까,
!! 그러니까!!
중국에서 문장자기 정찬세트 500벌을 주문제작해서 내게 가져다주게나..
ㅠㅠ 진짜 좀 제발 좀 부탁해 ㅠㅠ
공연 시작 1분 전입니다!
밖에 서 계시는 손님들 당장 다 제 자리로 꺼져주세요!! 예??!!
알겠어 알겠다고!!
거, 이 친구
엄청 치밀한 딜 메이커 구만!
그럼 ㅋㅋ내가 누구냐 ㅋㅋ
모로코 상인도 홀린 캡틴 카펫 님 아니겠니 ㅋㅋ
알겠네..
곧 만나서 자세한 이야기를 더 나누자고!
그래, 공연 잘 보고!
오늘 공연 마치고 시간 되면 다시 만나서 이야기하면서
한잔 걸치는 것도 나쁘지 않겠네!
마침 이 공연 극작가 존 게이가
내 친한 친구의 사돈의 언니의 남편의 4 촌동 생이야.
ㅎㅎ 같이 한잔 하면 딱 좋을 것 같은데 말이지..
ㅇㅋㄷㅋ 빠염!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역시 간절히 바라면
하늘이 절로 돕는구나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
앗싸~~~~~~~~~~~~~~~~~~
내 계획대로 될 것 같다!!! 오예 오예 오예!!

나는 얼른 자리로 들어갔어! (1등석 좌석으로 말이지!)
아주 기쁜 마음으로 말이야!!
윌리엄이 아빠 어디 갔다왔어여? 물어보는데 ㅋㅋ
나는 녀석의 머리를 쓰다듬으면서 말했지 ㅎㅎ
나의 보석! 윌! 다 너를 위한 거야!! 후후
윌리엄은 무슨 소리인지 모르겠다는 표정으로
갸우뚱? 하며
연극 무대로 시선을 돌렸어 ㅎㅎ
이 아버지가 깔아주는 레드카펫에 이제 너는 입장만 하면 된단다!!
귀여운 에이린 아가씨와 함께 팔짱 끼고 말이지 ㅋㅋ후후후
자자 이제 근심 걱정 다 떨쳐버리고
서푼짜리 오페라에나 집중해야 징징징!!
하아~ 기대 기대 재미있으면 좋겠다아아아아아!!
와와!! 막이 오른다!

자, 오늘은
여기까지!
그래서 캡틴 차이나는 친구 올란도,
아니 캡틴 카펫을 위해서 문장자기 정찬세트를 중국에서 만들어서 가져와 줄까요?
문장을 향한 캡틴 차이나의 고군분투기는
계속됩니다!
본 글은 지난 2016년 한국예술종합학교 미술원 미술이론과 전문사과정 석사 학위 수여 논문
을 토대로 작성된 글입니다.
[영국 문장 자기 British armorial porcelain]의 역사적 배경에 관해
더욱 자세히 알고 싶으신 분께서는
링크로 접속하여 논문을 열람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Artsy Ko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