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트 시티, 멕시코 시티로 떠나라! ep. 08

또 다른 멕시코 시티를 만나다 - 예술궁전 그리고 폴랑코 Polanco

by ARTSYKOO







디에고 리베라 뮤랄 뮤지엄을 거쳐 예술 궁전 (Palacio de Bellas Artes)에 전시된 리베라의 또 다른 유명 작품 [교차로에 서 있는 남자] 까지 모두 둘러본 아리엘과 나.



멕시코 시티 예술 궁전 (Palacio de Bellas Artes)



예술 궁전 앞 풍경. 일요일 오후의 여유로운 분위기가 매력적이다. 궁전 앞 광장으로 모여드는 멕시코 시티 사람들의 얼굴은 하나같이 밝고 행복한 모습이다.



예술궁전 내부. 저 멀리 디에고 리베라의 작품 "교차로에 서 있는 남자"가 보인다.







+ 예술궁전 Palacio de Bellas Artes, 디에고 리베라의 [교차로에 서 있는 남자]


디에고 리베라, 교차로에 서 있는 남자, 1934, 예술궁전 Palacio de Bellas Artes, Mexico City 소장.



사실 예술궁전까지 향한 이유는 단 하나,


디에고 리베라의 [교차로에 서 있는 남자]를 보기 위함이었다.




1934년 완성된 이 작품은 사실상 동일한 작품의 두 번째 에디션으로, 본 작품이 완성되기 10개월 전 미국의 록펠러 재단의 의뢰에 맞추어 제작된 첫 번째 작품이 뉴욕 록펠러센터에서 전시된 바 있다.


1931년 뉴욕 현대 미술관(Museum of Moder Art, MoMA)에서 성공적인 회고전을 마치게 된 디에고 리베라는 미국에서 굵직한 벽화 프로젝트 진행했고, 샌프란시스코와 디트로이트에서 자동차 공장 노동자들의 모습을 담은 초대형 벽화를 제작하는 등 활발한 작품 활동을 이어가고 있었다.



그러나 작품 [교차로에 서 있는 남자]에 나타나는 리베라의 노골적인 자본주의 비판적 시각, 그에 반해 급진적이고 노동과 노동자를 중시하는 사회주의를 지지하는 작품 이미지가 의미하는 메시지는


당대 자본주의의 중심에 있었던 록펠러 재단 및 미국의 정치적 정서와 대치되어 수개월간의 사회적 논란 끝에 작품 폐기라는 극단적인 결과를 맞게 된다.




작품의 중앙에 배치된 남성은 노동자로서, 당대의 정치적 이데올로기의 가치관이라는 교차로에서 거대한 기계를 조종하는 모습이다. 남성 인물 기준으로 오른쪽의 자본주의 capitalism과 왼쪽의 사회주의 communism가 병치되어 있다.


잠자리의 날개와도 같은 형태의 패널에는 우주, 생명 과학의 이미지가 묘사되어 있으며, 오른쪽에 묘사된 이미지는 1차 세계대전에서 자본주의 국가들이 과학 기술을 독가스, 기관총과 같은 살상 무리로 사용한 것에 대한 (독가스, 기관총 등 각종 무기) 묘사가 나타난다.


그에 반해 왼쪽에는 사회주의의 중심인물인 레온 트로츠키, 프레드릭 엥겔, 칼 마르크스의 모습이 묘사되어 있고, 러시아 혁명의 영광의 순간을 묘사함으로써 극적인 대비 구도를 드러내며, 사회주의를 찬양하는 이미지를 구성했다.


이렇듯 반 자본주의적인 묘사 방식과 사회주의를 선망하는 리베라의 세계관에 대한 당대인들의 의견 차이는 사회적 논란으로 이어지기 충분했다.



하지만 그 모든 정치적 이념적 대립되는 개념을 넘어, 리베라가 상상하고 구현한 세계관은 2018년을 살아가는 지금의 우리가 보아도 담대하고 엄청난 시각적 결과물이라고 할 수 있다.


1930년대 동시대 아티스트들의 이미지를 생각해 볼 때, 리베라의 상상력과 작품 내용을 넘어 압도적인 인상을 주는 이미지의 구현 능력은 리베라의 놀라운 예술성에 다시한번 감탄하게 되는 작품임이 분명하다.


일반적 회화에서는 경험하기 힘든 시각 이미지의 저돌적 에너지를 느껴보소 싶다면 한 번쯤 멕시코시티에 방문하여 실제로 보는 것을 강력히 추천한다.



작품 설명 참고









+ 폴랑코 Polanco에 꼭 가보세요




폴랑코 polanco에 가보라던데?


폴랑코?


응. 멕시코 시티의 비버리 힐즈 Beverly Hills!





아리엘 회사 동료(이자 모두가 멕시코가 no라고 할 때 혼자 Go!라고 해준 은인이기도 한)가 추천해준 폴랑코 지구는 멕시코 시티의 중심에 위치한 차풀테펙 Bosque de Chapultepec 공원 근처에 있는 고급 주택가이자 고급 쇼핑몰이 즐비한 번화가이다.





택시를 타고 이동하는 사이 어느덧 시간은 오후 2시.



차창밖의 풍경이 흥미롭다. 아침 일찍 숙소를 나올 때만 해도 한산했던 도심이었지만, 오전 내내 충분한 휴식을 취한 멕시코시티 시민들은 가족, 연인, 친구들과 함께 모두 밖으로 나와 일요일 오후의 여유를 만끽하고 있었다. 동시에 차도와 길거리는 가득 차기 시작했다.





차가 막히면서 택시는 가다 서다를 반복하고, 이제 거리의 사람들은 택시보다도 더 빠르게 길을 거닐 수 있는 정도가 되었다.


거리를 활보하는 사람들과 겨룰 수 있을 정도의 속도로 가던 우리의 택시는 40여분을 기어간 끝에 가까스로 폴랑코 지구에 도착할 수 있었다.




도착과 동시에 나와 아리엘은 플랑코의 놀라운 광경에 넋을 잃고 바라보고만 있었다.




이 풍경은...?!




여기가 어디인지 어리둥절 해 지는 풍경이 눈앞에 펼쳐진다. 유럽식 노천카페와 고급 레스토랑 끝없이 펼쳐졌고, 사람들은 먹고 마시며 느긋하게 일요일 오후를 보내고 있었다.


폴랑코 거리 곳곳은 산뜻한 일요일 오후의 여유로 가득 차 있었다.




우리 저쪽에 있는 분위기 좋고 창이 큰 레스토랑으로 가지 않을래?


어디?




커다란 유리창 안팎으로 녹음 가득한 식물이 인상적인 레스토랑이 길 맞은편 한편에 눈에 들어왔다.


폴랑코의 클래식한 분위기가 물씬 느껴지는 멋진 한 멕시칸 레스토랑 안으로 우리는 들어갔다.



하늘은 파랗고 공기는 깨끗한 그런 아름다운 오후의 날씨가 참 고마웠다.



창가 테이블에 앉아 화이트 와인을 한잔을 마시며 바깥에 펼쳐진 폴랑코의 풍경을 잠시 감상해 본다.


유모차에 태운 아기와 행복한 일요일을 보내고 있는 젊은 부부, 강아지를 산책시키며 행복한 시간을 보내고 있는 소녀, 공원 근처를 돌며 조깅을 하는 사람들..


레스토랑 맞은편의 공원을 에워싸는 폴랑코 지구의 일요일이 흘러간다.



내가 주문한 화이트 와인과 먹음직스러운 새우 타코



주문한 새우 타코가 나오자 나는 오동통하게 살이 오른 새우 한 점을 포크로 콕- 찍어 입으로 가져간다.




아. 정말 아름다운 일요일 오후이다. 이런 날씨에 이런 동네에 와 있다니. 정말 파라다이스가 따로 없네.


그러게. 정말 그 예술궁전이 있던 동쪽이랑은 또 다른 분위기야.


여기는 그냥 유럽의 여느 도시 같은 분위기인걸. 아니다. 그걸로는 뭔가 부족해.


유럽보다도 더 유럽 같은 다운타운이

중미의 도심 한가운데 나타나다니.


뭔가 초현실적인 전개야. 안 그래?


그러게나 말이야. 정말. 초현실적이야.





우리가 택시를 타고 도착한 곳이 멕시코 시티의 어느 지역이 아니라,


마치 대서양을 건너 유럽 대륙의 한 소도시로 진입한 것이 아닌가 하는 착각이 들 정도로


풍경은 유럽을 닮아있었다.


쾌적하고 산뜻한 동네 분위기. 더 말할 것 없이 산뜻하고 클래식해서 여행자가 여행지에서 즐겨보는 여유 부림 하기 좋은 곳이 이곳 폴랑코였다.






창밖 풍경을 유심히 살펴보던 나는 지난 몇일 멕시코시티에 도착 한 이후로 미미하게 내 신경을 자꾸만 자극하던 생각 하나가 또 스치듯 지나가는 것을 느꼈다.




멕시코 시티 말이야.


나는 사실 여기 오기 전까지 유럽의 식민지를 겪은 나라를 아직 한 번도 가본 적이 없었거든.


처음 여기 멕시코 시티에 도착했을 때 차도, 교차로, 신호등, 건축물까지 어느 것 하나 유럽 스타일이 아닌 게 없었어.


특히 파리의 개선문 앞에 서 있는 듯한 인상을 주는 유럽식 교통시스템이나, 개선문으로 만드려던 건축물이 멕시코 독립운동을 거치게 되면서 개선문의 기틀을 유지한 채 독립기념비가 완성되었던 점들 등..


멕시코 독립 기념탑와 그 공원 풍경. 본디 유럽식 '개선문'으로 설계 되었던 건축물은 20세기 초 멕시코 혁명을 거치면서 상부 디자인만 교체하여 멕시코 독립기념탑으로 완공되었다.


이 멕시코라는 나라의 역사를 설명하려고 하면,


오랜 기간 식민화했었던 만큼 스페인을 설명하지 않고는 멕시코 역사와 사회를 설명할 길이 없다는 사실과


그 역사조차스페인어로 표현해야 하는 아이러니가


뭐랄까.


자꾸 마음에 걸린다고 해야 할까?





나는 멕시코시티가 참 좋은데

보고있자니

복잡한 마음이 들기도 해.




이런 폴랑코 같은 부유한 식민 지구에 오면 그 멕시코 토착민은 전혀 보이지 않고, 유럽계 백인 밖에 안 보여.

부유한 정도에 따라서 사람들의 계층이 나뉘는 게 아니라, 그들의 생김새가 사회 계층을 나누는 척도가 되버린 사회인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



그래서인지, 이런 산뜻한 풍경을 보면 처음엔 달콤한 초콜렛이 입 안에 들어오듯 기분이 좋다가도 삼킬 때 쯤 되면 뒷맛이 텁텁한 것 같이 느껴져.




전형적인 유럽식 분수와 공원이 인상적인 멕시코 시티 구시가지 풍경





우리도 만약에 식민지배가 길어지고 수백 년의 시간을 보내게 되었다면, 우리도 그런 식민 사회가 구축한 사회적 천장을 결코 뚫고 올라가는 일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었을 거야.



나는 잠시 아트페어, 미술관을 관람하러 이곳에서 가장 번화한 동네에서 좋은 숙소에 묵으면서 이 도시의 가장 주요 자본이 오가는 환경에만 있지만,


그러다 택시를 타고 잠시라도 나가게 되면 창밖에 비치는 멕시코 시티의 사람들의 또 다른 삶이 그들의 외형적인 면에서 이미 다르다는 사실을 알게 될 때.


조금 난처한 기분이 들어.



이제 와서 그것도 그냥 잠시 들른 외국인인 내가 이 사회에서 경험하는 경직된 계층과 인종에 따른 계층, 빈부격차라는 문제를 제기하는 건 그저 오지랖 피우는 거에 불과한 걸까.




흐음.. 그럴지도.

하지만 무슨 말인지는 충분히 이해가 돼.



이런 상황이 아주 오랜 시간 지속되고, 점점 익숙해지고 그러다 보면 문제의식 조차 못 느낄 수 있을 것 같아.


문제가 있다는 건 알지만, 너무 잘 알지만..


어찌할 수 없는 팍팍한 삶이 상황이 더 악화되지 않기만을 바라는 식으로

기대치가 낮아지는 것 일 수도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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