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일을 혼자 보내며, 혼자임을 만끽하다
<어느 낯선 완벽한 하루>
엊그제는 내 생일이었다.
이번 생일에 나는 그누구도 만나지 않고
대신 스스로를 만나는 특별한 경험을 했다.
그리고 그 어떤 생일 보다 행복한 하루를 보냈다.
나는 포근한 이불 속에 파 뭍혀서 점심때가 다 되도록
한참을 밍기적거리다 배가고파지자 겨우 일어나 미역국을 먹었다.
그러다 갑자기 바이올린 연습이 하고 싶어져서 시간가는 줄 모르고 연습했다. 내 머릿속에 있던 랄로도 브루흐도 바하도 드보르작도 오랜만에 다 나와 내 생일을 찐하게 축하해줬다. (특히 랄로가 가장 많이 :))
연습 내내 재미있는 시간을 보냈다.
연습을 마치니 어느덧 6시 반.
고기가 먹고싶어서 혼자 소고기를 먹으러 내가 자주가는사무실 근처로 고깃집으로 갔고 신나게 맛있게 고기를 먹었다. 맛에 완전히 집중해서. 냠냠.
그리고는 24시간 카페에 가서 이미 다 읽었던 하루키 소설을 또 다시 읽으며 이미 다 아는 내용에서 또 새로운 재미를 발견하는 이른바 “읽고 또 읽기라는 묘미”를 여유로운 마음으로 만끽할 수 있었다. 심지어 커피도 맛있었다.
세상에 태어나 생일을 혼자 보낸 것은 처음이었다.
올해는 설이기도 하고,
그래서 다들 사정이 있을 거라고 생각도 하고
무엇보다 그 어떤 사람과도
내 생일이라는 시간을 공유하고 싶지 않은
희안한 기분이 들었던 것 같다.
그리고 곰곰히 생각 해 보니 늘 누군가가 내 곁에서 진심을 다 해서 늘 내 생일을 축하해줬고 그러면서 즐겁고 고마운 마음들이 들었지만
이번 생일 만큼 내 생일 날 이토록 오로지 나 원하는대로 해본 적이 있었나 싶기도 해서, 그런데 심지어 재미있었어서 약간 어리둥절 했다.
늘어지게 잠을 자고
내가 연주하도 싶은 음악을 마음껏 연주하고
먹고싶은 것을 맛에 집중해서 먹고
맛있는 커피를 마시면서
내가 좋아하는 이미 다 읽은 소설을 또 다시 읽고.
그렇게 오후와 저녁 시간을 혼자 즐기다
밤 12시가 다 되어서야
내 생일이 거의 다 끝나서야
빗방울이 걸려있는 대기를 뚫고
룰루랄라 음악을 흥얼거리며 집으로 돌아갔다.
거의 완벽한 하루였다고 볼 수 있다.
완벽함은 때때로
멋진 선물과 조각과도 같은 케익앞에서
풀 메이컵을 하고 구두를 신고 잘 차려 입고
분위기 좋은 레스토랑에서
와인을 마시는 씬에도 있겠지만
안 씻은 머리와 안한 화장의 ‘나’로
쌩 내 모습으로
빗방울이 걸린 대기를 킁킁거리면서
딘의 음악을 들으며 리듬을 타고
혼자 테헤란로를 거니는 방식의
완벽함도 있다는 걸
알게 된 하루 였다.
간만에 참 잘 쉬었다.
할일이 그렇게 많았는데도 단 한번 들춰보지 않을 정도로
아주 몰입해서
휴식을, 소소한 즐거움을 만끽한 생일이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