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장을 향한 젠틀맨의 열망 3_ 방패로 그려진 '쉴드'
우연일지는 몰라도
실제 방패 위에 그렸던 것에서 탄생한 문장이
그 방패 이미지 자체가 '문장'이라는 가문의 정체성을 상징하는 하나의 상징이 되고,
다시 그 문장 이미지가 가문의 '방패'역할을 톡톡히 한 건 참 흥미로운 일인 것 같아.
대체 이게 무슨 소리냐고?
ㅎㅎ
문장은
그 문장을 소유하고 있었던 인물이나 가문, 혹은 소속 집단(회사, 조합, 조직)의
정체성, 가치관, 특징 등에 기반해서
여러 상징 기호를 조합해서 꾸미기도 하고 하단의 모토에 명문화 해서 채워넣기도 해.
우린 이런 문장의 세부 구성 요소들을 통해서
그 집단의 가치관을 엿볼 수도 있어.
예를 들어,
18세기 영국은 동인도회사를 통해서 아시아 무역으로 큰 돈을 벌었을 뿐만 아니라,
아프리카로 '진출'해서 수백만명의 아프리카인들을 노예로 '구매'해서 노예선에 실어 유럽 대륙으로
'수입, 수출'하는 일로 큰 수익을 올리고 있었어.
이렇게 돈을 벌어서 대저택도 사고, 값비싼 도자기도, 실크도, 마차도 마련하고 티타임도 갖고 했었지..
당시 유럽인들은 이렇게 노예 신분으로 유럽과 아메리카 대륙으로 거래되었던
아프리카인들을 일컬어 'Black gold', 즉 '검은 금'이라고 부를 정도로
노예 무역은 엄청난 수익을 낳았고,이러한 비지니스를 주관했던 사람들은
어마어마한 부를 쌓을 수 있었지..
앞에서 문장에 해당 가문 혹은 집단의 주요 수익원, 사업군을 상징하는 이미지를 적극 반영해서
디자인하기도 했다고 말했잖아?
실제로 영국에 어떤 가문은
자기 가문의 문장에 그들이 아프리카 노예 무역을 담당하는 집안이라는 것을
대대손손 명명백히 알리기를 원했는지
지금 그 가문 자손들은 좀 난처할 것 같아..
자기 선조들이 아프리카인들을 노예로 매매했던 일을 주관한 사람들이라니... 당황스럽겠지..
문장에 아프리칸 노예들을 그려넣는 일도 종종 있었어.
바로 영국 허트포드 후작(Marquess of Hertford) 가문의 문장이 그런 예시인데,
방패 모양 문장 양 옆으로 서 있는 노예가 되어 거래되었던 아프리카 사람들이 그려져 있어..
가문의 문장 장식에 아프리카 노예들을 그려넣다니..
그때는 미쳐 몰랐던 '엄청난 실수'를 한 셈이지 뭐야.
지금 생각해보면 뜨악할 만큼 경우없고 어처구니 없는 의식 수준이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당시 영국을 비롯한 유럽 사회에는 이렇게 아프리카 노예무역을 주관했던 수많은 무역회사와
그에 관여한 가문들이 넘쳐났어.
아무튼..
다시 문장 이야기로 돌아와서!
문장은 어떻게 보면
시각적으로 표현된 일종의 '족보'라고도 할 수 있어.
문장을 '시각화된 족보'라고 할 수 있는 이유를
이해하기 쉽게 예를 들어서 설명해볼게!
혹시 '메디치(Medici)' 가문에 대해서 들어본적 있어?
메디치 가문의 문장이야. "15~16세기 피렌체공화국에서 가장 유력하고 영향력이 높았던 시민 가문이며 공화국의 실제적인 통치자였다. 학문과 예술을 후원하여 르네상스시대가 피렌체에서 열리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하였다."라고 두산 백과에서 설명하고 있네.ㅎㅎ
메디치 가문에 대해서 간략하게 이야기 하자면,
르네상스 이태리 피렌체 지역을 중심으로
이태리의 종교, 정치, 경제, 문화, 예술, 상업 모든 측면에서
막강한 영향력을 가지고 있었던 부유한 은행 가문이자 영향력있는 정치 가문으로,
종종 우리에게 '문화 후원자'이자 '르네상스'를 도래하게 한
핵심적인 이미지로 종종 훈훈한 평판을 받고있지....만!
ㅎㅎ
사실 자세히 들여다보면 그들은 예술을 사랑하고 대가 없이 예술가를 후원했다기 보다는...
그런 훈훈한 사람들이라고만 보기에는 ... 의심스러운 구석이 좀 있지..
매사에 모든 지원과 후원에 있어서 예술을 사랑하는 마음이었다고 보기 보다는,
그들의 정치적인 세력 확장과 그것을 공고히 하기 위해서 성당과 예배당을 천재 아티스트들의 작품으로 채울 수 있도록 후원, 지원했던 정황들이 더러 있어.
그리고 이런 정황들을 통해서 메디치가문이 정치적이고 계산적이면서
자신의 이미지 관리를 잘 하는 영리한 가문 혹은 집단이었다고 평가하는 학자들도 많아.
나도 충분히 그렇게 해석할만다하고 생각해.
아무튼!
이런 시기에 피렌체의 유력가문 메디치가는
프랑스 발루아 왕조의 왕실 가문과의 결혼을 통해서
유럽의 명망있는 왕실과 연대 할 수 있었어.
프랑스 왕실의 입장에서 보면 메디치 가문은
비록 정통성 있는, 유서 깊은 유럽 왕실 가문은 아니었지만,
막대한 결혼 지참금을 가지고 올 수 있는 부유한 며느리,
카트린느 드 메디치(Catherine de Médicis, 1519~1589)를
발루아 왕조(Maison capétienne de Valois)의 새 왕비로 맞이하게 되지.
그리고 이 부유한 피렌체 출신 여인의 남편이 될 사람이 바로
프랑스의 앙리 2세 (Henry Ⅱ, 1547-1559)였어.
헨리 II세랑 카트린 드 메디치의 초상화야.
이 둘의 결혼에 있어서 카트린의 출신과 외모로 인해서 순탄치 않은 결혼생활이 지속되었네~하면서
이런 저런 말들이 많았지만!
여기서 이 커플에 대한 세세한 사생활 이야기 보다는!
이 커플의 출신 가문 간의 결합을 보여주는
'페디그리(pedigree, 선조들의 문장을 통해서 해당 가문의 역사를 문장으로 보여주는 족보)'를
살펴보고 문장이 어떻게 시각적인 족보로 해석될 수 있나 보여주려고 해.
이건 발루아 왕조(가문) 출신인 헨리 Ⅱ세와 메디치 가문 출신 까트린 드 메디치 가문의 결합과정을 문장으로 보여주는 페디그리의 부분이야. 이 페디그리 맨 아래에서 오른쪽이 헨리 2세, 왼쪽이 까트린 드 메디치의 가문 문장이야.
중세 무렵부터 유럽 귀족 혹은 왕실 가문에서 그 가문의 결합 과정을 문장으로써 보여주는 역할을 했던
'페디그리'는
보통 "family tree"라는 족보의 영어 뜻처럼 기본적으로 나무 형태를 띠지.
거기에서 나온 가족 구성원들의 문장을 '나뭇가지'모양 위에 늘어 놓고 가문 간의 결합을 통해서
점점 뻗어나가는 후손들의 구성 현황을 문장으로 알기 쉽게 보여주고 있어.
아래 세대로 내려갈 수록
새로이 결합한 남녀 가문의 선조들의 문장의 몇몇 기호들을 유지하면서
새 커플 고유의 문장을 완성하게 되고,
결과적으로
닮은 듯 다른 각자의 문장이 세대를 걸쳐서 계속해서 새로 만들어지게 되는 구조이지.
(요 앞전 글에서 설명했던 것처럼, 그리핀이나 사자, 독수리 같은 상징 이미지들이 유럽 왕실 문장에 자주 등장하는 이유가 각국 왕실끼리 자꾸 결혼하다 보니까 생긴 결과야.ㅋ 결과적으로 세대를 걸쳐 자꾸 결혼하다 보니까 유럽 각국 왕실 문장에는 비슷한 상징 이미지가 반복적으로 등장하게 되지.!)
헨리 2세와 까트린 가문의 문장은 반반씩 결합되서
요런 모습을 띠게 돼(↓)
ㅎㅎ
또
방패를 기준으로 볼 때,
오른쪽은 남자 가문, 즉 헨리 2세의 가문인 발루아 왕조의 문장이,
왼쪽은 여자 가문, 즉 까트린의 가문인 메디치 가의 문장이
반반씩 사이좋게 자리를 차지하고 있어.
그리고 둘은 왕과 왕비라는 신분이닌 만큼, 방패 위에 왕관(coronet)이
떡~하니 올려져 있지!
내가 앞에서 처음에 "방패 모양"인 "문장"이 실제로 그 소유자들에게
실질적인 '방패 역할'을 톡톡히 했을 것이라는 말했던거, 기억하니?
문장에 나타나는 상징 기호 하나하나들이
자기 가문이 얼마나 유명한 가문들의 결합으로 완성되었나를 보여주게 되고,
이렇게 완성된 문장은
자신의 우월한 출신 배경을 널리 알리는 역할을 하게 되는데,
이걸 널리 알리려면 자기 문장을 사람들의 시선에 많이 노출될 만한 곳곳에 장식해야 했어. 집
앞, 대문, 마차, 의자, 초상화, 옷, 검, 갑옷, 방패,
심지어 블라우스, 손톱깎이 정리함, 수염깎는 그릇, 테이블웨어 장식 까지..
아무튼
방패모양의 문장이 실제로 문장 소유자가 출세의 기로에 섰거나,
사회 활동을 하면서 때때로 난관을 겪게 될 때 효과적인 방패막이 역할을 했다고 볼 수 있다고
생각해서 한번 그렇게 말해봤어ㅎㅎ
문장이 사람들의 눈에 잘 띨 수 있도록 장식되었던 여러가지 문장 장식 중에서,
내가 가장 사랑하고 여러분에게 보여주고 싶은 건 바로,
문장이 장식된 도자기 접시, 문장자기(Armorial Porcelain)야!
문장자기에 대한 자세한 이야기는 다음 포스팅에서 해 줄게!
안녕!

본 글은 지난 2016년 한국예술종합학교 미술원 미술이론과 전문사과정 석사 학위 수여 논문
을 토대로 작성된 글입니다.
[영국 문장 자기 British armorial porcelain]의 역사적 배경에 관해
더욱 자세히 알고 싶으신 분께서는
링크로 접속하여 논문을 열람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Artsy Ko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