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언어 가리기
난 왜 아이가 당연히 차이를 안다고 지례 짐작했는지 모르겠다.
아이가 다닌 Pre-school 은 어린이 집과 조금 다른 형태의 미취학 아이들이 다니는 학교였다.
주로 하루 3시간씩 수업을 받는다.
수업을 받는다는 표현보단 친구들과 즐거운 시간을 보내는 시간으로 봐도 좋을 듯하다.
물론 수업 시간에 알파벳도 배우고 노래도 배운다. 장난감도 가지고 놀고 간식도 먹고 친구들과 논는 시간도 많이 주어진다.
Pre-school에서는 아이가 활달하다, 구김이 없다, 친구와 잘 논다는 늘 긍정적이 피드백을 받았다.
나나 남편은 아이가 어려서부터 공부에 열중하는 학교보단 아이들과 어울리면서 즐거운 시간을 가지는 것을 더 선호했다.
공부야 학교 시작하면 그때 하면 되지...
집에서는 한국어만 사용했다.
주위에 한국어를 많이 힘들어하는 한국 2세들을 보고, 학교 들어가기 전에 한국어를 좀 많이 익혀두기를 바랐다.
드디어 디데이.
아이가 학교 입학을 했다.
미국 초등학교는 유치원부터 시작을 한다.
유치원이기에 좀 놀다 보내나 보다 했다.
웬걸~ 아침 9시부터 3:30까지, 점심 30분 빼곤 모조리 공부다.
영어, 수학, 역사, 과학, 체육, 음악, 미술 등등...
숙제도 한 묶음씩 가지고 왔다.
내가 상상하던 유치원과는 거리가 좀 있지만, 학교는 공부하러 가는 곳이니 공부를 열심히 하면 되겠지 했던 생각이 와르르 무너지는 시점이 있었다.
아이가 태도 지적을 받기 시작했다.
선생님의 이멜이 오기 시작했다.
‘어머님, 아이가 제가 지시하는 방침이나 규칙을 잘 지키지 못합니다.’ 란 이멜을 받기 시작했다.
오잉? 뭐지?
아이가 학교 끝나고 집으로 왔다.
‘아들, 학교 재미있었어?’
‘어, 재미있었어’
‘선생님 말씀 잘 들었어?’
‘어, 잘 들었어.’
‘선생님이 잘 못 따라 하는 것도 있다고 하는데 안 따라 한 거야 못 따라 한 거야?’
‘........’
‘왜?’
‘선생님 말 I don’t understand.’
‘어?’
선생님 지시 문장이 길어지면 아이는 신경을 곤두 세우고 들어도 못 들어본 표현도 많았고, 따라 해야 할 지시도 무엇인지 놓치는 것이었다.
예를 들어 이런 것이다.
카펫에서 빨간 쪽 말고 안쪽 초록색 쪽으로는 여자만, 그 뒤에 검을 줄엔 남자들만 앉아봐.
여자 아이들이 초록색깔 카펫으로 가서 앉으면 내 아이는 움직이는 아이들을 따라 앉았다.
아이는 그쪽 말고, 그 뒤에, 그다음은 이런 식의 표현을 들어본 적이 없고, 그것을 어떻게 하면 되는지 몰랐다.
그럼 선생님이 너 왜 말 안 들어하면서 나에게 아이가 지시를 따르지 않는다고 이멜을 보내는 것이었다.
아이 태도 지적을 받는 이멜을 받은 후 나는 참관수업에 들어갔다.
선생님은 수업을 진행하면서 내 아이가 여자 아이들을 따라 같이 초록색 카펫에 가서 앉으면 ‘봤죠?’하며 나의 동조를 바라는 얼굴을 비추었다.
문제는 거기서 그치지 않았다. 한국어와 영어란 다른 언어인걸 모르는 것이었다.
아이가 유치원을 다니면서 한국어와 영어라는 다른 언어가 있다는 것을 알아챈 것이 아니라, 어떤 말은 선생님이 알아듣고 어떤 말은 못 알아듣는다는 것으로 구별을 하고 있었다.
아이에게 문법이나 언어의 다른 점을 이해시키기에는 아이가 이해하고 알아듣기에는 너무 어려운 난관이었다.
아이가 스스로 몸으로 부딪치며 알아 가기를 옆에서 기다려 주고 응원해주는 것이 현재로썬 최선이었다.
아이에 문법은 이런 거였다.
‘나 봤어 very funny movie. 아주 awesome.’
나는 이런 식의 대화를 영어에 한국어를 같이 쓰려고 노력을 하는 걸로 오해를 했다.
아이가 영어 이해를 생각보다 힘들어하고 한국어와 영어의 구분도 힘들어한다는 걸 미처 알아채지 못한 게 너무 미안했다.
집에서 문제집도 하고 동화책도 종종 읽히기 때문에 문제가 되지 않을 거란 안일한 생각이 오산을 가지고 온 것이리라.
집에서 영어를 쓰기로 결정을 했다.
후회가 밀려오기 시작했다.
집에서 그냥 영어 할걸.. 내가 무슨 애국자라고 한국어만...
아이의 유치원 생활은 즐겁고 재미난 시간보단 언어 역경의 시간으로 회상이 된다.
그래도 아이에게 고맙다. 언젠가는 넘어야 할 산을 아주 잘 넘어 주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