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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러운 전쟁의 시작

by 이웃사

희원에게 문자가 왔다.


이혼 소장이 송달된 모양이라고...

대략 500페이지가 넘는 엄청난 분량의 이혼 소장을 전남편은 성의 없이 몇 장 뒤적여 보더니 티브이를 보고 있단다.


내가 집을 나간 지 1달 2주가 되었으니 보통 일은 아닐 거라 예상했을 것이고, 자신이 아무런 잘못이 없다면 학교로 찾아오든 메일을 보내든 이유를 물었을 것이다. 아무런 조치도 없이 연락처를 차단한 걸 보면 그 또한 이혼을 기다리고 있었을 것이고 상간녀와의 관계를 알고 있으리라 추측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제 아이들에게 어떻게 변명을 할 것인가가 궁금하다. 내로남불이겠지만, 나에 대한 그 어떤 험담을 할지 궁금하긴 하다.


축하주를 한잔 했다.

내가 좋아하고 전남편은 질색하는 막걸리를 사 왔다. 예전에 백화점에서 내가 이 막걸리를 좋아한다고 사려고 했더니, 전남편은 그 많은 사람들 앞에서 ”’알코올중독‘이야? 무슨 막걸리를 먹겠대! “라며 면박을 준 적이 있다. 혼자 사니 내가 좋아하는 것들을 선택할 자유가 생겼다.

자신이 마시는 와인을 한 병은 괜찮은데, 내 취향은 전혀 고려해 준 적이 없다. 나는 와인 냄새만 맡아도 머리가 아픈데, 자신은 고급스럽고 고상한 취향이라고 생각하고 막걸리를 좋아하는 나는 천박하다는 것이다.

그래서 상간녀가 와인을 먹으면 잘 빨아준다라며 자랑을 했나 보다. 둘은 술 취향도 비슷하고 변태적 성향도 비슷하고 뻔뻔한 성격도 비슷한데, 왜 나 같은 전혀 다른 사람과 결혼을 해서 나를 이렇게 괴롭히는 걸까? 그냥 나를 놓아주고 둘이 행복하게 살면 될 것을....


병원진료 예약이 있는 날이다. 새벽 3시에 깨서 다시 잠들어서 5시에 깨고는 눈이 말똥말똥해졌다. 아침 일찍 청소와 빨래를 하고 분리수거도 하고 아침으로 커피도 한잔 마시고 비타민을 챙겨 먹었다. 내가 첫 환자라서 간호사가 오기 전에 선생님이 진료실로 들어오라고 해서 들어갔다. 잠을 못 자서 힘들다는 얘기와 지난 추석 연휴에 있었던 전남편이라는 작자가 애인과 벌인 추접한 행동과 버려진 아들들에 대해 이야기했다. 나중에 두 아이도 함께 상담을 와야 할 것 같다고 했다. 약을 좀 더 잘 잘 수 있게 바꿔주셨고 다음 주 예약을 하고 나왔다.


필라테스를 가려고 시간을 보니 1시간이 남아서 걷기 시작했다. 음악을 들으며 아침 운동이라 생각하고 걷다 보니 약속시간 5분 전에 도착했다. 30분만 스트레칭하고 내가 이야기를 좀 하자 했다.


전남편은 내가 필라테스를 다니면서 선생님이 아주 좋다. 운동을 잘 시켜준다는 칭찬을 기억하고는 상간녀를 나와 같은 필라테스에 보냈다. 카톡 내용에 상간녀는 ‘지수와 오늘 필라테스에서 만났어요, 살이 좀 빠졌더라고요!’라는 내용을 보고 필라테스 선생에게 카톡으로 상간녀의 사진을 보내서 혹시 회원이냐고 물었다. 필라테스 선생은 ‘맞아요. 미국에 사셔서 한국 들어올 때마다 나오세요.’라고 했다.


“선생님, 지난번 그 여자 때문에 나 이혼해요.”

“네?”


선생님이 얼굴은 일그러지고 눈은 튀어나올 것처럼 동그래졌다.

“그 여자 처음에 왔을 때 회원의 지인 추천으로 왔다고 했죠? 그 회원이 나고 지인이 전남편이고, 그 여자가 남편의 상간녀였어요.”


차를 한잔 마시면서 그간의 이야기를 간단히 하고 멀리 이사를 가서 운동을 자주 올 수 없다는 이야기를 했다. 그 여자와 몇 번 마주친 기억이 있다고 했더니...


“도저히 불륜을 저지를 그런 여자로 보이진 않았어요. 너무 평범해서...그냥 동네 아줌마인데...”

“그 뚱뚱하고 못생긴 여자가 전남편에겐 세상에서 가장 아름답고 섹시하고 사랑스러운 여자래요.”

참 알 수 없는 일이지만, 전남편은 수도 없이 상간녀가 자신의 이상적인 여자라고 했다.

상간녀에 비해 난 키크고 너무 날씬하고 이뻤나 보다 하하...


막 나오려는데, 선생님이 안아주면서

“반짝반짝하셔야 하는 분인데... 너무 살이 빠지셔서 이상했어요. 곧 봬요.”


다음날 전남편은 큰 아들 희원이를 붙잡고 이혼 소장 이야기를 했다고 한다.


“엄마를 만나기 전에 내가 너무 사랑하는 여자가 있었어. 그런데 너희 친할머니 알잖니? 그 여자를 너무 괴롭혀서 헤어지게 된 거야. 몇 년 전에 그 여자가 나한테 도움을 청하러 오게 되면서 깊은 관계가 된 거지. 그런데 네 엄마가 그걸 알았나 봐. 이혼소장을 보내왔다. 아빠가 어떻게 해야 할까?”

“그렇게 사랑했으면 엄마랑 결혼을 하면 안 되는 거잖아요! ”

“네 엄마를 싫어하지는 않아. 완벽한 사람이니까 싫어하진 않지만.... 아빤 그 여자를 너무 사랑해”

“그럼 엄마랑 헤어지는 게 맞네.. 그렇잖아요?”


내로남불의 대명사인가? 어이가 상실한 무논리의 끝판왕이다.

돌아오는 전철에서 희원이가 너무 어이가 없다면서 전남편과 통화한 파일을 보내왔다.


“난 니들에겐 최선을 다했는데, 한순간 파렴치한 사람으로 매도되어 버렸어. 그래도 너희들을 뒷바라지할 거야. 여자 입장에선 이혼은 돈을 내놓으라는 건데, 내가 딴 주머니 찬 적도 없고 버는 족족 생활비로 부담했는데 이제 와서 다 내놓으란다. 엄마는 유산도 안 준다고 하잖아? 난 유산을 줄 테니 내게 도움을 주면 좋겠다.” 란다.


딴 주머니는 안 찼을지 몰라도(나중에 재산추적을 해보니 딴 주머니는 수도 없이 많았다) 딴 여자는 찼으면서, 자신의 불륜 이야기는 쏙 빼고 아버지 역할만 이야기하고 남편으로서의 역할에 최선을 다하지 않은 것은 아예 이야기도 안 하고 오로지 돈 이야기뿐이었다. 돈을 다 뺏길까 봐 그게 제일 무서운가 보다. 그 당시 내게 제일 중요한 것은 나의 목숨과 두 아들이 겪게 될 트라우마였다.


자기가 유책배우자라는 사실에 대해서도 이야기도 하지 않고 자길 도와달란다. 질질 짜면서 코를 훌쩍거리며 음성은 평소보다 기운을 빼고 회유를 위한 부드러움으로 포장을 했다.


희원이도 알 것이다. 아버지가 자신의 불륜은 쏙 빼고 이렇게 이야기하는 것이 얼마나 야비하고 위선적인 것인지 희원이에게 자신의 불륜을 아는지 테스트하기 위한 거였다고 알려주었다. 야비함이 역시 자기 母와 똑같았다. 자기편이 되면 유산을 남겨 줄 수 있단다. 그리고 나의 이혼소송은 돈을 뺏기 위한 쇼로 전락시켰다. 자신의 불륜에 대한 미안함은 한 마디도 없이 아이들을 뒷바라지를 어디에서 한다는 건가? 영주권 따서 혼자 상간녀가 사는 미국으로 간다고 해놓고 아들들에게 돈으로 마음을 사고 싶은가 보다.


나는 생각했다. 최소한 인간이라면 어떻게든 나에게 연락을 해서 용서를 빌어야 하는 게 인지상정인데, 그는 그러지 않았다. 후안무치한 인간! 오히려 아들에게 전화를 해서 자기편이 되어달라니, 우리가 뭐 편먹고 싸우는 타이틀 매치를 하자는 건가 말이다. 우리 싸움에 아들들은 왜 억지로 참여시키려는지 야비함이 극치를 다한다는 생각에 치가 떨렸다. 뭐 아들더러 지가 유부녀인 상간녀와 재혼하는데 꽃돌이라도 하라는 건가 말이다. 그렇게 신나게 상간녀와 놀아나고, 조강지처를 조롱하고 죽이려고 하고 아들들을 기만하면서 지 놀 거 다 놀고 하고 싶은 거 다한 인간이 울기는 왜 우는가 말이다. 모두 쇼일 것이다.


그 내용 안에는 역시 나에 대한 미안함은 없을 뿐 아니라, 이혼을 해서 돈을 뜯어내려는 꽃뱀으로 여긴다는 생각이 드니 울화통이 터지고 손이 부들부들 떨렸다. 당장 달려가서 정말 칼이라도 들고 싶은 심정이었다. 아들에게 본인이 김경아와 불륜한 것에 대한 미안함이나 부끄러움도 없었다.

몇 번을 들어도 나는'지가'이다. 김경아는 '경아'라는 이름을 그렇게 불러대면서 나는 '지'란다. 나도 이름이 있는데.... 내가 이렇게 한심하게 무시당하고 살아온 것이다. 상간녀 옆으로 도망갈 준비만하던 놈이 갑자기 아들에게 도와달라고 울면서 전화를 하고 뭐 하자는 건지 모르겠지만, 이제부터 그 인간(아니 짐승이라고 하는 게 맞다.)과의 더러운 전쟁이 시작되었다.



* 지금 이 글을 쓰면서 주변 지인에게 많은 염려와 걱정을 듣는다. 혹시 이게 문제가 되어서 너의 신상에 어떤 영향을 끼칠지 걱정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나는 그런 위험을 감수하고 이 글을 쓴다. 이미 다른 일로 명예훼손은 당한 상태이며 법이 내편이 아님을 너무도 잘 알기에 내 모든 것을 걸고 나의 경험을 쓰고자 한다. 그러나 우리나라에는 '사실적시에 의한 명예훼손'이라는 죄명이 있다. 난 내가 당한 사실을 이야기하는 게 위법했는지 몰랐고, 피해자인 나는 입 닥치고 고통을 감내해야 한다는데 가해자들은 아직도 불륜을 즐기고 아들들을 속이고 있다는 게 너무 억울한 마음으로 이 글을 쓰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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