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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물처럼 몰려오는 생각들

by 이웃사

화가 나서 전철에서 가까운 지영이네 집에 가서 술을 한 병 벌꺽벌꺽 마시고 엉엉 울다가 나왔다. 나오는 날 보면 지영이가 이제 매번 무슨 일 있을 때마다 이러면 너 못 견뎌... 제발 대충 넘어가라고. 맞는 말인데, 아직 그렇게 되질 않는다.

걸어오는 내내 입에서 ’ 개씨발놈, 십새끼, 미친놈, 좇같은 놈‘을 중얼중얼 거리며 비틀거리며 걸으니 사람들이 멀리 피해 가고 있었다. 이런 기분에 술을 마시고 주정을 하는구나....


아침 일찍 공원을 걷고 커피를 한잔 마시고 이비인후과에 갔다. 어제부터 목이 아파서 갔더니 목이 많이 부었단다. 학교에 보낼 서류를 우체국에서 보내고 집에 왔더니 희원이의 문자가 왔다.

이 개새끼가 금고를 열어야 한다고 열쇠여는 사람을 불렀으니, 지켜보라고 했다고 한다. 그 금고에는 부동산 문서와 보험 서류, 여러 가지 중요서류들이 있었다. 안타깝게도, 내가 집을 나오면서 이 모든 서류를 다 들고 나온 상태라서, 비어있는 금고를 보면 열 좀 받을 거다.


변호사에게 전화를 했지만, 아직 출근 전이란다.

전화가 온 변호사는 여전히 차갑고 냉소적이다. 혹시 이상훈과 통화했느냐고 물었더니

”변호인은 의뢰인의 허락을 받아야 상대방과 만나거나 전화 통화를 할 수 있습니다. “


그러냐고 내가 변호사와 처음 미팅 때 협의이혼 하자고 하면 어떤 조건이면 하겠냐고 물었을 때, 부동산을 다 주면 하겠다고 했더니 그럴 일은 없을 것이라고 한 대화가 생각나서 어제 이 미친놈이 내가 전 재산을 내놓으라고 했다고 하니, 변호사는


” 2억 달라고 했는데요. “ 라며 시큰둥한 대답뿐이다.

”그러게요. 근데 아들이 재판에 증인이 되기도 하나요? 왜 도와달라는 걸까요? “했더니

” 매번 이런 일이 있을 때마다 신경 쓸 필요 없습니다. 금고를 열어서 문서가 없다는 걸 안다고 해서 절도를 한 것도 아니잖아요? 그러면 되죠. 좀 더 냉정하게 길게 보셔야 해요. “


전화를 끊으며 괜히 걸었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변호사에게 위로나 지지는 받을 수 없구나. 불필요한 말은 하지도 않으려 한다. 말이 다 돈이라 그런가? 김경아에게는 왜 소장이 가지 않는지는 확인해 보고 알려주겠다고 한다. 변호사 말대로 그냥 가만히 기다리기만 하면 되는 걸까? 나는 너무 불안하고 마음이 급한데, 변호사는 나와는 달랐다. 전문가라서 오랜 경험을 해서 모든 것이 아무렇지도 않을지 몰라도 나에겐 처음 있는 일이라서 모든 것이 생소하고 불안하기만 했다.


소장을 처음 받은 일요일 저녁에 전남편은 혼잣말로 ’ 가지가지하네.. 미친년‘이라고 했단다.


그런데 다음날 서류를 검토해 보니 ’ 자신의 외도와 불륜에 대한 증거와 사진‘이 나오니 갑자기 애들에게 미안해졌나 보다. 그러니 남편으로서 최선을 다했다는 말은 없고, 아빠로서 최선을 다했다는 말만 강조했다. 돈을 다 뺏길까 봐 겁이 났고 금고를 열고 보니 문서도 없고 하니 오늘 이 시간쯤에는 여기저기 전화해서 유능한 이혼 변호사를 구하고 있을 것이다. 소장을 들고 가서 바로 당장 상담을 하고 오늘내일 변호사를 구해서 작전을 짜야겠다는 공격적 태도가 느껴진다. 어제 소장을 읽고 나서 느껴지던 아들들에게 미안함은 사라지고 앞으로 이제부터 절대로 엄마를 집에 들이지 말라고 명령을 했다고 한다. 이제 제대로 싸울 생각이 든 것이다. 나를 배신하고 속이고 조롱한 것에 대한 미안함은 하나도 없고 자신의 돈을 뺏어가려는 나쁜 도둑년이라는 생각뿐인 것이다.


변호사를 처음 만났을 때, 미안하다는 소리를 듣고 싶다 했더니, 변호사는 아주 무표정한 얼굴로 ’ 절대 그런 일은 없습니다.‘라고 했던 게 생각난다.


이제 이 개새끼가 자신의 치부를 최대한 숨기기 위해 어떻게 할 것인가를 생각해 보았다.


먼저 아이들이 아는지를 확인하고 내가 이야기를 하지 않은 이유를 생각해 보겠지... 민우는 수능에 영향을 미칠까 봐 이야기 안 했을 거고, 희원이는 믿음이 가질 않는다고 생각하고 혼자 독단적으로 움직인 것이라고 결론 내릴 것이다. 그러고 나면 소장을 다시 보면서 내가 어떻게 이런 자료를 구했는지를 생각해 보겠지... 미국에서 돌아와서 맥주 2캔을 먹고 잠이 들었던 날 자신의 핸드폰을 뒤졌다는 걸 유추하고는 화가 나고 혈압이 오르겠지... 김경아에게는 이미 어제 카톡으로 소송제기를 했다고 전달했을 거고, 김경아는 자신의 집으로 오게 되면 남편이 볼까 봐 전전긍긍하고 있겠지? 이 새끼는 자신과 상간녀를 구해줄 변호사를 뒤지고 있을 거다. 자신의 재산을 지키고 위자료를 최대한 깎아서 주고 이혼시켜 줄 변호사를 말이다.


그다음에 변호사를 수임하고는 '나의 냉정함과 엄격함 때문에 결혼생활이 편치 않았다고 할 것이다. 늘 싸우려고 들고 잘난 척을 해서 힘들었다. 히스테리가 심해서 집에 와도 편치 않았다. 아들들도 엄마를 싫어해서 지금 없으니까 오히려 좋아한다. 그래서 나를 이해해 주는 애인이 필요했고 애인을 사랑한다. 이혼하면 결혼할 것이다. 그러면 내가 꿈꾸는 완벽한 안정감 있는 가정이 될 것이다. 재산분할은 월급도 적었고 지 돈은 지 명품 사는데 다 써버려서 내가 생활비를 다 냈다'라고 거짓말과 과장된 표현을 할 거고 그러니 재산분할은 30~40% 정도로 책정하자고 할 것이다.


그가 원하는 대로 나는 재산들을 확인하고 내가 얼마나 가져올 수 있는지 그리고 앞으로 어떻게 살 것인가를 생각해 봤다. 최소한 이 미친 년놈들처럼 미쳐서 이성을 잃고 에너지를 소비하며 살고 싶진 않다. 그러기엔 나의 시간과 에너지가 너무 아깝다고 생각한다.


* 지금 이 글을 쓰면서 주변 지인에게 많은 염려오 걱정을 듣는다. 혹시 이게 문제가 되어서 너의 신상에 어떤 영향을 끼칠지 걱정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나는 그런 위험을 감수하고 이 글을 쓴다. 이미 다른 일로 명예훼손은 당한 상태이며 법이 내편이 아님을 너무도 잘 알기에 내 모든 것을 걸고 나의 경험을 쓰고자 한다. 그러나 우리나라에는 '사실적시에 의한 명예훼손'이라는 죄명이 있다. 난 내가 당한 사실을 이야기하는 게 위법했는지 몰랐고, 피해자인 나는 입 닥치고 고통을 감내해야 한다는데 가해자들은 아직도 불륜을 즐기고 아들들을 속이고 있다는 게 너무 억울한 마음으로 이 글을 쓰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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