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우는 예정대로 수능을 봤다.
엄마의 일탈에 다소 놀랐지만, 희원이가 잘 잡아주고 있었고, 본인도 이 일이 그냥 소소한 일상이 아니라고 느꼈는지 더 열심히 공부할 거라고 했다니 너무 고마웠다.
희원이가 수능 전에 학원 픽업과 수시논술, 컨설팅 등 을 데리고 다녔고 수능 날에도 볶음밥 도시락을 챙겨서 수능 고사장까지 데려다주었단다. 수시 시험장도 희원이가 데리고 간다고 하니 그나마 너무 다행이라는 생각이 든다. 17년 된 똥차라도 한 대 있으니 희원이가 민우를 데려다줄 수 있고... 민우는 지금 무슨 생각을 할까? 엄마가 없어서 화가 난 건지, 서운한 건지, 정말 아무렇지도 않은지...
오후에 법원 앱에 보니 상대 변호사가 이효종이라고 뜨는데, 친구인 이은태 노무사의 같은 법무법인에 있는 젊은 남자 변호사였다. 이미 피고들의 선임계와 답변서, 송장장소 변경신청서까지 제출한 상태였다. 법원에 29일에 답변서를 송달했다고 나오니, 오늘 도착했을 것이다. 변호사에게 메일을 보내서 답변서를 받았다.
"피고들은 원고의 청구 및 주장에 대하여 부인하는 바이며, 자세한 이유는 조속한 시일 내에 준비서면으로 정리하여 제출하도록 하겠습니다. "
라고 되어있었다.
이렇게 분명한 사실에 부인을 한다는 게 너무 어이가 없었다. 난 최소한 창피한 줄 알면 빨리 인정하고 합의해서 빨리 정리하려고 하는 게 맞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도무지 말이 안 된다.
변호사와 통화를 해보니, 어떤 청구와 어떤 주장을 부인하는지가 정확히 나와 있지 않아서 우리는 우리가 할 일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재산명시와 은행계좌조회를 시작하겠다고 했다. 게다가 변호사가 가사사건 전문이 아니고 어려서 경험이 많지 않은 사람이라며 아마 아직 자료도 제대로 파악 못하고 있을 수 있다고 한다. 조금 안심이 되지만, 모든 사실을 부인한다니까 억울함과 화가 치밀어 올랐다.
병원에 전화를 해서 너무 우울하다는 이야기를 하고 약을 선택해서 미리 먹었다.
추석 내내 영상을 찍고 논문과 저서 등 해야 할 일이 많은데, 손에 잡히지도 않고 멍하니 아니.... 생각을 하질 못하고 있다. 인간이 이렇게 자기를 지키기 위해 비열 해지는구나를 생각하니 다 떨어졌던 정마저도 사라지고, 참 더럽고 끔찍한 괴물로 느껴졌다.
이제 나는 기다려야 한다고 한다. 코로나라서 재판기일이 잡히기 어렵고 게다가 양육권 다툼이 없으면 또 밀리는 경향이 있어서 수능 전에 재판을 하기 어려울 것 같다고 한다. 수능이 끝나면 민우에게도 알리고, 두 아들들이 알게 된 것을 이 새끼에게 알려줄 생각이다. 더 이상 아들들을 기만하고 거짓말로 회유하려 하지 못하도록.
마지막으로 변호사는 내가 김경아의 남편에게 알리는 것을 말리는 이유를 이렇게 설명했다. 이런 식으로 소장을 숨기는 걸로 봐서는 이혼의사가 없으니 그대로 두고 진행해야 덜 힘들다는 것이다. 그리고 재판이 끝난 후에 남편에게도 알리면 된다는 것이다. 변호사는 그 남편도 피해자인데 왜 괴롭게 알리려고 하느냐고 묻는데, 난 그 사람도 속고 있는 게 나와 같아서 사실을 알려주고 싶다고 했다. 결정이야 본인들이 하겠지만, 나 같은 사람이 또 있다니 얼마나 억울하겠냐고.
전화를 끊고 이제부터 기나긴 기다림의 시간이다.
무어라 변명을 하고 혼인파탄의 원인을 내가 제공했다고 할 것이라서 나의 기다림은 감정을 조절하는 것이 제일 중요하다. 아마도 그 동영상 캡처 사진은 본인이 아니며, 카톡도 본인의 것이 아니라고 우길 것이며, 두 사람은 서로 친한 동료라고 하겠지... 그리고 내가 평소에 가사와 엄마로서 소홀하고 히스테리와 잔소리가 심해서 아들들과도 사이가 나쁘다. 그리고 시부모의 폭언은 증거가 없다고 생떼를 쓰겠지!
* 지금 이 글을 쓰면서 주변 지인에게 많은 염려와 걱정을 듣는다. 혹시 이게 문제가 되어서 너의 신상에 어떤 영향을 끼칠지 걱정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나는 그런 위험을 감수하고 이 글을 쓴다. 이미 다른 일로 명예훼손은 당한 상태이며 법이 내편이 아님을 너무도 잘 알기에 내 모든 것을 걸고 나의 경험을 쓰고자 한다. 그러나 우리나라에는 '사실적시에 의한 명예훼손'이라는 죄명이 있다. 난 내가 당한 사실을 이야기하는 게 위법했는지 몰랐고, 피해자인 나는 입 닥치고 고통을 감내해야 한다는데 가해자들은 아직도 불륜을 즐기고 아들들을 속이고 있다는 게 너무 억울한 마음으로 이 글을 쓰고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