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이제 시작~

by 이웃사

마음이 힘든 하루였다.

긴장하지 않기 위해서 아침에 항불안제를 먹고 집으로 향했다. 출발 전에 희원에게 문자를 해서 도착시간과 너는 문을 열어주기만 하면 된다고 했다. 아들이 아빠에게 거스르는 행동을 한다는 인상을 주면 전남편이라는 인간은 희원이를 마구 비난하고 난리를 칠 거라서 내가 갑자기 들이닥쳐야 한다.


생각보다 일찍 9시 40분쯤 도착했다. 이쯤이면 10시 진료 직전이라 cctv를 볼 시간이 없을 것이다.


그런데 며칠째 차가 집에 없단다. 아마도 상간녀가 묵는 원룸에 세워두고 상간녀 김경아가 낮에 차를 쓰는 모양이다. 집에 들어와 보니 엉망이었다. 아줌마가 보이는 곳 청소를 한다 해도 물건들이 여기저기 어질러 있었고, 내가 마지막으로 본 모습이 아니었다. 내가 좋아하는 조각작품이나 소품들도 사라지고 없었고 내 옷은 모두 사라졌다. 복도장 위에 있던 가족사진들은 다 없어지고 전남편의 독사진 3개가 액자에 있었다. 아이러니한 것은 그 사진들은 여행 때마다 내가 전남편을 찍어준 사진들이었다.

자기 사진만으로 바꿔 놓은 걸 보니, 상간녀에게 보여주기 위한 허세스러운 행동인 것 같다.

’나 이런 사람이야. 성공한 사람이야. 멋있지?‘ 김경아는 ’어머 상훈 씨 너무 멋있어요 대단해요. 집도 멋지고요...‘라며 집안을 둘러보고 5층 침대에서 한바탕 일을 벌였겠지? 그때 애들과 토리는 호텔에 투숙시켜 놓고 그러는 게 그들의 버킷리스트 같은 거였을 테니...


분노와 혐오스러움에 구토가 나왔다. 어쩜 이렇게 파렴치하고 뻔뻔할 수 있을까.. 그러고 2일간 외박을 한 전남편은 아들들 앞에서 당당하게 상간녀의 전화를 받았단다. 이제 무서울 게 없고 그냥 이혼하고 정리하면 된다고 생각하는 거겠지. ‘영주권도 신청했으니 재산 정리를 해서 미국에 상간녀와의 노후를 준비하겠지?....’ 나에겐 시간이 많지 않은데, 변호사나 법원은 바쁘지 않다. 그들에게 난 수많은 고객, 수많은 고소인 중 한 사람에 불가한 것이니까...


짐을 챙겨서 내 집으로 돌아와 편지와 시진들을 읽었다. 지영이와 참 많은 편지를 쓰고 그 안에는 소소한 일상과 지금은 상상도 할 수 없는 미래를 꿈꾸고 있었다, 그 모든 것들이 지금과는 너무도 거리가 멀어서 웃음이 났다. 짐 속에 사진 파우치가 끼어왔다. 아이들의 증명사진을 모아둔 것들이어서 하나씩 꺼내보며 어린 시절 아이들을 생각해 봤다. 봉투에 몇 장의 사진을 보는 순간 눈물이 터져 나왔다.


군의관 시절 40년 된 관사에 살면서 가난하고 가진 것 없어서 힘들었지만, 희원이를 낳고 산책하면서 찍은 사진들이었다. 이때도 전남편은 나를 집사로 여기고 상간녀 김경아의 대체물로 여겼을까?


그러나 나는 그 어렵고 힘들게 살던 시절을 정말 사랑으로만 극복하고 살았다고 기억된다. 사진을 보자 ’ 네가 어떻게 나한테 이럴 수 있냐 ‘ 외침이 나오고 울음이 복받쳤다. ’정말 이럴 수는 없는 거다. 그 어렵고 힘든 시절을 이렇게 웃으며 지낼 수 있었던 건 서로에 대한 사랑과 아이에 대한 책임감 때문이었는데, 그게 17년 만에 변해버렸구나. 그 깟 섹스 때문에... 그녀의 변태적인 섹스가 그렇게 널 휘어잡았으면 넌 이때도 나와의 사랑이 얼마나 지루하고 답답했을까


왜 진작 날 놔주지 않았는지는 뻔하다. 시궁창 같은 시부모에 대한 반항심으로 결혼하고 아이들을 낳아주고 재테크를 잘하는 집사니까... 그런데 자꾸 사랑을 달라하니 너무 짜증이 난 거다. ’ 넌 경아의 대용품일 뿐이야. 그런데 어딜 자꾸 사랑과 관심을 원해?‘ 벌을 주고 싶었겠지!


한참을 아이들과의 즐거웠던 사진을 보면서 목놓아 울었다. 희원이에게 미안하다고 문자를 했더니 자긴 괜찮다고. 목소리가 듣고 싶어 희원에게 전화를 했다.


“엄마 왜 울어요?”

“엄마가 참 미안해.. 너희에게 이런 고통을 주게 된 게 내 탓인 것 만 같아서”

“그게 왜 엄마 탓이에요. 우릴 버린 건 아빤데”

“너무 미안해... 너희 사진을 보고 있으니까 내가 너무 너희를 힘들게 하는 게 아닌가 싶은 생각이 들었어. 넌 버티기 얼마나 힘들까?..”

“괜찮아요. 멘털 잘 챙기고 너무 감정적일 필요 없다고 생각해요. 그냥 인생에서 한 사람 도려내는 거지.”

“나도 그 한 사람 도려내는 거 아무렇지도 않은데, 너와 민우는 얼마나 힘들까? 게다가 민우는 아빠를 좋아하고 아빠하고 성향도 비슷한데...”

“그래도 사실을 다 알고 나면 이해할 거예요. ”

“엄마 이해 안 해도 되는데, 민우가 삶의 목표를 잃은 고통이 될까 봐......”

“내가 옆에서 잘 살필게요. 걱정 말아요.”

“우리 아들이 커서 이렇게 엄마에게 큰 힘이 돼주는구나.”

“그러니까 그만 울고 진정해요....”


아들의 위로를 받고 전화를 끊고도 울음은 그치지 않았다. 오히려 희원이의 어른스러운 대답에 내가 더 속상하고 마음이 아팠다. 20대 아이가 견디기에는 너무 큰 파도인데, 아이가 너무 아무렇지도 않은 척 하니 그 속은 너무 고통스러울까 하는 생각이 든다.

사진들을 보면 한참을 울고 나니 피곤해져서 침대에 누워 잠이 들었다.

7시쯤 깨서 분리수거를 하고 샤워를 하고 수면제를 먹었다. 오늘은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고 깊이 자고 싶다, 이 무게감을 덜고 도망가고 싶었다.


대법원 앱에는 여전히 23일 이상훈에게 송달이라는 내용만 있고 변화가 없다.

송달이 다 되어야 도달이라는 문자가 뜬다고 한다. 소장을 보고 아마 별로 놀라지도 않고 나에게 위자료나 좀 주고 이혼하고 재산 정리해서 미국 가자고 신나 할 것이다. 상간녀가 애들도 버리고 토리도 버리고 오라고 했으니 전남편은 아들들에겐 거짓으로 핑계를 만들어서 혼자 떠날 것이다. 그런데 아이들은 아버지가 자기들을 버리는 거라는 걸 모르는 게 너무 마음 아프다. 이 나쁜 위선자, 사기꾼은 상간녀에게 가는 자기의 계힉을 이런 식으로 꾸며서 사기를 치고 아들들은 아빠를 믿고 있으니...


집을 나온 지 한 달 2주가 지났다. 혼자만의 공간에서 나만을 위해 살아본 경험이 없어서 너무 행복하다는 생각도 들지만, 아들들을 생각하면 심장이 저려오고 숨쉬기가 어려워진다.



* 지금 이 글을 쓰면서 주변 지인에게 많은 염려과 걱정을 듣는다. 혹시 이게 문제가 되어서 너의 신상에 어떤 영향을 끼칠지 걱정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나는 그런 위험을 감수하고 이 글을 쓴다. 이미 다른 일로 명예훼손은 당한 상태이며 법이 내편이 아님을 너무도 잘 알기에 내 모든 것을 걸고 나의 경험을 쓰고자 한다. 그러나 우리나라에는 '사실적시에 의한 명예훼손'이라는 죄명이 있다. 난 내가 당한 사실을 이야기하는게 위법한지 몰랐고, 피해자인 나는 입닥치고 고통을 감내해야한다는데 가해자들은 아직도 불륜을 즐기고 아들들을 속이고 있다는게 너무 억울한 마음으로 이 글을 쓰고 있는 것이다.

keyword
이전 04화가리워진 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