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민영 Apr 18. 2023

낙서 할 줄 아시나요?

              

자신의 작품을 설명하는 마이클스코긴스

     

미국의 현대미술 작가 마이클 스코긴스는 어린이의 시선으로 노트 형식의 종이에 그림을 그리고 글을 쓰며 작업을 했다. 흔히 볼 수 있는 연습장의 크기를 극대화 시킨건데 마치 거인의 일기장 같다. 작가는 우리가 아이였을 때는 노트가 훨씬 커 보였던 점에 착안했다고 한다. 


그의 작업을 아이들과 해보고자 수업을 준비한 날, 먼져 노트에 낙서를 하자고 했다.

2명은 3학년, 1명은 5학년이었다.

필터링을 거치지 않은, 꾸밈 없이 무엇이라도 그리고 끄적여보는 낙서를 하자니까 이제 3학년이 되는 나윤이와 예림이는 까르르 웃으며 낙서를 한다. 

5학년이 되는 은재는 조금 다른 질문을 한다. 

“낙서? 낙서를 어떻게 해요?” 묻는다. 

좀처럼 시작하지 못하고, 너무 엉망이 될 것 같아, 이리 저리 생각을 한다. 

아마도 은재에겐 3학년 아이들 낙서가 귀여우면서도 좀 철 없어 보이기도 할거다.          




“은재야, 그냥 편하게 낙서해봐. 선생님도 오늘 낙서 같이 해봐야겠다.”

나도 노트 한 장을 가져왔다.

낙.. 서. 그런데 어떻게 하는 거지?

아무거나 그린다는 것은 정말 어려운 일이다. 낙서도 좀 멋져야 할 것 같은. 추상화 같은 세련된 느낌이어야 될 것 같은 부담이 왔다.

“은재야, 낙서 정말 어렵다. 뭔가 꼭 잘해야 될 것 같아서” 내가 말했다.

“저도요. 아... 그냥 다른 거 그리면 안돼요?” 나와 은재는 낙서가 영 어색하여 서로 웃었다.

나는 낙서를 자유롭게 하는 선생님 역할을 해 보이고도 싶었지만, 억지로 하는 척 하는 연기를 하고 싶진 않았다. 

그냥 솔직히 나도 낙서가 어렵다는 걸 보여주고 싶었고, 은재와 나누고 싶었다. 

선생님도 공감한다는 걸.

조금의 시간이 지나고, 은재는 그 날 ‘예쁘게’ 낙서를 했고, 3학년 아이들은 연신 자유로웠다.

어떤 형태를 그려도 되고, 색으로 해도 되고, 글을 써도 되는 낙서에 3학년 아이들은 오늘이 최고 좋은 날이라며, 자유로웠다.                        

아이들은 자라면서 주변을 의식하고, 어른을 의식하고, 그러니까 세상을 의식한다. 이 그림을 다른 사람이 어떻게 볼까, 이 그림이 틀리면 어떻하지? 이렇게 해도 돼요? 나의 그림이지만 좀처럼 자유롭기가 어렵다.


처음 어린아이가 본능처럼 자유롭게 시작한 낙서의 미술은 자라면서 정갈해지는 반면 순수한 내면의 것을 표현하는 것은 어려워진다. 




미술교육원이라는 공간에 오면, 미술이라는 창조적이고 창의적인 작업을 위해 노력하지만, 그럼에도 선생님이 가르침을 하고 아이들이 배움을 받는 것은 이렇게 저렇게 돌려말해도 진리다.

그러나 배움의 미술 뿐 아니라 자발적인 미술 (자유로운 내면의 낙서)을 꺼낼 수 있기를 나는 진심으로 바란다.      

그날 결국 나는 낙서를 하지 못했다.


좀처럼 낙서를 어려워하는 내게 나윤이가 말했다.

“선생님, 선을 하나 그냥 그리면서 시작 해 보세요.” 나윤이는 미소를 머금고, 충분히 다정했다. 

오늘은 나윤이가 내 선생님이었다.     




매거진의 이전글 엄마는 그리기하러 보내고, 아이는 만들기하러 온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