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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르미 May 20. 2020

<산책> 나의 속도로 걸어 나갈 때

그림책으로 마음 안기


그림책으로 마음 안는 시간,


“ 오늘 당신은,

당신의 하루에서

어떤 그림을 그렸나요? “






인생의 절반을 함께 지내 온 친구의 생일을 매해 챙기는 것에는 늘 고민이 따른다. 인생에 증인이 되어가고 있는 서로에게 무엇을 선물하면 더 기억에 남게 될까 유난스레 생각을 하던 때 즈음 친구가 간결하게 ‘우리 이번 생일 때부터는 책 한 권으로 때우자.’ 호탕하게 말을 걸어왔다.



평소에도 친구가 읽으면 좋을 만한 책들을 불현듯 보내는 것을 좋아하는 내게는 너무 좋은 아이디어였다. 별스런 고민 없이 그림책 한 권과 소설책 한 권을 골랐는데... 남이 읽은 책은 나도 읽었으면 좋겠다는 이상스러운 욕심에 평소 보고 싶었던 그림책 하나를 골라 내가 먼저 펼쳐보았다.


사실 이 책을 고른 이유가 컸던 그림. 커다란 책 속의 빛으로 들어가는 소녀가 마음에 훅 들어왔다.
이정호 <산책> 상출판사


그림책 한 권을 모두 읽기까지는 채 몇 분도 걸리지 않았다. 따뜻한 그림을 보고 있자니 어디선가 훈훈한 공기가 감도는 듯했다. 시인 듯, 편지인 듯, 속삭임 같기도 한 한 줄의 문장은 마음에 잔잔한 파동을 주기에 충분했다.



 어디로 가게 될지 아는 사람은 없어.
다만 어디쯤 왔는지는 알 수 있을 거야.
이정호 <산책> 中




각자의 이름을 앞세워 자신만의 삶을 걷고 있는 나에게 혹은 내 친구에게 응원을 보내는 데에 부족함이 없어 보였다. 책을 끝까지 읽고 덮었을 때 눈시울이 붉어졌다. 서른일곱 살인 우리에게 인생은 아직 미지의 길이고 새로운 변화를 꾀하고 싶은 나이이다. 지금 여기에 머무르기에 너무 아까운 나이인가 싶어 나도 모르게 주변을 기웃거리고 확신 없는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기에 계속 흔들릴 수밖에 없다.



그래서 더 눈물이 났는지 모른다. 책을 가만히 보고 있으면 마치 나의 길을  함께 따라왔던 것처럼 계속해서 잔잔하게 메시지를 던진다. 그럼에도 헤매이면서 너의 길을 가라고... 그 길은 때론 불안하겠지만 너만이 알 수 있는 길이라고 말해준다. 계속해서 가라고



인생을 살면서 우린 오랜 길을 걷는다. 많은 일들이 일어나고 그 안에는 상처도 있고 눈물도 기쁨도, 모든 경험이 뒤죽박죽 한데 섞여 있다. 경험이 꼭 좋은 것만은 아닌 것이 아픈 상처는 기억들로 남아 내 몸 어딘가에 흔적을 남기고 앞서서 겁을 주기도 한다.


지금은 내가 이렇게 겁을 먹고 있을 때였나 보다. 앞으로 나아가고는 싶은데 용기가 부족해서 계속 망설이고 있을 때. 작은 메시지가 큰 울림으로 돌아와 나를 흔드는 걸 보면 나는 용기가 필요했던 것 같다.


그저 응원한다는 그 한마디

누구에게나 쉽게 할 수 있는 그 한마디가

나에게만은 왜 이렇게 인색한 걸까


조금 천천히 가도 된다고 말해주고 싶은 우리에게
이정호 <산책> 상출판사




내가 하고 있는 것들에 옳다. 그르다는 없다. 그러나 우린 계속해서 두리번거린다. 이것이 맞을까? 틀리면 어떡하지? 눈치를 보면서 다른 사람의 인정을 바라며. 하지만 우리에게 필요한 건 정답이 아닌 이정표 일지도 모른다.


내가 남길 발자국들의 이정표. 우리가 서로에게, 자신에게 끊임없는 확신을 심어주는 것이야 말로 자기의 길로 걸어가는 가운데 점점이 서있는 이정표가 아닐까?


열심히 걸어온 사람들의 발자국에는 깊이가 있다. 똑같은 발자국 하나 없는 길 가운데 서서 두리번거리고 있을 모든 사람들에게 이 책을 추천해 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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