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미 태어나서 시집가던 날까지
故 전몽각 선생님의 [윤미네 집]은 발간된 지 30년이 지난 오래된 사진작품집이다. 1990년 최초 발간 당시에는 선생님의 유일한 딸이자 책의 주인공인 전윤미 님 사진밖에 없었다고 한다.
이후 세월이 흘러 2002년 암 선고를 받게 된 선생님께서는 얼마 남지 않은 인생을 직감하고 세상을 떠나기 전까지 그동안 담아왔던 아내 사진들을 정리하고 글을 쓰며 작업을 했고, 그 이야기를 묶어 "My Wife"라는 제목을 붙여 새롭게 출간되는 [윤미네 집]에 추가하셨다.
내가 처음 이 책을 접한 것은 딸을 낳고 얼마 되지 않은 2010년 늦가을이었다. 딸을 키우는 아빠라면 꼭 봐야 할 책이라며 지인께서 선물한 것을 계기로 접하게 되었는데 이 책을 읽은 후 딸아이를 키우고 사진을 찍는 데 있어 많은 도움을 받았었다.
누군가 내게 감동적인 사진집 하나만 추천해달라고 묻는다면 나는 주저하지 않고 이 책을 추천할 것이다. 이 책에는 우리 부모님 세대가 살아오신 역사와 시대상이 고스란히 들어 있고 딸을 사랑하는 아버지의 마음이 그대로 녹아 있으며 평생을 함께 한 아내에 대한 사랑도 깃들어 있다. 그게 지금까지도 내가 이 책을 최고의 사진집 중 하나라고 생각하는 이유다.
김포 쪽 하늘에는 웬 비행기가 그토록 쉴 새도 없이 뜨고 또 내리는지.
예전에는 미처 몰랐던 일이다.
윤미가 없는 윤미네 집.....
(머리말 일부)
머리말을 읽는 순간 까닭 없는 눈물 한 방울이 떨어졌다. 머나먼 타국 땅으로 딸을 시집보낸 아버지의 마음을 이보다 더 잘 표현할 수 있을까?
사람들 얘기를 들어 보면 딸이 결혼한 날 아무도 모르게 눈물을 흘리는 아버지들이 많다고 한다. 내 주변만 해도 그런 목격담을 얘기해주는 지인들이 있었다.
곱게 키운 딸을 시집보내고 남몰래 눈물을 보이는 아빠의 마음. 아버지라는 이름은 그래서 엄마와는 또 다른 애틋함이 있는지도 모르겠다.
본문은 전윤미 님의 탄생 사진에서 시작된다. 출산 후 아기 사진을 찍는 것이 뭐 그리 대단한 일이냐 생각하겠지만 모든 것이 당연한 일인 것처럼 여겨지는 요즘 현실에 비춰볼 때 카메라가 귀하고, 나아가 디지털카메라라는 것은 상상도 못 하던 1960년대에 저런 사진을 찍을 생각을 했다는 그 하나만으로도 故 전몽각 선생님의 딸에 대한 사랑, 사진에 대한 애정이 얼마였는지는 짐작이 가고도 남을 것이다.
그리고 이어지는 일상의 사진. 자녀들의 탄생과 성장 과정 등 특별한 것 하나 없는 그저 평범한 모습의 사진들이 연이어 등장한다. 지금처럼 아파트가 보편적으로 공급이 되지 않던 시기, 장독대가 늘어서 있고 빨랫줄에 기저귀가 널린 모습의 주택은 내가 살던 곳과 너무도 닮았다. 작은 방과 이어진 부엌에선 내 어머니도 저렇게 밥상을 차리시곤 했었다.
교복을 교묘하게 피해 다닌 세대가 내 또래 세대이다. 중학교 입학할 무렵 교복 자율화가 실시되었고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얼마 되지 않아 다시 현재의 교복이 부활을 했으니 한편으론 운이 좋았고 또 한편으로는 아쉬움이 남는다. 그래서인지 나는 교복 사진만 보면 묘한 부러움을 느낀다.
생각건대 선생님께선 아마도 이 사진을 찍는 순간이 가장 힘들었지 않았을까 한다. 사진 속 남자분은 전몽각 선생님의 사위이다. 연애시절 하루 날을 잡아서 동행취재(?)를 하며 담은 사진인데 반나절도 안되어 돌아오셨다고 뒤에 밝히셨다. 아무리 평소대로 행동하라고, 카메라를 의식하지 마라고 했다지만 그게 어디 가능한 일이었겠나. 장래의 장인 어르신이 카메라를 들고 쫓아다니는데 어찌 여자 친구와 자연스럽게 데이트를 즐기겠냐고..... 사진을 향한 열정은 존중하지만 선생님도 참 눈치가 없으셔.
나도 훗날 저런 모습이 되지 않을 거라 장담은 못하겠지만 되도록이면 딸아이의 사생활은 지켜주고 싶은 게 지금 심정이다. 심정만 그렇고 딸아이 옷에 GPS 추적장치를 달고 추적을 하는 만행을 저지르지만은 않길 바랄 뿐이다.
사실은 이 날도 사진을 찍고 싶었다.
윤미를 데리고 들어갈 때도 광각렌즈를 끼운 카메라를 한 손에 쥐고 노파인딩으로 찍으면 될 것 같았다.
윤미 님의 결혼식 장면이다. 이 사진에 대한 설명만 봐도 사진에 대한 선생님의 애정이 얼마나 깊은지 알 수 있다. 사랑하는 딸의 결혼식 장면을 본인 스스로 찍고 싶은 생각이 얼마나 강하셨을까. 사진집 전체를 통틀어 이 사진이 유일하게 선생님이 아닌 다른 작가님의 손을 통해 촬영된 사진이라고 한다. 이 사진을 마지막으로 작품집 [윤미네 집]은 마무리를 짓는다.
처음 머리말을 읽고 흘린 눈물이 마를 무렵에는 '나도 저랬는데....', '사람 사는 모습은 다들 비슷하구나.'라는 공감 속에 머리를 끄덕이게 되고 페이지를 한 장씩 넘기면서 나오는 각각의 사진들을 보며 세월의 흐름이 내 몸에 전해지는 느낌을 받기도 했다.
그렇게 한 편의 작은 가족드라마를 본 것 같은 여운이 사라지기도 전에 책의 주인공인 전윤미 님의 인터뷰를 기사화한 글이 나오고 연이어 故 전몽각 선생님의 일기 형식의 글, 그리고 마지막으로 "My Wife"가 시작된다.
"마이 와이프"는 또 다른 감동의 시작이다. 선생님이 처음 이문강 여사를 만나던 시절의 사진들로 시작한 짧은 작품집은 아내에게 바치는 마지막 작은 선물이었다. 선생님께선 암 선고를 받자마자 아내의 사진들을 정리하는 작업을 시작하셨다고 한다. 요즘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의 환경에서 중노동에 가까운 암실에서의 작업, 어쩌면 그런 혹사가 선생님의 수명을 더 단축시켰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과연 선생님은 당신께서 원하시는 만큼의 작품집을 만들어 냈다고 기뻐하셨을까? 아니면 뭔가 부족하다는 아쉬움을 안고 세상을 떠나셨을까?
새롭게 재탄생한 사진집 [윤미네 집]은 이문강 여사의 담담히 써 내려간 회고를 마지막으로 끝을 맺는다.
그리고 그 마지막 몇 줄의 글이 또 한 번 나를 눈물짓게 한다.
'당신의' 이문강....
'당신의' 이문강....
그를 떠나보낸 지 3년 6개월이 되었다.
그와 함께 바라보던 숲을 향한 창가에서
낙엽이 후두두 바람에 날려 떨어지는 것을 보며
나는 남편과 다투던 그 시간이 그립다
<후략>
2009년 11월 당신의 이문강
글쓰기를 잠시 중단한 짧은 휴식 기간 동안 앞으로 쓸 글에 대한 구상도 할 겸 블로그에 올려 둔 육아일기를 순서대로 읽어 보았다. 한창 사진에 빠져 살던 시절, [윤미네 집]을 능가하는 사진집을 내겠노라 호언장담을 했던 기록도 보였다. 그동안 찍어두었던 아내와 딸 사진을 한 장씩 훑어보며 묘한 감정에 휩싸였다.
어느새 딸아이는 내 키만큼 자랐다. 철없던 20대 여자는 40대 중년이 된 지 오래되었고 나는 은퇴를 준비할 나이가 되었다. 그럴 때마다 이별의 순간이 성큼 눈앞에 다가온 느낌이 든다.
언젠가 아내가 내게 말한 적이 있다.
"당신도 쩡이 시집보내는 날 대성통곡할 거 같은데. 당신, 딸바보잖아."
그땐 말 같지도 않은 말 하지 말라며 소리를 버럭 지르고 말았지만 지금 다시 물어본다면 단호하게 아니라고 할 자신이 없다.
이 책이 20대나 30대 초반의 젊은 층에게는 크게 감흥을 주지 못할지도 모르겠다. 화려한 풍경을 선호하는 이들이나 아름다운 인물사진들에 빠진 이들에겐 그저 그런 사진집일 수도 있겠다. 하지만 사진의 가장 큰 매력인 추억의 기록을 느끼고 싶은 분이나 우리 윗세대가 살아온 모습을 보고 싶은 분, 과거의 기억으로 여행을 떠나고자 하는 분에게는 한 번쯤 권해드리고 싶다. 또한 새해를 맞아 가족의 의미를 다시 한번 되새기고 싶은 분들도 꼭 보셨으면 하는 바람이다.
먼 훗날 내가 죽은 후 아내는 나를 향한 짧은 글이라도 써주려나?
'당신의 이OO'까지는 바라지도 않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