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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르웬 Jun 09. 2022

라이킷, 그 한 번의 클릭이 주는 무게감

라이킷 하나에도 내 영혼을 담아

오늘 글은 그 어느 때보다 진솔하게 쓸 예정이라
불편한 표현이 일부 들어있을 가능성이 있으므로  심신이 미약한 분들은 읽기에 주의를 요합니다.


친목질의 대명사 싸이월드를 제외하고 내가 온라인 세상에 본격적으로 발을 들인 곳은 모 사진 커뮤니티였다. 사진 하나만으로 실력을 평가받겠다는 순수한 내 생각은 활동을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아 가볍게 무너졌다. 스스로 생각하기에 꽤 괜찮다 싶은 사진을 올려도 순식간에 파묻혀 버리는 현실에 실망한 내게 지역 사진 동호회에서 친분을 맺은 동생이 해준 얘기는 충격적이었다.

"형님, 거기는 '그들만의 리그'가 존재합니다. 웬만해선 메인에 사진 걸리기 힘들어요. 정말 특별한 사진이 아니고는 죄다 밀어주기식입니다."


밀어주기식이라......  

유심히 지켜봤더니 그 말이 사실이었다. 일반인의 시각에서는 사진 같지도 않은 사진에 '작품이란 이런 것이군요.', '이루 말할 수 없는 감동을 느낍니다.'와 같은 무한 찬양 댓글이 달리고 한여름 소나기처럼 하트가 쏟아질 때마다 나는 그 사진 속에 내가 이해하지 못한 뭔가 대단한 의미라도 내포된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었다. 인맥에 의해 인위적으로 조작되는 일명 '품앗이'였다.


'품앗이'현상은 블로그 세계에서도 마찬가지였다. 누군가는 그걸 두고 '상부상조'라는 표현을 쓰기도 했다. 내가 너의 블로그를 방문해서 공감과 댓글을 남겼으니 너도 내 블로그에 와서 똑같이 해달라는 무언의 압박에 진절머리가 났다. 연말이 다가오면 사태는 더 심각했다. 매년 연말에 뽑는 파워블로거가 되기 위해 이웃수를 늘리고 공감 숫자, 댓글 숫자에 목매는 이들이 우후죽순처럼 늘어났고 그들은 겉으로는 아닌 척하면서 한결같이 노골적인 구애를 펼쳤다.


부끄러운 과거지만 나도 한 때 그 분위기에 편승해 파워블로거를 꿈꿨던 적이 있다. 네이버 메인을 혼자서 씹어 먹던 시절이라 조금만 더 하면 될 수도 있겠다는 욕심에 무분별하게 3종 세트(이웃 추가, 공감, 댓글)를 남발하며 몸집 불리기에 목숨을 걸었었다. 그런 내가 블로그에 환멸을 느낀 것은 단 한 줄의 댓글 때문이었다.  


"우와~ 갈치가 정말 먹음직스럽네요. 군침이 돕니다. 맛있게 드셨겠죠?"


딸아이가 갈치를 잘못 먹고 가시가 목에 걸려 고생했다는 본문을 읽었다면 아니, 제목만 제대로 봤더라도 절대 쓸 수 없는 댓글이었다. 단시간 내에 많은 이웃들에게 흔적을 남기기 위해 글은 읽지도 않고 메인 화면에 뜬 사진만 보고 댓글을 단 것이 분명했다. 나름 친분이 있다고 생각했던 블로그 이웃의 그 댓글 하나에 모든 것이 무의미하게 느껴졌다. 이웃 숫자 늘리고 공감 숫자에 목을 매던 나 자신이 너무 한심스러워 그 즉시 600명이 넘는 허울뿐인 이웃을 깨끗이 정리하고 블로그 생활을 청산했다.


블로그를 접고 뛰어든 페이스북도 별반 다르지 않았다. 최대 5,000명까지 추가 가능한 친구 숫자에 목숨을 건 듯한 사람들을 보거나 친구 숫자가 다 차서 더 이상 친구 수락을 할 수 없다는 공지를 가장한 자랑 가득한 포스팅을 볼 때면 과거의 내 모습이 떠올라 쓴웃음을 지을 수밖에 없었다.  

'아이고, 이 사람들아. 껍데기만 성장하면 뭘 하나. 내실을 기해야지. 페친 수 5,000에 좋아요 100개 받으면 좋아? 난 겨우 페친 30명인데 좋아요 열댓 개는 받는다. 효율성 측면에서 봐도 내가 훨씬 낫지 않나?'


위에 언급된 몇 가지 사례를 겪은 후 내가 내린 결론은 '숫자놀음은 부질없다'는 것이었다. 겉으로만 화려하고 기초가 탄탄하지 못한 곳은 내구성이 약할 수밖에 없다. 브런치에서도 마찬가지다. 운 좋게 메인에 오른 여파로 조회 수, 구독자 수가 급증하고 게시글의 라이킷 숫자가 기대 이상으로 찍히는 그 모든 것들이 거품이고 언제 무너져도 이상하지 않을 '사상누각'일 뿐이다. 숫자에 연연하는 순간 본인만의 글을 쓰기가 힘들어지고 자칫 오버 페이스를 하게 될 수도 있다.


말 꺼내기조차 민망한 경험이지만 내 구독자 수가 폭발적으로 늘어나고 거의 최고 수준의 라이킷 숫자를 기록한 글은 김밥에 관한 글이었다. 잊히는 게 두렵고 사람들의 관심에서 멀어지는 것이 싫어서 급히 블로그에 있는 글 하나를 복사해서 붙여 넣기로 올린 글이 메인에 걸려 발생한 참사였다. 맞춤법 검사를 하고 발행하기까지 걸린 시간이 채 1분이 안될 정도로 무성의함의 극치를 달린 글이 어이없게도 내 글 전체 조회수의 30% 이상을 차지하고 있으며 라이킷 수 2위에 올라있다.


그와 반대로 주제를 정하고 머리를 싸매가며 몇 주일에 걸쳐 완성한 글은 찬밥 신세가 되어 1년이 넘도록 바닥을 기는 경우도 있다. 아무리 내 필력이 들쭉날쭉 천당과 지옥을 오간다 해도 이건 도저히 설명이 불가능하다. 결국 조회 수와 라이킷 수라는 것은 좋은 글을 상징하는 것도 아니며 글쓰기 실력과도 무관한 것이라는 게 내 생각이다.


브런치에 입성한 지 1년 조금 넘었다. 가끔 블로그 시절 버릇을 고치지 못하고 구독자 수, 라이킷 수를 구걸하는 앵벌이 같은 짓을 하고 싶은 욕구가 솟아오를 때가 있다. 뭔가 정체된 느낌이 들고 내 글에 발전이 없는 것 같을 때 그렇게 해서라도 인정받고 싶은 사악한 본성이 기어오르기도 한다. 잊을만하면 한 번씩 나타나는 조급증과 대박을 치고 싶다는 헛된 욕망 때문이다. 그때마다 나는 초심으로 돌아가기 위해 브런치 심사 통과 당시 받았던 메일을 열어서 읽어본다.


그 후엔 브런치 세계에 갓 입성한 분들의 글을 찾아서 읽는다. 아직은 정형화되지 않고 때가 묻지 않은 순수함이 보이는 글이 눈에 띄면 정성을 다 해 라이킷을 눌러 드린다. 완성도 면에서는 조금 부족하더라도 그런 글들이 보이면 짧은 댓글로 내 마음을 표시하기도 한다. 나 또한 처음 이 공간에 발을 들였을 때 이름 모를 누군가로부터 그런 대접을 받았기에 그 이상으로 갚고 싶은 마음에서다.


몇 년 전 서예대전에 출품할 때 낙관 하나 찍는 데 30분 가까이 걸리는 경험을 한 적이 있다. 단순히 도장 하나 찍을 뿐인데 뭐 그리 오래 걸릴까 궁금해하는 내게 선생님께서 하신 말씀이 있다.

"작품을 제출하는 마지막 과정까지도 최선을 다 하는 마음가짐을 가져야 합니다. 그냥 아무렇게나 찍는 도장이 되어선 안됩니다. 낙관 한 번 찍을 때도 자신의 영혼을 담아야 합니다."

그 후 나는 선생님께서 해주신 말씀을 늘 가슴에 새기고 있다.


내게 라이킷은 단순한 마우스 클릭 한 번이 아니다. 글을 읽고 그냥 넘기는 한이 있어도 받았으니 갚아야 한다는 의무감이나 친분 관계 때문에 무분별하게 누르지는 않는다. 내가 라이킷을 누르는 것은 그 글을 쓰기까지 작가가 했던 노력에 대한 존경의 표시이고 내게 읽을거리를 제공해준 데 대한 감사의 표시이다. 글자 하나하나 눈에 담아 가며 마지막 한 줄까지 다 읽었을 때 비로소 마우스를 움직인다.  

  

나는 라이킷 하나에도 내 마음 모두를 담는다.



덧) 간혹 라이킷 하나만 누르고 댓글을 달지 않는 분들을 향해 서운함을 내비치는 작가님들이 계신데 그런 분들께 꼭 해드리고 싶은 말이 있다. 나처럼 댓글에 살고 댓글에 죽는 프로 댓글러가 아닌 이상 몇 줄의 댓글 쓰는 것마저도 부담스러워하는 분들이 계신다. 댓글을 쓰고 싶어도 쓸 수 없는 그런 분들이 눌러주는 라이킷 하나의 소중함을 알았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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