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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르웬 Dec 09. 2022

송충이는 솔잎을 먹어야지

하던 지랄도 멍석이 깔리니 못 하겠더라

브런치를 포함하여 각종 온라인 커뮤니티를 돌아다니다 보면 카페에 앉아 글을 쓰고 있다는 글을 어렵지 않게 보게 되는데 그럴 때마다 그게 도대체 가능한 일인가 의문이 든다. 주변 소음은 차치하더라도 당장 내게로 쏠리는 그 시선('아무도 관심 없음'이라고는 하지 말아 주세요) 어찌 버틴단 말인가. 행여 눈길이라도 마주치면 부끄러움에 고개 숙이기 바쁜 수줍은 성격의 소유자인 나로서는 도저히 수긍할 수 없는 일이었다.


그런 내가 큰 용기를 내서 카페에 앉아 글쓰기에 도전하게 된 일이 생겼으니 2주 전 타고 다니던 차에 이상이 생긴 날의 일이었다. 그 전날부터 시동이 걸렸다가 아예 걸리지 않다가를 반복하기에 무슨 큰 문제라도 생긴 것 같아 서비스 센터에 방문했더니 하필 점심시간이라 엔지니어들이 모두 식사를 하러 갔다는 것이었다. 차를 맡겨놓고 집으로 갔다 오기에도 애매한 시간이고 막연히 휴게실에서 기다리는 것도 못할 짓인 것 같아 어쩔 수 없이 향한 곳이 센터 바로 앞에 있는 카페였다.


때마침 카페 안에는 노트북으로 문서 작업 중인 정장 차림의 젊은 남자 하나뿐, 때는 이 때다 싶어 카운터에 가서 아이스커피 한 잔을 주문한 후 호기롭게 노트북을 꺼내 작가 코스프레를 했다. 시간당 손님 20명 가까이 받아가면서도 두세 시간 내에 글 한 편 완성하는 초능력을 발휘하는 내가 점심시간 포함하여 차량 수리 작업 시간까지 3~4시간이나 주어졌는데 글 하나 완성 못 시킬까 싶었다. 전원을 켜고 브런치에 접속하여 글쓰기 버튼을 누르고 이제 쓰기만 하면 되는데......


그러나 거기까지였다. 10분이 30분이 되고, 30분이 1시간이 되도록 제목조차 정하지 못했다. 조금 비겁하게 꼼수를 써서 작가의 서랍에 있는 미완성 글이라도 건드려볼까 싶었지만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았다. 시간이 흐름에 따라 배터리 수치는 점점 떨어지고 초조함과 조바심 속에 안절부절못한 나는 결국 한 글자도 쓰지 못하고 말았다.


그때 깨달았다. '아, 작가는 아무나 하는 것이 아니구나.' 그 깨달음의 순간, 노트북도 장렬히 방전되었다. 직원에게 콘센트 어디 있냐고 물어보고 전원을 연결한 후 다시 도전할 생각도 잠시 했었지만 낯선 이에게 말 거는 것을 끔찍하게 싫어하는 새가슴을 가진 나는 그마저도 하지 못했다. 이런 새가슴을 가진 채 살고 있으니 7살이나 어린 마누라 앞에서는 얘기도 못 꺼내면서 애꿎게 브런치의 익명성을 이용해 마누라 까는 글이나 올리고 있나 싶은 생각에 급 우울함이 몰려왔다.


역시 나 같은 사람은 살던 대로 살아야 하는 게 맞나 보다. 내 주제에 무슨 카페에서 폼 잡으며 글을 쓴다고. 늘 하던 대로 카운터 구석에 처박혀 물건 정리하다가 지칠 때쯤 떠오르는 단어 몇 개로 꾸역꾸역 문장을 만들어가며 쓰는 게 내 스타일이지. 


그건 그렇고, 우리 작가님들은 카페에 가서 글 쓰시면 잘 써지는가요? 저는 카페에 오신 여자 손님들 얼굴 보느라 글이 안 써질 것 같은데 말입니다. 솔직하게 말씀해 주십시오.


<덧붙이는 글>

다행히 차량에는 큰 이상은 없다고 합니다. 일시적인 현상 같다고 해서 엔진 오일만 갈고 왔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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