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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르웬 Dec 20. 2022

이대로 주저앉을 것인가

 조만간 좌절의 늪에 빠질 많은 브런치 작가들에게

제10회 브런치 북 출판 프로젝트 수상작 발표가 눈앞으로 성큼 다가왔다. 발표 이전에 확인 작업을 위한 메일이 수상자들에겐 이미 개별적으로 발송되었을 것이고 그렇게 누군가는 수상의 영광을, 또 다른 많은 이들은 탈락의 고배를 마실 것이다.


무더운 여름 몇 개월 동안 개인적으로 바쁜 일이 생기는 바람에 한창 피크를 올리고 달려야 할 시기를 허송세월로 보낸 나는 뒤늦게 허겁지겁 준비를 했지만 어느 순간 역부족임을 실감하고 올해는 그저 북 하나 만드는 것에 만족하기로 하고 마음을 내려놓았었다. 이런 나조차도 발표를 일주일 정도 앞두고부터는 마음이 싱숭생숭했었는데 모든 것을 걸고 도전했다가 좌절할 작가님들 심정은 오죽할까 싶은 생각이 들었다.


알 수 없는 불안감과 좌절감, 그동안 살아온 내 인생이 송두리째 부정당하는 느낌까지 들며 대상도 없는 누군가에 분노를 터뜨릴 것만 같던 시간을 보내던 지난주 어느 날, SNS에 올라온 글들을 스쳐 지나듯 스킵하던 중 눈에 들어오는 기사 하나가 있었다. 그 기사를 읽다 보니 그동안 내가 참 배부른 소리를 하고 있었다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었다. 어느새 초심을 잃어버리고 질적 성장보다는 양적 팽창에 집중하고 있던 나에게 그 기사는 많은 것을 깨우쳐 주었다.


15살 소녀 시절부터 글을 쓰기 시작한 작가 첼시 배닝은 15년 넘는 작업 끝에 올해 8월 자신의 첫 판타지 소살인 <왕관과 전설(Of Crowns and Legends)>을 출간했고 몇 개월간 SNS를 통해 열심히 홍보활동을 한 끝에 지난 12월 3일 첫 책 출간 기념 사인회를 열게 된다. 하지만 기대를 안고 참석한 사인회에서 작가의 사인을 받은 사람은 단 두 사람뿐, 그마저도 두 명 모두 자신의 친구라는 처참한 결과를 맞게 된다. 


겪어보지 않아도 충분히 공감하고도 남을 그 참담한 심정에 대해 첼시 배닝은 너무 속상하고 창피했었다는 글을 트위터에 올렸고 그 글을 읽은 수많은 사람들이 리트윗을 해가며 배닝 작가에게 용기를 불어넣어 주게 된다. 그리고 그 글을 읽은 많은 사람들 중 몇몇 베스트셀러 작가들은 앞다투어 자신의 경험담을 공유하며 배닝에게 응원과 위로의 메시지를 보내기 시작한다.


테리 프래쳇과 나는 뉴욕 맨해튼에서 <Good Omens>라는 책 사인회를 열었는데 아무도 오지 않았어요. 그래도 당신에겐 두 명이 왔잖아요 --- <신들의 전쟁> 저자 닐 게이먼
내 사인회에도 아무도 오지 않았어요. 나를 직원으로 생각하고 스카치테이프를 사러 온 남자 한 명이 있긴 했지만  -- 2019년 부커상 수상자 마가렛 애트우드
낭독회를 했을 때 남편의 사촌만 왔었어요. 단 한 사람뿐이었죠. 저는 그날을 절대 잊을 수가 없어요 -- 파친코를 쓴 작가 이민진


하룻밤만에 일어난 기적은 거기에서 멈추지 않았다. 입소문을 타기 시작한 첼시 배닝의 첫 번째 책 <왕관과 전설(Of Crowns and Legends)>은 얼마 가지 않아 아마존 판타지 소설 장르에서 판매 1위까지 오르기도 했고 현재도 베스트셀러로 자리매김해 꾸준히 사랑을 받고 있다고 한다.


내가 이 기사를 읽으며 주목한 부분은 1과 15라는 숫자였다. 책 한 권을 쓰기까지 15년이나 걸렸다는 사실이 믿어지지 않았다. 아니, 무슨 종갓집 씨간장 만드는 것도 아니고 그렇게 오랜 기간 책을 썼다고? 단순하게 비교할 바는 아니지만 그에 비하면 이제 겨우 브런치 작가 2년 차, 그마저도 실제 활동한 시간을 압축하면 1년이 겨우 될까 말까 한 수준에서 단 일주일 만에 기존의 글을 끌어모아 책이랍시고 만들어낸 나 자신이 너무 부끄러웠다. 모르긴 해도 아마 대부분의 브런치 작가들도 나와 크게 다르지 않을 거라 생각한다.


예정대로라면 내일 수상자 발표가 있을 것이고 또 한 번 홍역을 앓는 작가님들을 보게 될 것이다. 누군가는 분노를 쏟아낼 것이고 또 누군가는 극심한 좌절감에 시달릴지도 모른다. 극히 일부가 되겠지만 글쓰기를 중단하거나 아예 브런치를 탈퇴할 분이 있을지도 모르겠다. 그 심정 충분히 이해가 가고도 남지만 많은 작가님들이 조금은 긴 호흡으로 글을 써나갔으면 하는 바람이다.


앞서 언급했던 첼시 배닝 작가의 예시로 알 수 있듯 기적과 행운은 오랜 시간 묵묵히 참고 버티는 사람에게 찾아오는 법이다. 모두 그런 것은 아니겠지만 내가 대충 살펴본 바로는 브런치 북 대상 수상자의 거의 대부분은 오랜 기간 동안 보이지 않는 곳에서 글을 써오신 분들이었다. 몇몇 분들은 전문적으로 배워본 적이 없다는 점을 내세우며 글쓰기 초보인 척 하지만 그건 지나친 겸손이라 생각한다. 어쩌면 나처럼 맨 땅에 헤딩하듯 시작한 글쓰기로는 생각했던 것보다 더 쉽지 않은 도전이었을지도 모른다는 뜻이다. 그러니 많은 작가님들이 불평을 늘어놓더라도, 불만을 표출하더라도 조금만 하고 빠른 시일 내에 정신적 충격을 회복했으면 한다. 


한 두번 실패했다고 실망하고 포기하기엔 그동안 투자한 시간이 너무 아깝지 않은가? 해리포터 시리즈를 집필한 조앤 롤링 작가도 출판사로부터 12번이나 거절당한 끝에 13번째 만에 비로소 소규모 출판사와 계약을 했고 이름만 대면 알 만한 많은 유명 작가들도 한 번에 그 자리에 서게 된 것은 아니다. 멀리 갈 것도 없이 우리 모두 브런치 작가 선정되고 구독자 수 0이었던 시절이 불과 얼마 전이었던 사람이 대부분 아닌가 말이다. 


나는 이제 새로운 브런치 북 제작에 에너지를 쏟을 예정이다. 내년에는 올해의 실패를 거울 삼아 후회 없는 한 판 승부를 펼쳐보고 싶다. 부디 많은 브런치 작가님들이 모든 것을 훌훌 털어버리고 올 한 해 잘 마무리하시고 다가오는 새해를 맞이하셨으면 하는 바람이다. 



<마음의 소리>

내공이 깊은 편집자들은 목차만 봐도 이게 책이 될 글인지 아닌지를 단번에 알 수 있다고 한다. 내가 제출한 브런치 북은 완독자가 딸랑 두 명이었다. 수많은 출판사가 참여한 이번 프로젝트에서 완독자가 딸랑 두 명, 그것도 완독자 두 분이 출판사 관계자란 증거도 없으니 대부분의 출판사 관계자들이 내 글의 목차만 본 후 바로 쓰레기통으로 던진 것은 아닐까 하는 우울한 상상을 하게 된다. 그 상상의 끝에 남는 것은 오기와 집념뿐이었다.


"제가 그렇게 글을 못 씁니까? 속 시원히 말씀 좀 해주세요.

그런데 말이죠. 제가 왕년에 경산시 대표로 나간 당구 선수와 당구 쳐서 이긴 사람입니다. 

비결이 뭐냐고요? 그냥 제가 이길 때까지 쳤어요. (도르마무가 지칠 때까지 개기던 닥터 스트레인지의 기세)

앞으로 제 목표 이룰 때까지 계속 글 쓸 생각입니다. 자존심 상해서라도 중도에 그만두는 일 없을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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