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이 보이지 않을 때엔 분위기 전환을
며칠 전부터 글 쓰는 게 많이 힘들어졌다. 주변 환경이 변한 것도 아니고 글감이 사라진 것도 아닌데 선뜻 글쓰기 버튼을 누르는 것이 망설여질 정도다. 이럴 때를 대비해 배수진을 치듯 참여한 <보글보글> 매거진이 없었더라면 진작에 도망을 쳤을지도 모르겠다. 나와의 약속은 헌신짝처럼 버리는 의지박약형 인간인 내가 어쩌다 남과의 약속은 목숨을 걸고서라도 지키는 것인지 50년 넘게 살면서도 여전히 불가사의다.
요즘 들어 드는 생각은 '내 주제에 무슨 글을 쓰겠다고'라는 것과 '그래도 몇 안 되는 독자들을 위해서라면 할 수 있는 최선은 다 해야지'라는 두 가지다. 그 두 가지 생각이 하루에도 수십 번 이상 교차하는 현실 속에서 꾸역꾸역 힘겹게 한 걸음씩 발걸음을 내딛고 있지만 결과물을 보고 있으면 썩 마음에 들지는 않는다. 도대체 무엇이 문제일까 되돌아보고 또 되짚어보지만 늘 벽에 부딪힌 느낌이 든다. 이럴 땐 분위기를 전환할 수 있는 계기가 필요한데......
어느 논문에서 난임 부부가 잠자리를 바꾸면 임신 가능성이 높아진다는 주장을 한 적이 있다. 늘 정해진 공간에서 비슷한 시간대에 의무 방어전처럼 관계를 가지게 되면 반복되는 익숙함 때문에 임신할 확률이 현저히 낮아진다는 논리였다. 그 말을 어느 정도까지 신뢰할 수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뭔가 앞을 가로막고 있는 느낌이 들 때엔 과감하게 기존의 틀을 깰 필요가 있다는 데엔 동의한다.
글을 쓸 때도 마찬가지다. 무엇부터 써야 할지 전혀 감이 오지 않을 때, 제목과 소재는 정했는데 어떻게 풀어나가야 할지 방향조차 잡지 못할 때, 더 나아가 글감 자체가 아예 떠오르지 않을 때엔 고집스럽게 한 자리를 고수하지 말고 꾸준히 지켜오던 자신만의 루틴에서 벗어나야 한다.
내가 글을 쓰는 공간은 가게 카운터의 구석진 곳이다. 겨우 노트북 하나 놓을 정도의 좁은 공간, 각종 홍보물로 둘러싸여 흡사 도서관 칸막이가 쳐진 것처럼 철저히 비밀이 보장되는 그곳이 나의 집무실이자 집필(?) 공간이다. 가끔 잠들기 직전 떠오르는 단어와 문장 때문에 누워서 폰으로 몇 자 적긴 했지만 대부분의 글이 그곳에서 시작되었고 완성되었었다. 그렇게 정들고 익숙해진 곳을 잠시나마 떠나야 할 필요성을 느꼈다.
'이대로는 안된다'는 위기감이 누적되던 그날, 나는 오랜 고민 끝에 '절필'을 하기로 마음먹었다.
불교 신자는 아니지만 절에 가는 것을 즐기는 편이다. 따로 나들이할 시간이 없는 내겐 그렇게 한 번 나가는 외출이 짧은 여행이 되곤 한다. 가게를 찾는 사람들을 몇 분 간격으로 맞이하고 똑같은 접객 언어를 앵무새처럼 반복하는 내게 산사로 들어서는 진입로는 꽤 많은 선물을 전해준다.
대부분의 사찰이 교외에 있다 보니 도심에서는 쉽게 보기 힘든 것들이 걷는 내내 함께 하는 경우가 많은데 그날도 그랬다. 신록의 푸르름이 주변을 감싸고 지저귀는 새소리와 길 옆으로 흐르는 냇물의 소리가 들리는 이곳이라면 뭔가 작품이 나올 것만 같았다.
조심스럽게 가방에서 펜과 노트를 꺼냈다. 그늘진 바위에 걸터앉아 자연을 만끽하며 글을 써나갔다. 역시 글은 절에 가서 쓰는 '절필'이 제 맛이다.(내 기준에서 절필은 절에 가서 쓰는 글을 뜻하는 거니 토 달지 마시길) 잠깐 사이에 뻘글 하나가 완성되었다. 그 작품을 아래에 공개한다.
제목 : 성주사 가는 길
지은이 : 아르웬
이 맘 때였다. 깃털처럼 가벼운 그녀를 등에 업고 처음 이 길을 걸었던 것이. 태어나서 처음(????) 업어 본 가녀린 여인이었다. 힘들지 않냐는 그녀의 물음에 왕년에 쌀 한 가마니 지고도 100미터를 20초에 주파하던 마당쇠 스타일이었노라 개뻥을 쳤다. 나는 그날 깨달았다. 깃털도 오래 지고 가니 무겁더라는 것을.....
이쑤시개처럼 연약했던 그녀는 어느덧 건강미가 물씬 풍기는 40대 중반의 아줌마가 되었다. 처음 만나던 그때보다 최소 20kg은 더 나갈 것 같다는 나의 날카로운 주장에 그녀는 말도 안 되는 소리라며 펄쩍 뛰었다. 철저한 검증을 하기 위해 큰맘 먹고 구매한 디지털 체중계는 언제부턴가 고장이 난 상태로 방치되어 있다. 멀쩡하던 체중계를 고장 낸 범인은 누구일까?
언젠가 위에 있는 사진을 카톡으로 전송한 후 "여보~~ 당신 오늘 친구들이랑 차 타고 계모임 가는 거 봤어."라는 글을 보낸 남편의 얘기를 들은 적이 있다. 누군가 웃자고 지어낸 얘기일 가능성이 높지만 실제 그런 남자가 존재할 수도 있다는 생각을 잠깐 해봤다. 저 정도까지는 아니지만 나도 아내에게 무모한 도전장을 자주 던지는 사람이니까. 세상은 넓고 용자(勇子)는 많은 법 아니겠나.
학창 시절, 여친이 살찌면 당장 갖다 버리겠노라 기염을 토하던 친구가 있었다. 술자리에서 그 주제로 꽤 진지한 논쟁을 펼친 기억이 났다. 나는 그 당시 "돼지 인물 보고 잡아먹는 거 아니듯 여자도 인물이나 몸매로 평가해서는 안된다"는 주장을 펼쳤다. 오랜 세월이 흐른 지금 그 친구가 옳다는 생각이 가끔 든다. 거실에 누워 과자 봉다리를 안고 있는 아내를 볼 때마다 트럭 속 그분이 자꾸 오버랩된다.
이번 여름이 지나면 아내를 데리고 다시 성주사 가는 길을 걸어 볼 생각이다. 그 옛날 가난했던 시절 버스를 타고 가는 불편함 속에서도 마냥 즐거웠던 그날을 되새겨볼 생각이다. '리마인드 웨딩'은 못하더라도 '리마인드 어부바' 정도는 해주는 게 남편 된 자의 도리 아니겠는가. 그날 아내의 몸무게를 정확히 측정하고야 말 것이다.
벌써부터 그날이 기다려진다.
덧붙이는 글) 웃자고 쓴 글이긴 합니다만 글쓰기가 힘드신 분들은 한 번쯤 가벼운 일탈을 해보시길 권합니다. 기대 이상의 효과를 보실 수도 있습니다.
메인 사진 출처 : 본인 촬영 '성주사 법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