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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르웬 Jan 23. 2022

<리뷰 2> 여보, 나 제주에서 한 달만 살고 올게

편성준, 윤혜자 작가의 따로 또 같이

내게 제주도는 애증의 대상이다. 누군 동네 앞을 산책하듯 자주 가고 또 어떤 이는 '제주도 한 달 살이'를 연중행사처럼 쉽게 하는 것을 볼 때면 쓰린 속을 부여잡고 끙끙 앓기도 한다. 믿어지지 않겠지만 이 나이 되도록 제주도에 가본 적이 없다. 몇 번의 기회가 있었으나 그때마다 번번이 계획이 변경되거나 사정이 생겨 무산되었다.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 갈 수 있으리라 생각하며 미루고 미루다 보니 어느덧 '오십'이란 나이를 넘어서고 말았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가끔은 제주도 땅 한 번 밟아보지 못하고 죽는 것은 아닌가 하는 슬픈 생각이 들기도 한다. 이런 내게 지극히 '도발'에 가까운 제목의 책이 출간된다는 소식이 전해진 것은 지난 연말이었다.


공전의 히트를 기록한 전작『부부가 둘 다 놀고 있습니다』의 저자이신 편성준 작가(이하 편 작가)가 두 번째로 출간한 책 『여보, 나 제주에서 한 달만 살다 올게』는 작가님의 아내 윤혜자 님(이하 윤 대표)과 공동으로 집필한 책이다. 광고회사 카피라이터 출신의 편 작가님과 출판기획자 윤 대표 님의 콜라보 작업이라니 이런 책을 외면한다는 것은 진정한 독자의 자세가 아니란 생각에 출간과 동시에 바로 주문을 했다.


그리고.....

바쁜 일상에 치어 하루하루 보내다가 첫 장을 펴보지도 못한 채 새해를 맞았다. 몇 번 시도를 하긴 했지만 연말의 특수성은 나에게 잠깐의 여유조차 허락하지 않았다. 읽기 위해 책을 사는 것이 아니라 사놓은 책 중에 골라 읽는 것이 '독서'라는 말장난 같은 논리 속에 사는 나였지만 이대로 가다가는 계절이 바뀌어도 읽지 못하고 넘어갈 것 같은 불안감이 엄습해왔다.


상대적으로 한가한 일요일 새벽, 하루 글쓰기를 포기하고 책을 펼쳤다. 책에 대한 기본적인 정보는 어느 정도 알고 있었다. '제주도' 관련 책이라면 필수요소처럼 따라붙는 풍경사진과 맛집에 대한 얘기가 없다는 점, 부부가 각자 자신의 글을 일기 쓰듯 쓴 글이라는 점이 마음에 들었다. 각종 SNS를 통해 잊을만하면 한 번씩 올라오는 지인들의 음식 사진과 풍경사진들에 진절머리가 날 정도인 내겐 더없이 좋은 책이라 생각했다.


작가님 댁 반려묘 순자는 편성준 작가님을 애타게 기다린다 (사진출처 : 책 표지)

큰 기대를 하지 않았던 덕분인지, 그게 아니면 두 분의 담백한 문체 덕분인지 책 한 권을 읽기까지 그리 긴 시간이 걸리지는 않았다. 전작에 비해 큰 웃음 포인트도 없고 눈을 번쩍 뜨이게 하는 표현도 없는, 어찌 보면 무미건조한 글들이 이어졌지만 사람 사는 냄새가 고스란히 전해지는 글이라 읽기에 부담이 없었다.


간간히 제주의 지명이 나오고 현지인들과의 짧은 에피소드가 들어 있긴 하지만 정확히 말해 이 책은 딱히 '제주'와는 관련이 없는 글들로 구성되어 있다. 오히려 그보다는 '부부간의 거리두기' 또는 '고독'과 '외로움'에 방점이 찍혀 있는 글들이 대부분이다. 그렇다고 해서 두 분이 오매불망 서로를 그리워하는 닭살스런 애정 표현도 없다. 그저 서울과 제주라는 엄청난 물리적 거리를 두고 부부가 각자의 위치에서 하루하루 최선을 다 해 살아가는 모습을 그릴뿐이다.


그런 글들이 좋았다. 진수성찬이 아닌 소박한 밥상에서만 맛볼 수 있는 정갈함이 느껴지는 글, 특별할 것 없는 일상에서 작은 행복을 찾는 글을 읽으며 중년 부부의 은은한 사랑을 엿볼 수 있어 좋았다.


현대사회를 사는 사람들은 대부분 빡빡한 삶을 살고 있다. 직장과 가정을 오가며 숨 쉴 틈 없는 일상을 살고 있는 사람들은 누구나 작은 일탈을 꿈꾼다. 편 작가 님은 에필로그에서 나이 든 남자는 '동굴'이 필요하고 여자에겐 '자기만의 방'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장소가 어디라도 좋으니 '혼자 한 달 살기'를 권한다. 그런 결심을 하고 나면 지금까지 몰랐던 새로운 세상이 열릴 거라 주장한다.


언젠가 부부가 각방을 쓰면 금슬이 더 좋아진다는 연구결과가 있다는 글을 읽은 적이 있다. 그게 비단 부부에게만 한정된 얘기는 아니라 생각한다. 그 어떤 관계든 떨어져 있는 시간 동안 서로의 소중함을 깨닫게 되는 관계라면 이런 거리두기를 한 번쯤은 도전해도 좋지 않을까?


손님이 뜸한 새벽시간을 통해 속독과 정독으로 책을 두 번 읽었다. 책을 덮는 순간 묘한 여운과 함께 궁금한 점이 하나 생겼다. 책 제목과 표지 소개글을 왜 저렇게 썼을까에 대한 의문이다. 차라리 실제 있었던 상황 그대로『여보, 당신 제주에서 한 달만 살다 와』로 제목을 쓰고 '꽉 조인 나사를 풀러 제주행을 강요당한 공처가 남편의 비자발적(또는 반강제적) 고독 살이'라는 소개글을 쓰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이 들기도 했다.


모르긴 해도 그렇게 결정하게 된 배경에는 남편을 주인공으로 세워 돋보이게 하고 본인은 조력자의 위치에서 뒷받침을 하겠다는 윤 대표 님의 생각이 밑바탕에 깔린 것은 아닐까 상상을 해봤다. 적어도 내가 두 분의 글을 읽은 후 가진 느낌은 편 작가 님을 향한 윤 대표 님의 사랑이 그 반대의 경우보다는 조금 더 큰 것 같기에 든 생각이다.


냉정하게 봐서 이 책은 큰 재미나 감동이 들어있는 책은 아니다. 앞서 언급했듯 제주도 한 달 살이에 대한 정보나 팁이 들어 있는 글도 아니다. 그걸 기대하는 분들에겐 추천을 하지 못하겠다. 다만 특별한 주제가 없는 글을 쓰거나 일상의 쉬운 언어로 글을 쓰고자 하는 분들은 한 번쯤 읽어봤으면 하는 바람이다. 그런 면에선 전혀 부족함이 없는 책이다.


이제 겨우 두 권의 책을 읽었지만 벌써부터 편 작가 님의 3번째 책이 기다려진다.

더불어, 두 분의 사랑이 오래도록 계속 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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