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객 응대를 하는 직업에 종사한다면 한 번쯤 읽었으면 하는 책
글을 써 본 사람은 안다. 그게 비록 의미 없는 낙서나 혼자만의 공간에 남기는 일기라 할지라도 그 순간만큼은 진심이 담기고 최선을 다 한다는 것을. 하물며 그렇게 쓰인 글들로 만들어진 책이라면 말해 무엇할까. 누군가의 책을 읽고 리뷰를 쓰는 과정은 어려운 일이다.
이번에 읽은 책은 그 어느 때보다 생각을 정리하기가 힘들었다. 어떤 이에겐 상상조차 하기 힘들 수도 있고 다른 누군가에겐 '설마'라는 물음표와 함께 믿어지지 않는 이야기들이 다수 포함되었지만 내겐 너무도 익숙하고 뻔한 이야기들이었기에 섣불리 평을 한다는 것이 조심스러웠다.
우연히 아르바이트로 시작해서 몇 년의 점장 생활을 거쳐 지금의 위치에 이르기까지 꼬박 22년이란 세월이 흘렀다. 한 분야에 종사해서 10년이면 책 하나쯤 쓸 자격이 있다는 말이 있지만 부끄럽게도 나는 아직 그러지 못하고 있다. 굳이 핑계를 대자면 언젠가 한 번 언급했듯 내겐 편의점이란 곳이 직업이기 이전에 살아남기 위한 치열한 생존의 공간이었기에 다른 생각을 할 겨를이 없었다. 그저 다른 분들이 써주신 글들을 읽으며 대리만족을 하는 것에 그치며 살아왔다.
이번에 읽은 『싸가지 없는 점주로 남으리』도 그런 책 중 하나이다. 페이스북 친구인 동시에 같은 업계, 동일 프랜차이즈를 운영하는 작가 박규옥 님은 남편을 홀로 두고 아들과 함께 중국으로 건너가 중국어를 배우고 박사학위를 받고 돌아올 정도로 당차고 끈기 있는 여성이다. 한 번 시작하면 끝을 보는 성격답게 편의점을 운영하면서도 작가의 그런 진면목은 지면에 고스란히 드러난다. 고객에게 최선의 응대를 다 하지만 선을 넘는 행위에 대해서는 강력하게 응징을 하는 모습을 보고 항상 참고 견디기만 하는 나는 묘한 쾌감을 느끼기도 했다.
글은 크게 다섯 개의 챕터(chapter)로 구성되어 있다. 작가가 편의점을 창업하게 된 과정에 대한 이야기부터 일반인이라면 상상하기도 힘든 독특한 행동을 보여주는 손님의 행태, 그리고 오가는 고객들에 대한 작가의 무한 상상력이 발휘되는 이야기까지 수많은 사연들이 펼쳐진다. 각각의 장들이 때로는 웃음을 짓게 만들 정도로 유쾌하고 또 때로는 고개를 끄덕일 정도로 공감을 가져다주었지만 그중 가장 인상적이었던 것이 마지막 장 '내 이웃의 안녕'이었다. 그 부분을 읽으며 지난 세월, 우리 점포를 찾아주었던 수많은 고객들의 얼굴이 스쳐 지나갔다. 어찌 보면 그분들 덕분에 나와 내 가족이 이 정도로나마 먹고살게 된 것인데 과연 나는 그분들을 대할 때 순간순간 최선을 다 했던 것인가에 대한 의문이 생겼다.
책을 받아 들고 거의 한 달만에 첫 페이지를 열었다. 손님이 뜸한 어느 새벽, 해야 할 일을 어느 정도 마무리한 후 마음 편히 책을 읽었다. 국문학 전공자답게 글은 전반적으로 쉽게 읽을 수 있을 정도로 짧고 간결한 문장으로 진행된다. 소제목으로 구성된 에피소드들도 두 장을 넘기지 않을 정도로 분량이 길지 않다. 시간만 허락한다면 반나절 정도의 시간만 투자해도 다 읽을 수 있을 정도로 가독성도 훌륭했다.
이 책은 비단, 편의점에만 국한된 이야기는 아니다. 손님을 응대하는 직업에 종사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이야기들로 구성되어 있다. 박규옥 작가를 내게 소개해주신 『부부가 둘 다 놀고 있습니다』의 저자 편성준 작가는 무라타 사야카의 <편의점 인간>, 김호연 작가의 <불편한 편의점>과 함께 이 책을 '편의점 삼총사'라 부르며 편의점 계의 웃기는 막내 같은 에세이라 말했다. 그 글을 읽고 댓글에 아토스, 프로토스, 아라미스가 완성되었으니 나는 달타냥이 되어 보겠다고 한 적이 있다. 과연 나는 달타냥이 될 수 있을까?
편의점 점주로서의 위치뿐만 아니라 작가로서의 앞날에 있어 규옥 씨에게 좋은 일만 가득하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