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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르웬 May 28. 2022

<리뷰 4> 명함도 없이 일합니다

전문직계의 아웃사이더 치과기공사 에세이

한창 블로그 활동을 하던 시절 블로그 이웃 한 분께서 내 글을 읽고 소소한 일상 속에서 일기 쓰듯 평범한 문장을 구사하지만 결코 평범하지 않은 글이라 말한 적이 있다. 스스로 내 글을 평가할 수는 없지만 나는 가급적이면 쉬운 단어, 간결한 문장을 사용하는 것이 글을 읽는 독자에 대한 유일한 배려이자 예의라는 생각으로 글을 쓴다.


누구나 비슷한 생각을 하겠지만 내 기준에서 좋은 글이란 전개와 진행이 물 흐르듯 자연스럽게 이어지는 글이다. 책을 읽을 때도 마찬가지다. 단순히 작가의 이름만으로, 베스트셀러라는 이유만으로 아무 책이나 선택하진 않는다. 눈에 뻔히 보일 정도로 과도한 홍보글이 여기저기 널린 책들도 과감하게 제외시킨다. 그 정도로 까다로운 내 눈에 띈 책 한 권이 있었다.


치과기공사로 일하는 작가의 일상을 담은 지민채 작가님의 <명함도 없이 일합니다>라는 에세이.


고2 때 제법 공부를 잘했던 친구가 뜬금없이 그 길로 가겠다고 했을 때 처음 알게 된 그 직업이었기에 문득 그 친구 얼굴이 떠올랐다. 지금도 그 일을 하고 있다면 치과에서 하얀 가운을 휘날리며 멋지게 살고 있지나 않을까 하는 내 상상은 책을 펼치고 얼마 되지 않아 '노래방 가는 게 아니라 출근하는 겁니다'라는 글을 읽고 무참히 깨졌다.


치과와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으면서도 외주업체처럼 독립된 공간에서 일을 한다는 사실도 생소했지만 그보다는 근무하는 곳에 간판도 출입증도 없다는 것이 더 놀라웠다. 그래도 명색이 국가고시를 통과한 전문직 종사자인데 그런 환경에서 일을 한다는 것이 선뜻 이해가 되지 않았다. 물론 번듯한 간판, 출입증, 명함 등이 근무 환경을 모두 대변하는 것은 아니겠지만 이렇게 외부와 철저히 단절된 채 보이지 않는 곳에서 일을 할 것이라곤 꿈에도 상상을 못 했다.


네 컷짜리 짧은 그림 속에서 커다란 빌딩들 앞에 선 작가가 '내가 가야 할 곳은 이런 곳이 아니다'라고 했을 땐 말할 수 없는 동병상련의 감정이 느껴졌고 족발집과 노래방이 있는 작은 건물로 들어서는 작가의 모습을 보고는 왠지 모를 애잔함이 묻어 나왔다. 디자이너가 꿈이었던 작가가 지극히 현실적인 선택인 밥벌이를 위해 기공사의 길을 걷게 된 사연을 알게 되었을 땐 비슷한 경험을 했던 사람으로서 마음이 너무 아팠다.


내가 하는 일과 비교했을 때 단 1%의 연관성도 찾을 수 없을 만큼 다른 세계의 일임에도 불구하고 소제목 '빨간 날 실종사건'과 '번아웃' 관련 글을 읽을 때엔 묘한 동질감 같은 것이 전해졌다. 참고 버티다 못해 용기 있게 사표를 던진 작가를 봤을 땐 내가 저지르지 못한 것을 대신해주는 작가의 용기에 쾌감을 느끼기도 했고 어쩔 수 없이 다시 그 세계로 돌아가게 되었다는 글을 읽을 땐 나도 모르게 안타까움의 탄식을 내지르기도 했다.


'전문직'이라는 허울 좋은 타이틀 또한 겉모습만 번지르르하게 '경영주', '사장님'으로 불리는 현재의 내 위치와 닮았다. 말이 좋아 전문직이고 사장이지 하는 일만큼은 웬만한 노동자들 중에서도 하급에 가까울 만큼 열악한 현실에 처한 상황에서 그런 타이틀이 뭔 소용이 있을까.


시종일관 웃고 울다 마음 한 편이 찡해질 무렵이 되면 책은 막바지에 이른다. 거기서 주체할 수 없는 눈물 한 방울을 쏟고 말았다. 네 번째 챕터 중간쯤 들어있는 '어쩌면 우린 모두 제법 중요한 일을 하고 있을지 모릅니다.'라는 문장을 보는 순간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곳에서 묵묵히 자신의 일을 하는 수많은 사람들의 모습이 떠올라 감정을 다스리기가 힘들었다.


잘 먹고 잘 살고 싶다는 것, 어릴 적 작가가 꿈꾸었던 미래처럼 나도 비슷한 꿈을 꿨었다. 어쩌면 너무 소박해서 힘들이지 않고도 얻을 수 있을 것 같은 그 목표를 이루기가 이토록 힘들 줄은 몰랐다. 아마 작가님도 내 생각과 크게 차이가 있지는 않으리라 생각한다.


겨우 한 시간 정도 투자를 했지만 그 짧은 시간 동안 글을 통해 많은 것을 돌아보고 생각할 수 있었다. 언뜻 보면 가벼운 것 같으면서도 그 속에 한번쯤 생각해 봤으면 하는 묵직한 메시지가 들어 있는 글, 나는 이런 글이 좋은 글이라 생각한다.


책을 다 읽기까지 'Just 60 minutes', 단 한 시간이면 충분했다. 가게에서 일하는 중에 읽느라 간간히 오는 손님 때문에 조금 지체되어 그 정도였지 집중해서 읽는 분이라면 아마 채 1시간이 걸리지 않아 완독을 할 수 있을 것이다. 읽기에 부담스럽지 않은 글자 크기와 중간중간 깨소금 같은 역할을 하는 작가의 그림, 그리고 간결한 문장들. 오랜만에 이 모든 게 어우러진 좋은 책을 만났다. 


내 마음속 점수는............. 100점 만점에 1점이 빠진 99점이다.

그 1점에 대한 이유는 따로 언급하는 걸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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