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아르웬 Jun 05. 2022

<리뷰 5> "난생처음 내 책"

내게도 편집자가 생겼습니다

최근 들어 자주 찾아 읽는 글이 있다. 출간 과정을 다루거나 편집자의 시선이 담긴 글들이다. 어쩌면 머나먼 미래의 얘기 거나 끝내 이루지 못한 꿈으로 남을 수도 있겠지만 내 글쓰기의 최종 목표는 출간에 있다. 지피지기면 백전불태라는 손자병법의 말처럼 나는 그 바닥의 흐름을 알아야만 했다.


그 과정 중에 우연히 만난 책이 이경 작가의 <난생처음 내 책>이다. 티라미수 출판사의 "난생처음" 시리즈 중 4번째인 이 책은 출간을 위한 저자의 도전 과정과 그 과정 중에 겪었던 수많은 에피소드들, 그리고 글을 쓰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복잡한 감정들을 담고 있다.


늘 그렇듯 책을 펼치자마자 작가 소개와 프롤로그를 꼼꼼하게 읽었다. 그런데 무슨 영문인지는 몰라도 프롤로그 첫 페이지를 읽는 순간 문득 예전에 봤던 사극의 한 장면이 떠올랐다.

"웬 놈이냐? 감히 여기가 어디라고......(뒤를 돌아보며) 스승님, 제가 처리하겠습니다."

"물러 서거라. 네 놈이 상대할 분이 아니다."

단지 몇 줄의 글만 읽었을 뿐인데 '이 사람, 글쓰기 고수가 틀림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관계의 물리학>, <그리움의 문장들>, <너의 말이 좋아서 밑줄을 그었다>의 저자 림태주 작가는 '에디터의 정중하지 않은 충고'라는 글에서 투고하는 메일의 제목만 보고도 그 원고를 읽어야 할지 말지를 결정하는 신기(神氣)가 있는 에디터가 있다고 했다. 그 정도 능력은 안되지만 읽는 눈만큼은 비교적 괜찮다고 자평(自評)하는 내가 보기에 이 분은 글을 제대로 쓰시는 분이 분명했다. 앞으로 작가가 펼쳐나갈 글에 대한 기대감, 다섯 페이지만에 작가의 글에 빠져 들고 말았다. 마치 '보이스 코리아' 심사위원이라도 된 것처럼 나는 더 볼 것도 없이 힘차게 합격 버튼을 눌렀다.


예상대로 글은 전반적으로 만족스러웠다. 과하지도 부족하지도 않을 만큼 절제된 표현이 좋았다. 무엇보다 작가 특유의 유머와 위트가 돋보일 때도 절대 선을 넘지 않는 적당함이 마음에 들었다. 야구 경기에서 가끔 

나오는 '어느 하나 거를  없는 공포의 타선'이란 표현처럼 어떤 글도 빼고 싶지 않을 정도로  모두가 훌륭했고 잊을만하면 한 번씩 나타나는 에디터 S 짧은 글도 책의 완성도를 높였다.


맞춤법이나 띄어쓰기에 변태처럼 집착하는 편집자라니 ㅋㅋㅋ


'오탈자 자연 발생설'이나 손가락에 소팔메토라도 묻히고 싶은 심정을 토로한 '승마와 글쓰기'를 읽을 때엔 나도 모르게 피식 웃음이 났고 출간한 첫 책을 다 읽으신 어머니께서 '미안하다'라는 짧은 문자를 보내셨다는 글을 읽었을 땐 아들의 앞날을 잘못 이끌었다는 죄책감에 시달리는 내 어머니가 생각나기도 했다.


그중에서 내 기억에 가장 강하게 남는 주제는 '작가라는 이름의 무게감'이란 글이었다. 엄청난 비용을 투자하고 비교적 단기간에 완성도가 부족한 책을 만들어내는 일부 '글쓰기 아카데미'에 대해 날카로운 비판을 쏟아내는 글을 보고 있자니 내가 하고 싶은 말을 속 시원하게 대신해줘서 얼마나 고마웠는지 모른다. 하긴, 그 정도 용기와 집념이 있었으니 첫 책을 출간하기까지 도전을 예순여섯 번이나 하고도 포기를 하지 않았을 테지.


책을 다 읽고 나니 두 개의 감정이 교차했다. 그중 하나는 내 글에 대한 자신감 하락이었다. 책에서 작가가 표현한 대로 '내 글 구려 병'이 재발하여 모든 것을 그만두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정도 글을 쓰시는 분이 수많은 실패를 겪었다니 나 같은 사람은 해보나 마나 한 무모한 도전이란 생각이 들었다. 나머지 하나는 그와 정반대로 이런 글을 쓰시는 분도 그만큼의 도전을 했는데 나는 너무 '신데렐라 같은 성공을 꿈꾼 것은 아닌가에 대한 깨달음이었다.


결국 돌고 돌아 나는 왜 글을 쓰는가에 대한 최초의 질문으로 돌아왔다. 많은 이들이 '치유'라는 단어를 많이 사용한다. 글을 쓴 이후 마음이 많이 편해졌다고도 한다. 안타깝지만 나는 그렇지 못하다. 여전히 나는 정리 안된 생각들이 머릿속에 뒤섞인 채 마음이 많이 아픈 상태다. 상황이 이러니 좋은 글이 나올 수가 없다.


이경 작가의 책을 읽으며 부러움을 많이 느꼈다. 편집자가 생겼다는 것이 부러웠고 후속작을 연달아 출간할 수 있는 실력이 부러웠고 최대한 평온한 어조로 글을 쓸 수 있는 평정심이 부러웠다. 물론 그 과정에서 수없이 많은 자신과의 싸움이 있었을 것임은 당연하다. 작가는 그걸 다 이겨냈고 그 결과물이 책으로 나왔다.  

그렇다면 나는? 과연 나는 나와의 싸움에서 이길 수 있을까? 모든 걸 내려놓고 편히 글을 써나갈 수 있을까?


책을 덮은 후, 중반부에 작가가 언급한 <편집가가 하는 일>이란 책에 나오는 '편집가는 저자의 영혼을 어루만져야 한다'는 문장을 떠올렸다. 내 영혼을 어루만져줄 눈 높은 편집자가 어딘가에 있다면 꼭 드리고 싶은 말이 있다.  

"어루만짐까지는 바라지도 않습니다. 지나는 길에 살짝 터치만이라도 부탁드립니다. 그 정도면 동력을 잃지 않고 계속 나아갈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제가 지금 영혼이 탈탈 털리고 있는 중이거든요."


이경 작가의 롱런을 기원하며 글을 마친다.


덧) 책을 읽으며 두 번 정도 '무용하다'라는 표현을 본 것 같다. 보통의 경우엔 '무소용이다', '소용없다'라는 표현을 많이 쓰는데 조금은 생소한 '무용하다'라는 표현을 왜 쓰셨는지 그게 궁금하다.






매거진의 이전글 <리뷰 4> 명함도 없이 일합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