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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르웬 Jun 11. 2022

<리뷰 6> 불편한 편의점

한 편의 판타지 소설을 읽은 기분

"누나가 있잖아. 이번에 병원에 입원해 있는 동안 <불편한 편의점> 읽었거든. 전반적으로 다 좋은데 솔직히 말해서 네가 쓴 글이 더 생생하게 느껴지더라. 난 네가 네 글에 자신감을 좀 가졌으면 좋겠어."

블로그에서 인연을 맺은 지 10년이 넘은 현실 남매 속 누나 같은 지인과 나눈 대화 중 일부다.


비슷한 얘기는 친구로부터도 들은 적이 있다.

"글쎄, 뭔가 억지로 만들어낸 느낌이랄까? 해피엔딩도 별로 마음에 안 들고. 난 네 글이 더 재밌더라고."


두 사람에게 공통적으로 해준 말이 있다. 전문작가가 아무리 노력을 해도 픽션이 논픽션을 뛰어넘기가 그리 쉽겠냐고. 내 글이 더 나아 보이는 착시현상은 거기에 이유가 있을 거라고 했다.


그리고 해가 바뀌어 올해 초, 한 분의 작가님께서 내 글에 달아주신 댓글을 읽었다. 편의점 관련 글을 검색하다가 내 글을 읽게 되었노라고 밝히신 그분의 정체(?)가 궁금해서 올려주신 글을 하나둘 읽기 시작했다. 글을 읽는 내내 안타까움, 아픔, 슬픔 등 결코 반갑지 않은 여러 가지 복잡한 감정이 뒤엉켰다. 그분께선 <불편한 편의점>을 읽으며 진짜 불편함이 들었다고 하셨고 이야기 속 편의점은 완벽한 판타지라고 하셨다.


돌아가는 상황이 이러하니 책에 대한 호감도는 현저히 떨어졌고 관심도마저 '꼭 읽어야 할 책'에서 '지나가다가 눈에 띄면 특별히 시간 내서 봐줄 책'으로 강등되었다.


한동안 잊고 살던 내게 책을 안겨준 것은 아내였다. 오래전 지나가는 말로 "도대체 이 책이 뭐라고 이렇게 예약이 끊어지지 않노?" 라고 했던 말을 기억한 아내가 수십 차례의 실패를 딛고 도서관 대출 예약에 성공한 것이었다. 식당에 가더라도 대기인 숫자가 2를 넘는 순간 가뿐히 포기하는 나와는 달리 한 번 꽂히면 끝장을 보는 아내다웠다.


자 이제 책을 읽을 시간, 무엇보다 머릿속 가득한 선입견을 제거해야 했다. 사실, 내가 김호연 작가를 처음 알게 된 것은 오래전이었다. 페이스북 친구인 어느 작가님께서 글을 쓰려면 반드시 읽어야 한다고 추천해주셔서 읽었던 <매일 쓰고 다시 쓰고 끝까지 씁니다>라는 책에서 보여준 그의 필력은 이미 내 머릿속에 깊이 각인되어 있었다. 그런 좋은 감정과 함께 오로지 이 책에 덧씌워진 불편한 감정 모두를 지워버리고 지극히 중간자적 입장에서 책을 읽는 자세가 필요했다.


구성은 나쁘지 않았다. 편의점의 상징이라 할 수 있는 삼각김밥, 네 캔에 만원, 원 플러스 원, 폐기, 진상 등을 소제목으로 삼은 것도 괜찮았고 각각의 챕터마다 극 중 인물들이 돌아가며 1인칭 시점에서 화자가 되어 얘기하는 것도 신선했다.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는 시현과 배우 생활을 청산하고 작가를 꿈꾸는 인경, 한탕주의를 꿈꾸는 민식, 남편 대신 생계를 위해 편의점에서 일을 하는 오여사까지 모든 캐릭터들도 현실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유형의 사람들이라 친근했다.


특히, 시현이가 이직을 하는 과정은 내가 지나온 길과 너무도 닮아 있어서 소름이 끼칠 정도였다.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던 시절, 아침에는 학원을 다니고 야간에 알바를 하던 중 사장님 눈에 띄어 추천을 받아 머나먼 남쪽나라로 귀양살이하듯 떠나온 그 모든 과정이 생생하게 떠올랐다. 혹시 이 양반 나를 모델로 글을 쓴 건가 싶은 생각까지도 들 만큼 인상적이었다.


문제는 디테일이었다.

 

초반 도입부에 등장하는 카드 승인 문자 'GS 박찬호 투머치 찬 많은 도시락 4,900원'을 보는 순간 '이건 뭐지?'라는 생각이 들었다. 보통 결제 문자는 'GS 땡땡점 4,900원 승인'이라고 뜨는 게 맞다. 내가 아는 한 점포명과 금액만 찍힐 뿐, 상품명이 결제 승인 문자에 찍히는 일은 없다. 이것은 작가의 의도일까 실수일까, 의도라면 왜 많고 많은 도시락 중 GS 박찬호 도시락일까? 요즘은 책에도 PPL이 들어가는가? 자연스럽게 눈살이 찌푸려졌다.


그나마 그것은 시작에 불과했다. 주인공 중 하나인 편의점 사장 염여사는 교직을 떠난 퇴직공무원으로 나온다. 연금으로 먹고 살 수 있기에 편의점 경영에서 나오는 수입은 고스란히 인건비로 투자해도 된다는 인식을 갖고 있는 사람이다. 실제 그런 사람이 있을까에 대한 논의는 뒤로 미루더라도 이해가 되지 않는 것은 과연 그 인건비를 충당할 만큼의 수입이 나오는 것인가였다.  


제목 그대로 불편한 편의점, 판매가 안되니 상품 발주를 못하고 발주를 하지 않으니 상품구색이 딸리고 상품이 없으니 고객이 찾지 않는 악순환이 반복되는 불편한 편의점이라면 본사로부터 받는 정산금이 많아 봤자 2~300만 원 정도가 될 터인데 거의 전 타임 근무자를 다 세우는 상황에서 그게 가능할까? 어림잡아 계산을 해봐도 인건비가 400만 원은 가뿐히 넘길 것 같은데? 주휴수당까지 챙기시는 분이니 당연히 야간 수당도 있을 테고.  


그렇다면 결론은 단 하나, 유지가 된다면 불편한 편의점이 아니고 불편한 편의점이라면 염여사는 통장에서 돈을 끌어다가 인건비에 투입을 하는 상황이 연출된다. 모순이고 앞뒤가 맞지 않는 설정이란 얘기다.

(참고로 나와 아내가 근무하는 시간은 하루 20시간이고 거의 매일 일을 한다. 그런 우리 점포의 이번 달 인건비는 정확히 189만 원이었다)


그래, 다 좋다. 장사가 안되는데도 선행을 베푸는 천사표 사장님이 계실 수도 있다 치자. 실제 비슷한(?) 분을 만나기도 했다. 신용카드로 현금서비스를 받아 인건비를 충당하면서도 본인은 절대 일을 하지 않는 분을 보기도 했으니. 내가 가장 이해를 할 수 없는 대목은 주인공 독고 씨가 고객들을 대하는 방식과 그것에 굴복하거나 설득되는 고객들이었다. 안내 또는 설명이 아닌 이상 고객에게 그렇게 집요하게 말을 하기는 힘이 드는 게 현실이다. 실제 그렇게 하다가는 잘못하면 맞을 수도 있다. 그나마 나은 고객이라면 말없이 자리를 뜨고 다시는 찾지 않는다.


그 외에도 몇 가지 짚어볼 부분이 있었다. 한일 무역전쟁, 취업난, 한탕주의 등 각각의 캐릭터 설명을 하느라 너무 과하다 싶을 정도로 상세하게 묘사된 시대상은 오히려 글에 대한 몰입을 방해했다. 하나라도 더 말하려 했던 작가의 욕심이 아니었나 생각된다. 마음에 들지 않기는 결론도 마찬가지였다. 독자들에게 희망의 메시지를 전달하려는 의도였는지는 모르겠지만 불과 몇 개월 전까지 알코올 중독자였던 사람이 갑자기 의료 봉사를 떠난다는 결말은 받아들이기가 힘들었다.


책을 덮고 한참 동안 복기를 해보았다. 내가 만약 이런 소재로 글을 쓴다면 어떻게 썼을까 생각을 해보았다. 차라리 염여사를 착한 건물주로 설정하는 게 낫지 않았을까? 살아갈 날이 얼마 남지 않아 생을 마감하는 시점에서 사회에 모든 것을 환원하는 캐릭터였다면 어땠을까? 주인공 독고 씨도 의사보다는 코로나 시국을 맞아 명예퇴직을 당한 샐러리맨으로 설정했더라면, 평생 회사원으로 살아온 사람이 편의점에서 일을 하며 자영업자의 삶을 이해하게 된 계기로 방향을 잡았더라면 또 어떤 글이 나왔을까?


한 편의 책을 만들어내기까지 작가의 노고를 잘 안다. 소설을 완성하기까지 준비과정이 상당했을 거라는 것도 잘 안다. 그래도 김호연 작가의 이름값에 비한다면 아쉬움이 남는 건 사실이다. 아무래도 취재 과정이 미흡했던 것 같다. 내가 그 입장이었다면 프랜차이즈 본사를 통해 오랜 기간 편의점을 운영한 사람들을 소개받아 최소 100 명 이상은 취재를 했을 것 같다.


이런 글을 쓰면 꼭 따라붙는 댓글이 있다.

"소설입니다, 소설. 뭔 다큐인 줄 아십니까? 그렇게 잘 쓸 자신 있으면 네 놈이 써보시든가요."


그런 분들에겐 답을 해드려야지.

"네, 쓰지요. 일개 무명 브런치 작가지만 최소한 이보다는 실감 나게 쓸 자신 있습니다."


책을 다 읽은 후엔 느낌표가 찍혀야 하는데 오늘은 왠지 물음표만 여기저기 따라다닌다.

뒷맛이 참 씁쓸하다.

부디 김호연 작가님 팬들이 돌멩이를 살살 던지시길 바라며 글을 마친다.


덧) 본문에 잠깐 언급된 세리 작가님의 글을 소개하고 싶다. 허락은 받지 못했지만 아마 너그러이 이해를 하시리라 믿는다. 바쁘신 분은 8~10화 정도만 읽으셔도 편의점 바닥을 이해하는데 무리가 없을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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