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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르웬 Jun 19. 2022

<리뷰 7> 만나지 못한 말들

너무 늦게 깨달은 소중한 것들에 대하여

'미리 마음의 준비를 해서였을까? 밤 11시 이후 읽으면 터진다어느 작가님의 서평이 무색할 정도로 눈물 한 방울 없이 담담하게 읽었다.'라는 문장으로 글 첫머리를 구상하려던 내 계획은 마지막 문장에 속절없이 무너지고 말았다. 

너무 보고 싶었어요.

툭 하고 터진 눈물샘에서 흘러내린 두 줄기 눈물, 미처 닦을 틈도 없이 손님을 맞아야 했다. 한 시간 내내 파리를 날리다가 처음 맞는 손님이 왜 하필 그 중요한 순간에 들어온 것인지 기가 막힌 타이밍에 나타난 그 손님이 그저 원망스러울 뿐이었다.


내가 이림 작가님을 처음 알게 된 것은 작년 가을 이혼을 심각히 고려할 무렵 작가님께서 브런치에 올려주신 이혼 관련 글을 통해서였다. 딱히 우리 부부 사이에 문제는 없었지만 이대로 가다가는 모두가 불행해질 수도 있겠다는 생각에서 그 당시 꽤 심각한 고민을 하던 때였다. 그때 작가님의 글을 읽으며 많은 생각을 하게 되었고 고심 끝에 결국 깨끗하게 포기하는 쪽으로 결론을 내렸었다.


그 작가님께서 책을 내셨다는 소식을 들은 게 지난 2월이었다. 매너리즘에 빠진 것인지 한동안 글쓰기를 어려워하던 시기였다. 하필 그때 출간을 하셔서 감히 읽을 엄두도 못 내고 차일피일 미루던 차에 주말을 맞아 책을 집어 들었다. 경험상 한번 미루기 시작하면 계속 뒤로 미루는 것이 독서라는 것을 잘 알기에 큰맘 먹고 책장에서 책을 꺼냈다. 조금이라도 틈을 주면 그 틈을 비집고 들어온 눈물이 쏟아질까 두려워서였는지 작가의 뛰어난 필력 덕분이었는지는 몰라도 처음 작가 소개글에서 마지막 에필로그까지 가는 시간은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책은 지극히 개인적인 가족에 대한 이야기를 담고 있다. 젊은 시절 내내 무능하기만 했던 아버지의 알코올 중독, 열일곱 어린 나이에 맞게 된 어머니의 죽음, 부모님의 부재(不在)와 뒤이은 남편과의 이혼 결정에 이르기까지 험난하기만 했던 작가의 삶이 고스란히 드러나있다. 그 과정에서 생전의 부모님에 대한 기억을 더듬으며 원망의 감정을 그리움으로 승화시키고 내면 깊숙한 곳에 자리 잡은 상처를 스스로 치유하는 과정을 그리고 있다.


글을 읽는 내내 죄를 짓고 있는 느낌이 들었다. 팔순의 고령에도 여전히 내 곁을 지키시는 부모님의 존재가 죄송스러웠고 너무 맞지 않아 싸움이 끊이지 않지만 항상 내 옆에 있는 아내의 존재 또한 죄송스럽게 느껴졌다. 다 가지고 있으면서도 스스로를 불행하다, 삶이 힘들다 생각했던 나 자신이 부끄럽게 여겨졌다. 이제까지 내가 겪어본 적이 없는 그 모든 것들을 젊은 나이에 온몸으로 받아낸 작가의 그 마음을 내가 어찌 다 헤아릴 수 있을까. 내가 가진 상상력과 공감 능력을 총동원해서 초능력을 발휘한다 한들 작가가 겪은 슬픔과 아픔, 괴로움 같은 복잡한 감정들의 단 1%도 이해를 할 수 없을 것이다.


막바지에 이르러 작가는 우리에게 몇 가지 질문을 던진다. 5부 "문득, 묻고 싶습니다"에 나온 작가의 모든 질문에 나는 단 하나도 답을 하지 못했다. 나름 효자라 생각했고 부모님을 포함하여 주변 사람들을 잘 챙긴다 자부했고 그들 모두에 대해 다 알고 있노라 자신만만했음에도 비수처럼 날아오는 질문에 말문이 막히고 말았다. 


책을 덮고 표지 뒤편의 글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당신은 후회하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라는 작가의 바람이 유독 강하게 다가왔다. 우리 모두가 부모가 되진 않지만 누군가의 자식인 것만은 분명하다. 부모님 살아생전에 할 수 있는 것을 다 해야 한다는 것을 잘 알면서도 이런저런 핑계와 사정으로 미루는 사람이 대부분인 게 현실이다. 그런 분들이 이 책을 꼭 읽었으면 한다. 이 책은 누군가에겐 가르침과 깨우침을 주는 책이고 또 다른 누군가에겐 희망과 용기와 위로를 전해주는 책이다.


쉽게 떠나지 않는 짙은 여운 속에 대학교 3학년 M.T를 갔을 때 있었던 일이 떠올랐다. 고2 때 아버지와의 불화로 집을 나간 어머니를 둔 후배와 역시 고2 때 어머니를 여읜 후배의 취중 토론. 자식을 내팽개치고 집을 나간 엄마는 엄마가 아니라는 주장과 그래도 살아 계신 것만으로도 감사해야 한다는 두 개의 주장이 팽팽히 맞서던 그 순간에 나는 어느 쪽 편도 들 수 없었다. 여전히 쉽게 결론 내리지 못할 문제이긴 하지만 이 책을 읽은 후에는 왠지 후자 쪽의 손을 들어줘야 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글을 마무리하는 이 시점, 출입문 틈으로 새로운 하루를 알리는 햇빛이 들어온다. 찬란한 햇빛처럼 이림 작가님의 앞날에도 늘 밝은 기운이 함께 하길 기원한다. 더 이상 눈물의 여왕이 되지 마시고 다가올 '어떤날엔' 웃음의 여왕으로 거듭나시길 바라며 서둘러 졸평(拙評)을 마친다.



덧붙이는 말) 왜 오밤중에 애를 낳느냐고 아버님께서 하신 말씀을 곧이곧대로 옮긴 그분이 이해가 안 된다.

말을 전달함에 있어 조사 하나까지 그대로 옮겨야 할 때가 있고 스스로 판단하기에 하지 않는 편이 낫겠다 싶을 때가 있다. 만약 내가 그 입장에 놓였다면 나는 갓 출산한 아내에게 그런 말은 절대 전달하지 않았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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