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젠가 누군가는 알아주리라는 믿음
이번 주를 끝으로 함께 쓰는 글모임에서 하차하기로 결심하고 그 뜻을 고정 작가님들에게 전했다. 다들 아쉬워하는 마음과 함께 내 뜻을 존중해주셨고 비록 온라인이긴 하지만 오랜만에 글에 대한 깊이 있는 대화가 오고 가던 중 평소 손가락 무겁기로는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모 작가님께서 한마디 조언을 해주셨다.
너무 오래 자신을 알아봐 달라고 기다리지 마시고
먼저 던져보라고 말하고 싶어요.
수동적으로 선택을 기다리기보다는 좀 더 적극적으로 출판사에 투고를 해보는 건 어떠냐는 말씀이셨다. 그 작가님께선 기획서만 괜찮다면 출판사 자체 회의를 통해 방향과 콘셉트를 작가의 생각과 다르게 기획하는 경우도 있으니 그 가능성에 도전하는 것 또한 나쁘지 않다는 말씀까지도 해주셨다.
그 순간에는 대충 얼버무리며 얼렁뚱땅 답을 하고 말았지만 가만히 생각해보니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자신을 알리지 못해 안달 난 사람들이 도처에 널린 현실에서 내가 너무 바보처럼 소극적으로 살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드는 동시에 어쩌면 그 말이 맞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그때부터 출판사 투고에 대한 고민이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글을 쓰는 이라면 누구나 자신의 이름이 새겨진 책 한 권쯤 출간되기를 원한다. 많은 사람들이 글 쓰는 이유로 자기 치유나 소통을 말하곤 하지만 정도의 차이만 있을 뿐 대부분의 사람들이 궁극적으로는 출간의 꿈을 꾸고 있다고 생각한다. 나 또한 그 점에 있어서만큼은 아니라고 부정하기 힘든 게 사실이다.
최근까지 출판사 투고에 있어서만큼은 조금 회의적인 생각을 가졌었다. 출판사로부터 속칭 '까임'을 당하거나 정중히 거절 메일을 받는 것이야 이를 악물고서라도 참을 수 있겠지만 우선 내 글에 대해 자신감이 없었다. 출판사에 투고를 하려면 최소한 내 글이 일정한 수준은 넘어서야 가능한 것이라 생각했다. 내 눈으로 보기에도 50점 이하인 글이 나보다 몇 배는 더 날카롭고 예리한 눈을 가진 편집자들로부터 "아르웬님 글은 판타스틱하고 엘레강스하며 퍼펙트해요. 100점 만점에 100점!!"이란 기적에 가까운 평가를 받을 리 없다고 생각했다.
이런 내 생각에 한술 더 떠 충격까지 안겨준 것은 얼마 전 있었던 브런치 북 프로젝트였다. 스스로 보기에도 준비가 되지 않았다는 생각에 포기를 결심할 무렵 마감이 연장되면서 생긴 그 일주일이란 시간 동안 경험이라도 쌓아보자는 생각에서 이전에 썼던 글들을 정리하고 되돌아보는 과정에서 내가 느낀 것은 참담함 그 자체였다. 아무 생각 없이 글을 쓰며 발행할 때엔 차곡차곡 쌓이는 발행글 숫자에 빠져 내 수준을 미처 알지 못했다. 오래전 내가 쓴 글들은 과연 이게 내 손으로 쓴 게 맞나 싶을 정도의 생소함은 다반사고 도대체 뭔 말을 하고 싶은 건지 알 수 없는 글들이 줄을 이었다. 억지로 끼워 맞추듯 북을 하나 만들어내긴 했지만 제출하는 순간 이미 탈락을 예감하는 순간이었다.
짧지 않은 시간 고민을 했지만 여전히 나는 투고에 있어서는 소극적인 생각을 갖고 있다. 기획서를 쓰고 출판사를 조사하고 각각의 출판사에 메일을 쓸 시간에 차라리 한 글자라도 더 글을 쓰는 게 맞다고 생각하는 편이다. 주변을 둘러보면 적게는 수십 개, 많게는 몇 백개의 출판사에 투고를 한 끝에 한 곳에서 긍정적인 답변을 받았고 그렇게 출간을 했다는 분들을 자주 본다. 그렇게 하시는 분들을 보면 존경스러운 마음과 함께 꼭 그렇게까지 할 필요가 있을까 하는 생각이 교차한다. 어떤 이들은 이런 나를 두고 절박하지 않아서, 아직까지 배가 불러서 그런 거라는 말을 하지만 솔직한 심정으로는 투자에 비해 너무 비효율적인 게 아닌가 싶다.
돌이켜 보면 나는 늘 그랬다. 선생님의 강권에 못 이겨 제대로 경험도 쌓지 않고 출전했던 서예대전을 빼고는 늘 나 스스로 이만 하면 됐다 싶을 때까지 최선을 다 한 후 결과를 기다렸었다. 마치 지금의 아내를 처음 만났을 때 숨김없이 나 자신을 모두 보여주고 선택은 아내에게 맡겼던 그때처럼.
철이 들 무렵부터 즐겨 쓰는 사자성어가 있다. 재능이 뛰어난 사람은 숨어 있어도 저절로 사람들에게 알려진다는 뜻의 낭중지추(囊中之錐). 빛 좋은 개살구처럼 겉보기만 화려한 사람이 되기보다는 널리 알려지지 않아도 실속이 있는 사람이 되고 싶었다. 그렇게 살다 보면 언젠가는 내 가치를 알아주는 이가 나타날 거라 믿었고 지금도 그렇게 믿고 있다.
오랜 고심끝에 나는 투고(投稿)와 투고(Two Go) 사이에서 후자를 선택하기로 했다. 올해의 실패를 거울삼아 내년에 있을 브런치 북 프로젝트에 두 번째 도전을 준비하다 보면 자연스럽게 투고(投稿)를 해도 부끄럽지 않을 정도의 결과물 근처까지는 만들 수 있지 않을까 한다. 그렇게 방향을 정하고나니 마음이 한결 가벼워졌다. 아마도 '연말까지 출판사 100개 이상 투고를 하지 않으면 브런치 작가 자격을 박탈하겠소!!'라고 브런치팀에서 말하지 않는 이상 당분간 내가 출판사에 투고하는 일은 없을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