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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르웬 Oct 13. 2022

자고로 책이란 건 말이야

읽기 위해 사는 게 아니고, 일단 사놓고 그중에 골라 읽는 거란다

발명이든 발견이든 우연한 계기를 통해 이뤄지는 경우가 있다. 내가 책을 읽고 글을 쓰겠다는 마음을 먹기까지 과정도 그와 비슷하다. 아마 그 당시 그 일을 겪지 않았더라면 내가 지금처럼 책을 읽고 브런치에서 글을 쓰고 있을 확률은 거의 제로에 가깝지 않았을까 싶다.


중학교 입학 후 벌어진 일이었다. 반편성 모의고사를 치르고 그 성적순에 따라 7명의 후보를 정한 선생님께선 그중에서 투표를 통해 학급 간부를 정하셨다. 예나 지금이나 감투 따위에는 관심도 없던 나였기에 단상에 올라 내지른 첫마디가 "저는 남 앞에 나서는 성격이 아닙니다. 절대 저를 뽑지 말아 주십시오."였다. 다들 '제가 반장이 된다면 어쩌고 저쩌고'를 호소하던 시절에 절대 뽑지 말라는 내 말이 꽤 신선하게 느껴졌는지(대선으로 치면 허경영 정도?) 무려 10표 넘는 득표로 3위를 하게 된 것이었다.


다행히 반장, 부반장은 피했으나 그 뒤가 문제였다. 나머지 뭔가 하나는 맡아야 할 운명에 처한 나는 필사적으로 아무것도 못하겠노라 말하며 선생님께 매달렸다. 그 마음을 가볍게 무시하신 담임 선생님께선 내가 쓴 노트를 물끄러미 보시더니 "글씨가 참 이쁘네. 너는 오늘부터 학급 서기!!"라고 일방적인 통보를 하셨다.


그게 불행(?)의 시작이었다. 매일 학급일지를 작성해서 교무실을 들락날락거리던 나는 당연히 학년주임 선생님 포함 많은 선생님들의 관심 대상이 되었고 특히 담임 선생님 옆자리에 계셨던 국어 선생님의 사랑을 많이 받았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첫여름방학 때엔 담임 선생님의 권유를 가장한 강제 지시로 인해 독서교실에 참여하게 되어 남들 다 노는 방학 한 달을 통째로 학교에 나가 책과 씨름을 하는 지경에 이르기까지 했다.


그나마 이런 나(를 포함한 강제 징용된 수십 명의 학생들)를 불쌍히 여기신 독서교실 담당 선생님께서 과정 전체를 야리끼리(공사장에서 쓰는 용어, 정해진 할당량만 다 하면 조기 퇴근을 할 수 있다)로 진행하겠다 천명하시어 당일 독후감을 써야 할 책을 누구보다 빨리 읽는 속독 능력을 키울 수 있었다. 말이 좋아 속독이지 거의 수박 겉핥기 식의 독서 이후 써낸 독후감이니 제대로 썼을 리 없었지만 운이 좋았던지 과정이 모두 끝난 후 개학일에 맞춰 진행된 독서교실 시상식에서 우수상을 수상했다.


그때부터 교내에선 '아르웬=글짓기 대표'라는 이상한 공식이 성립되었고 무슨 대회만 있으면 자동 출전을 하던 중 시에서 주관한 중학생 글짓기 부문에서 장려상을 받는 영광까지 안았다. 얼떨결에 시작한 독서와 글짓기는 유일하게 형들보다 상대적으로 나은 특기였기에 그 무렵엔 이대로 대한민국 건국이래 최초로 노벨 문학상 수상 작가가 되는 것은 아닌가 하는 착각 속에 빠지기도 했다.


아마 그때 좀 더 재미를 붙이고 갈고닦았다면 적어도 지금보다는 더 나은 글을 쓸 수 있었을 텐데 세상은 그리 협조적이지 않았다. 입학한 고등학교가 하필이면 그 해에 대입 학력고사 전국 수석을 배출한 곳이라 거기에 고무된 선생님들이 어떻게든 명문고라는 타이틀을 유지하기 위해 신입생들부터 스파르타식으로 관리하기 시작했다.


아침 7시 30분까지 등교하고 밤 10시 야간자습까지 하는 통에 교과서나 참고서 이외의 책은 아예 들여다볼 겨를이 없었다. 간혹 가방에서 소설책이라도 발견된다 치면 선생님들은 무슨 금서(禁書)라도 찾아낸 것처럼 압수를 단행했고 그런 삼엄한 감식 속에 나의 독서생활은 본의 아니게 3년간 잠정 중단이라는 결과를 맞게 되었다.


그 3년이란 시간 동안 독서에 대한 갈증이 얼마나 심했던지 나는 대학 입학과 동시에 시간만 나면 교내 도서관을 찾아 미친놈처럼 책을 읽기 시작했다. 지금처럼 디지털 형식의 대출증이 아닌 수기로 작성하는 종이형태의 대출증은 몇 주 지나지 않아 새로 발급받아야 할 정도였고 대출이 불가능할 만큼 두께가 제법 되는 책들은 수업을 자체 휴강하면서까지 도서관에 처박혀 읽곤 했다. 아마 내 생애 전체 독서량의 70% 이상이 그때 이루어진 것이 아닌가 한다.


그때는 그런 생각을 했었다. '지금은 내가 학생 신분이라 시간도 돈도 없어 책을 마음껏 읽지 못하는데 나중에 사회에 나가 돈을 벌게 되면 읽고 싶은 책 마음껏 사서 읽으리라.'


그런데 이게 웬걸? 막상 사회에 나와 보니 학생 시절과는 비교조차 안될 정도로 시간이 나지 않았다. 인생이 원래 언발란스한 거라고 시간이 있을 땐 돈이 없고 돈이 있을 땐 시간이 없다더니 어느 정도 경제적 여유가 생기니 책을 읽을 시간 자체가 나오지 않는 것이다. 상상 속에서처럼 따뜻한 차 한 잔과 함께 하는 여유로운 독서 따위는 애당초 글러 먹은 데다가 설상가상 이제는 노안까지 와서 팔팔하던 젊은 시절처럼 하루 한 권 읽기는 아예 꿈도 못 꾸는 상황이 되니 자연스럽게 '다음에 다음에'를 외치며 뒤로 미루는 일이 잦아졌다.


이미 책장은 더 이상 꽂을 데가 없을 정도로 포화상태에 이르러 책이 넘쳐나는데 정작 그중에 제대로 읽은 책이라곤 10%도 안되니 아내 얼굴 보기 민망할 때가 있다. 가끔은 배송된 후 뜯지도 않은 박스 포장 그대로 방바닥을 굴러다니는 책들을 보며 한심하다는 표정을 짓는 아내를 향해 "책은 원래 읽기 위해 사는 게 아니고 일단 사 모은 후에 그중에 하나씩 골라 읽는 법이야."라고 아무렇지 않게 말을 하지만 그 말을 할 때마다 왠지 죄를 지은 것 같은 기분이 드는 건 어쩔 수 없다.


지금 마음이야 고등학교 3년 생활 후 족쇄가 풀려 날뛰던 망아지처럼 은퇴 이후 폭발적인 독서량을 자랑하겠다는 야심 찬 계획을 갖고 있지만 사람 일이란 게 한 치 앞도 알 수 없는 것이라 그게 가능할지는 모르겠다. 글쓰기만큼이나 흐름을 중시해서 책도 읽다가 덮으면 다시 펴기가 좀처럼 쉽지 않은데 현재는 한 권을 내리읽을 시간과 체력은 없고 오늘도 책장에서 '날 좀 데려가 읽어주오~'라며 나를 노려보는 책들은 줄을 서서 기다리고 있으니 이를 어이하면 좋을꼬. 이러다가 책 수집이 취미로 자리잡는 건 아닐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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