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와 참회록의 중간쯤 어딘가
1970년대를 넘어 80년대 초반에 이르기까지 온 동네 개들이 모두 '도꾸'(개를 지칭하는 영어단어 Dog의 일본어식 표현)라는 이름 하나로 대동단결되던, 한마디로 '동명이견'의 시대가 있었다. 작고 귀여운 강아지 한 마리 키우는 것이 소원이었던 나의 끝 모를 고집에 못 이겨 아버지께서 개 한 마리를 끌고 오신 것이 그 무렵이었다. 그날 나는 내 평생 쏟아야 할 눈물의 10% 정도는 흘렸던 것 같다.
"강아지 사 오랬잖아. 저게 무슨 강아지야? 완전 개잖아. 완전 개."
아버지께선 아직 6개월도 안된 어린 강아지라며 어르고 달랬지만 분명 내 눈에는 완전 개가 맞았다. 철이 들고 뒤늦게서야 알게 된 사실이었지만 아버지 말씀이 틀린 것은 아니었다. 출생시기를 확인할 길은 없어도 적어도 하는 행동만큼은 어린 강아지였던 게 분명했으니까. 이른바 식용견이라 불리던 그 개는 어느 날 아버지 손에 이끌려 우리 집에 왔고 형들은 '캐리'라는 이름을 지어 주고 애정 어린 마음을 담아 보살피기 시작했다.
간혹 배변 실수를 해서 어머니께 몇 대 맞긴 했지만 캐리는 온 가족의 사랑을 받으며 잘 살았다. 단 하나의 문제가 있었다면 나를 향한 캐리의 애정 공세와는 정반대로 내가 캐리를 극도로 무서워했다는 것이었다. 어떤 말을 해도 변명밖에 되지 않겠지만 생후 1년이 안된 강아지라 해도 웬만한 송아지 크기 정도는 되고도 남을 몸집의 큰 개가 나를 향해 놀자고 달려온다는 것은 당시 여덟 살이었던 나로서는 도저히 감당하기 힘든 공포 그 자체였다. 결국 부모님께서는 막내아들을 위해 결단을 내리셨고 캐리는 목줄에 쓰인 '캐리'라는 이름이 희미해질 무렵 우리 곁을 떠났다.
단지 귀엽다는 이유로 무턱대고 입양하고 문제를 일으킨다고 얼마 가지 않아 이내 파양을 해버린, 절대 해서는 안될 짓을 했던 죄책감 때문이었을까? 언제부턴가 반려동물 프로그램을 빠짐없이 보고 관련 서적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다. 비록 지금 당장은 아니더라도 다가올 미래에 다시 반려견을 맞이한다면 적어도 여덟 살 철없던 아르웬이 했던 실수와 무책임함은 절대 반복하지 않겠다는 굳은 의지와 함께 무엇보다도 철저한 준비가 필요하다는 생각에서였다.
그러던 중 반가운 소식이 전해졌다. 브런치에서 인연을 맺은 이여사 작가님께서 출간을 하셨다는 소식이었다. 물론 다섯 명의 작가가 공저를 한 책이긴 해도 그 소식을 듣고 얼마나 기뻤는지 모른다. 처음 이여사님의 글을 읽고 최근에 이르기까지 단 한 편의 글도 놓치지 않았던 나였기에 그 누구보다 확신과 믿음이 있었다. 자극적이지 않은 소재, 지극히 평범한 표현만으로도 단정한 문체를 사용하는 작가님의 글을 읽을 때면 마치 정갈한 가정식 백반 한 그릇을 먹은 듯한 느낌을 받았었다. 그런 작가님이 참여한 책이라니 기대를 갖기에 충분했다.
다섯 명의 작가가 참여해서인지 책은 말 그대로 5인 5색의 매력을 뽐냈다. 이런 것이 공저의 묘미라고 해야 하는 것인지 각각의 작가님들은 제각기 다른 주제를 담아 자신만의 견해를 글로 표현했다. 그중에서도 내가 가장 관심 깊게 읽은 부분은 '반려견과의 이별'에 대한 글을 쓰신 이호기, 박로명 두 분 작가의 글이었다.
지금까지 내가 반려견을 입양하지 못하는 가장 큰 이유가 먼 훗날 있을 이별 때문이었다. 마음에 드는 여성이 있어도 이별의 상처가 두려워 선뜻 먼저 말을 건네지 못하는 약한 마음의 소유자인 내가 오랜 기간 함께 하던 반려견을 (확률상) 먼저 떠나보낼 수 있을까 늘 의문이 들었다. 가끔 반려견 입양 얘기가 나올 때마다 단호하게 반대하는 아내의 한마디도 다름 아닌 "나중에 이별할 때 감당할 수 있겠어?"일 정도였다.
이런 내게 그 부분을 가감 없이 알려준 글이 두 분 작가의 글, 그중에서도 특히 박로명 작가의 글이었다. 글을 읽은 후의 솔직한 감정으로는 '그렇게까지 할 자신은 없다'였다. 물론 직접 그 상황을 직면하면 또 어떻게 달라질지는 모르겠지만 적어도 지금 느낀 감정만으로는 냉정하게 현실을 받아들이거나 담담하게 모든 것을 받아들이지는 못할 것 같다. 많은 이들이 함께 했던 순간 반려견이 주었던 기쁨과 위로를 내세우며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이별의 아픔을 넘어선다고들 말하지만 그 부분에 있어서만큼은 여전히 100% 공감하지 못하겠다. 기쁨은 기쁨이고 아픔은 아픔이라 별개의 문제로 생각하는 나로서는 아무리 기쁨이 커도 그게 아픔을 상쇄하고도 남을 것 같지는 않다.
지극히 개인적인 견해지만 이 책에서 꼭 읽어야 할 글을 쓴 작가 한 사람만 꼽으라면 나는 주저 없이 박로명 작가를 꼽겠다. 친분으로만 치자면 당연히 이여사님을 꼽는 게 옳을 것이고 이여사님의 글 또한 어디에 내놓아도 손색이 없을 정도지만 독자들에게 시사하는 바에 있어 조금은 부족했다고 본다. 이마저도 앞서 언급했듯 주관적인 생각일 뿐이니 다른 독자들은 충분히 다른 생각을 하리라 본다.
이 책은 반려견을 키우는 사람들이라면 무조건 읽어야 할 필독서라기보다는 차라리 반려견 입양을 고려하는 분들이 한 번쯤 읽어봐야 할 책이라 보는 편이 더 옳을 것이다. 이 책에는 반려견을 입양하기까지의 과정과 함께 하면서 겪었던 많은 감정들, 그리고 이별의 순간을 그리고 있다. 책 제목만 보면 자칫 반려견 훈련법에 대한 글로 오해할 수도 있지만 개인의 경험을 서술한 에세이 다섯 편이 실려 있을 뿐이다.
책을 다 읽기까지 그리 오랜 시간은 걸리지 않았다. 크게 어려울 것도 없는 내용에 여러 개의 단편들이 이어지기에 쉽게 읽을 수 있을 정도로 가독성도 훌륭한 편이다. 다만 몇 가지 아쉬운 점은 있다. 먼저 다섯 명의 작가들이 본인의 글을 시작하는 첫 페이지에 반려견 사진을 넣었으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과 몇 군데 눈에 띈 조금 부족한 문장들 때문에 흐름이 끊긴 적이 있었다는 것이다. 아마 글을 많이 써보지 않은 데에서 기인한 문제점인 것 같은데 그 점이 조금 아쉽게 느껴졌다.
우연히 내 손에 들어온 이 책을 읽으며 40년도 더 된 나의 첫 반려견이자 (현재 기준으로) 마지막 반려견인 캐리가 다시 떠올렸다. 우리 집에 온 첫날밤 쉽게 잠들지 못하고 달빛이 비치는 구석진 곳에서 낑낑거리며 울던 그 모습은 아직도 내 뇌리에 박힌 채 잊히지 않고 있다. 캐리가 떠난 그날, 학교에서 돌아온 나는 캐리가 없다는 것을 확인하고 10년 묵은 체증이 사라진 듯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었다. 그때 지은 죄와 마음의 빚을 덜어내기 위해 한동안 반려견 입양을 고려했던 적이 있다.
이 책을 읽고 난 지금은 그 생각이 조금 바뀌게 되었다. 과연 나는 다섯 명의 작가님들이 쓰신 글처럼 그렇게 할 수 있을까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져보았다. 결론은 아무리 생각해도 아직은 준비가 덜 된 것 같다는 것이다. 나는 아직까지 다섯 명의 작가님들처럼 할 자신이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