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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르웬 Jan 13. 2023

어느 브런치 3년 차의 감정 설명서

유혹에 흔들리지 않을 3년 차에 접어들었다

2021년 2월 초에 브런치에 들어왔으니 조만간 만 2년이 되는 셈이다. 들어오고 얼마 되지 않아 쓴 글 하나가 메인에 노출되어 엄청난 조회수를 기록하며 팔자에도 없는 인기(?)와 함께 난독증 환자들의 악플에 상처받아 반년 넘게 글쓰기를 중단하고 개인적인 사정으로 인해 몇 개월씩 자리를 비운 시간까지 감안하면 이제 겨우 1년 남짓 활동을 했을 뿐이다.


길지도 짧지도 않은 그 시간 동안 내가 얼마나 성장했는지는 모르겠지만 한 가지 달라진 점이 있다면 타인의 시선을 크게 신경 쓰지 않게 되었다는 점이다. 물론 여전히 자기 검열의 늪에 빠져 글을 쓰는 동안 망설이고 주저할 때가 있긴 하지만 가급적이면 처음 구상했던 것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 글을 쓰고자 노력한다.


간혹 조회수가 얼마 나왔다며 기쁨을 감추지 못하는 글을 접할 때가 있다. 그런 글을 볼 때마다 '그게 그렇게 좋은 일만은 아닐 텐데'라는 생각에 걱정이 되기도 한다. 분명 구독자 수가 늘고 조회수가 증가하는 것은 긍정적인 신호지만 그 일을 계기로 본인 고유의 색채를 잃고 오버 페이스를 하다가 결국 얼마 가지 않아 한계를 보이며 글쓰기를 중단하거나 사라지는 사람들을 많이 봐왔기 때문이다.


올해도 나는 누가 뭐라 하든 기존에 했던 것과 같은 방식으로 글을 쓸 생각이다. 어느 작가가 말했던 '텍스트 근본주의'라는 표현처럼 적어도 브런치에서만큼은 다른 조건은 보지 않고 최소한 글 하나만으로 사랑받을 수 있는 글을 쓸 것이고 자극적인 제목이나 소재를 이용하여 단순 조회 수에 목숨을 거는 글은 철저하게 지양할 것이며 앱 업데이트를 통한 브런치팀의 끊임없는 방해공작에도 굴하지 않고 내게 도움이 되는 글을 쓰는 작가들을 찾아낼 것이다.


새해가 시작되고 지나온 길을 되돌아보며 느꼈던 수많은 감정들을 하나씩 정리해 보았다. 나름 진지하게 접근했으나 몸속에 내재된 개그 본능을 이길 수는 없었던 것인지 어쩌다 보니 망작이 되고 말았지만 바로 삭제하려다가 브런치의 많은 초보 작가들이 내가 걸어온 길을 걷지 않기를 바라는 순수한 마음에서 공개하기로 결정했다. 웃자고 쓴 글(?)이니 과도한 비판과 반박은 삼가길 바란다.(이하 가나다 순)



갈등 : 믿고 보던 작가가 어느 순간 전혀 다른 유형의 글을 쓰기 시작했을 때 앞으로 이 작가 글 읽어? 말어?

감격 : 지독한 아홉수(구독자수 99, 199, 299 등등)를 벗어나 당당히 구독자 앞자리 숫자가 바뀔 때

감동 : 자신이 쓴 글의 주제와 의도를 정확히 파악한 장문의 댓글이 달렸을 때

고통 : 문단도 단락도 아무 내용도 없는 엄청난 분량의 글을 읽어나갈 때

기대 : 브런치 만능 치트키를 소재로 하여 글을 쓴 후 행여나 메인에 오르지 않을까 하는 심리 상태


난감 : 분명 잘 쓴 글인데 뭐라 댓글을 달아야 할지 모르겠고 라이킷만 누르고 나오기엔 부족함이 느껴질 때

난해 : 한글로 쓴 글이고 분량이 적은 편임에도 작가가 무슨 말을 하는지 해석이 불가능할 때

당황 : 오래전 쓴 글이 어디에 노출된 것인지도 모른 채 뜬금없이 역주행하여 뒤늦게 떡상할 때

분노 : 본인이 쓴 글보다 못하다 느껴지는 글이 떡하니 메인에 걸려 내려올 줄 모를 때 드는 심정

불만 : 어떤 작가들은 연이어 몇 개씩 메인에 노출되는데 자신은 몇 달째 메인은커녕 조회수가 바닥을 기고 있을 때


불안 : 글을 쓰지 않는 기간이 길어지면서 이대로 브런치에서 서서히 잊히는 건 아닐까 두려워지는 상태

슬픔 : 내 모든 글에 라이킷과 댓글을 선물하던 구독자가 어느 날 갑자기 브런치를 탈퇴해 버렸을 때

신기 : 글을 올려도 늘 두 자릿수를 넘지 못하던 조회수가 어느 날 갑자기 메인뽕을 맞아 급상승할 때

심심 : 몇 시간째 관심작가들의 새 글이 올라오지 않아 손가락만 빨고 있을 때

안심 : 구독자수 앞자리 숫자가 바뀐 후 행여 한 사람이라도 취소를 하여 다시 아홉수에 걸리는 것은 아닐까 노심초사하던 중 서너 명이 연달아 구독해서 안정권에 접어들었다는 판단이 들 때


애잔 : 글쓰기 싫은데도 억지로 발행한 것이 역력히 느껴지는 글을 만났을 때

오기 : 브런치에 3회 이상 낙방한 자가 재도전할 때의 심정

원망 : 브런치팀이 자신의 글을 메인에 노출시켜주지 않을 때 드는 감정

질투 : 내 글에는 댓글 한 줄 쓰지 않는 구독자가 다른 글에는 글자수 제한을 넘기면서까지 댓글을 달 때

착각 : 브런치나 다음 메인에 올라 조회수가 급상승하여 본인이 진정한 작가 반열에 올랐다 생각할 때


처량 : 자신과 비슷한 시기에 브런치에 입성한 작가가 저만치 앞서가고 나만 뒤떨어진다는 느낌을 받았을 때

초라 : 자신이 넘보기엔 넘사벽의 실력을 가진 글을 쓰는 이를 만났을 때

초조 : 글을 발행하고 한참의 시간이 흘렀음에도 라이킷, 댓글 등 아무 반응이 없을 때

통쾌 : 공공의 적처럼 느껴지던 사람 또는 사건에 대해 누군가 대신 강한 비판글을 올려줬을 때

해탈 : 브런치나 다음 메인에 올라 조회수가 급상승하는데도 너무 자주 겪어 별 감흥이 없는 상태


허무 : 애써 쓴 글을 미처 저장하지 못한 상태에서 나가기 버튼과 확인 버튼을 연달아 눌렀을 때

허탈 : 메인 버프를 받아 몇 만 단위까지 치솟던 조회수가 채 3일이 되지 않아 제자리로 돌아와 두 자릿수 이하로 떨어질 때의 심정

황당 : 분명 라이킷을 눌렀다는 알림음이 와서 득달같이 달려갔는데 그분의 라이킷이 신기루처럼 사라졌을 때


참고로 말씀드리자면 지금 나는 거의 모든 단계를 지나 '해탈'의 경지에 이르는 중이다. 메인 그까짓 거야 가려고 마음만 먹으면 김밥 싸고, 라면 끓이고, 떡볶이 사진 올리고, 퇴사하고, 시어머니 욕했다가 용서도 하고(으잉???), 이혼도 하고(으잉??????) 해서 '내가 OO 하지 않는 이유', '내가 OO 하는 법', '나는 이래서 OO 했다' 정도의 제목만 그럴듯하게 붙여줘도 언제든지 갈 수 있는 거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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