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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르웬 Jan 21. 2022

장기판의 졸(卒) 같은 인생

인간의 욕심은 그 끝이 어디일까?

딸아이가 태어날 무렵, 가게가 있는 상가 주변엔 때아닌 재정비 바람이 불었다. 낙후된 상권을 살리고 발길을 돌린 사람들을 다시 돌아오게 한다는 명분 아래 '문화의 거리 조성'이라는 거창한 이름을 붙였지만 내 눈에는 가진 자들의 횡포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어떻게든 겉보기에 번듯하게 만들어 월세를 올리려는 건물주들의 수작이 분명했다.


한동안 서명을 거부하며 미루고 피했지만 이미 90% 이상의 찬성률을 보이는 마당에 힘없는 세입자 입장에서 더 이상의 반대는 무의미했다. 공사는 예정대로 진행되었고 인도에 새로 깔린 보도블록과 아스팔트로 포장된 차도를 보며 걱정이 앞섰다. 몇 년 전 다른 곳에서 일할 때도 도로 정비와 함께 상권이 급격히 몰락하는 비슷한 경험을 했기 때문이다.


매출 감소는 시간문제라 생각했고 불행히도 그 예상은 틀리지 않았다. 가게 앞이 이면 도로처럼 사용되던 때엔 그나마 잠시 정차하고 물건을 사는 고객이 있었지만 차선이 생기고 주정차 금지 표시판이 세워지자 더 이상 그런 고객들을 보기가 힘들어졌다. 그나마 그때까지만 해도 어느 정도의 영향만 있을 뿐 타격이 큰 편은 아니었다.


그보다 더 큰 문제는 완공이 된 이후였다. 주변이 정비되면서 상가의 건물주들은 너나 할 것 없이 앞다투어 월세를 인상했고 버티다 못해 나가는 세입자들이 줄을 이었다. 날이 갈수록 공실이 된 상가는 늘어났고 각 건물의 얼굴이라 할 수 있는 1층 점포의 상당수가 그렇게 되니 상권은 이전보다 더 못한 상황이 되고 말았다. 


1년 전 폐점을 했던 점포가 자리를 옮겨 우리 가게 바로 옆으로 온다는 믿을 수 없는 소식이 전해진 것도 그 무렵이었다. 상식선에서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일이었기에 처음엔 헛소문일 거라 생각했다. 입지조건이 훨씬 좋은 자리에서도 버티지 못하고 폐점한 점포가 그보다 못한 자리에 더 많은 월세를 부담하면서까지 들어올 리 없다는 생각에 마지막까지 일말의 기대를 품었지만 그 기대는 보기 좋게 빗나갔다.


얼마 후 경쟁점이 들어설 자리에는 공사 자재들이 쌓이기 시작했고 전면 통유리에는 '과일 가게 들어올 예정'이라는 커다란 현수막이 붙었다. 식당과 술집이 즐비한 유흥가 한가운데 뜬금없는 과일 가게라니, 조롱이라기엔 너무 심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비밀유지를 해서라도 나를 방심하게 하려는 전략인가 싶어 화가 나기보다는 헛웃음이 났다.


불과 1년 만에 또다시 전쟁이 시작되었지만 시련은 거기서 끝나지 않았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50m 전방에 있는 빈 상가에도 또 다른 프랜차이즈 경쟁점이 들어선다는 소식이 이어졌다. 좁은 상권을 두고 3파전을 치르게 된 셈이었다. 인근 상가 사장님들은 기본이 안된 놈들, 상도덕도 없는 것들이라며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주변에서 난리 치는 것과는 달리 정작 당사자인 나는 모든 것을 담담하게 받아들였다. 어차피 내가 흥분한다고 달라질 것이 없다는 걸 알기에 그럴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다. 그보다는 어떤 식으로 대응할 것인지가 급선무였다. 일반적으로 새 점포가 들어서면 개점 효과가 있게 마련이고 그에 맞춰 대대적으로 행사를 하는 경우가 많은데 그 바람을 어떻게 잠재울 것인가를 생각해야 했다.


본사와 여러 차례 협의를 하고 각종 대응책을 마련했지만 그 바람은 예상보다 무서웠다. 매출은 눈에 띄게 하락했고 덩달아 수입도 절반 이상 떨어졌다. 인건비를 빼면 손에 쥐는 건 얼마 되지 않았지만 나 하나 살자고 일하던 직원들을 매몰차게 내보낼 수도 없는 노릇이라 그저 순간순간 최선을 다 하며 버티고 기다리는 것 외엔 아무것도 할 것이 없었다.


시간이 흘러 근무자들이 차례대로 그만두고 그때마다 그 공백을 내가 메워가며 버텼으나 상황은 크게 나아지지 않았다. 결국 아내가 다시 일을 하기로 결정했다. 처음에는 반대를 했지만 나로서도 별다른 방법이 없었다. 이제 겨우 사람답게 사는가 싶었는데 그게 아니었다. 쉬지 않고 먼 길을 걸었음에도 돌고 돌아 제자리에 선 심정이었다.


바쁘게 움직여야 할 시간에 멍하니 앉아 있는 시간이 늘면서 그런 생각을 했다. '과연 인간의 욕심은 그 끝이 어디까지일까? 도대체 내가 뭘 잘못한 것일까?' 나는 이 모든 일의 시작이 상가번영회라는 타이틀을 달고 제 욕심 채우기 바빴던 건물주들의 오판에서 비롯되었다고 생각했다. 다른 곳과 차별화할 생각은 못하고 틀에 박힌 듯 똑같은 재정비 사업만 추진하지 않았어도 기존에 장사를 하던 세입자들이 쫓겨날 일도, 우리 점포의 경쟁점이 들어올 일도 없었다.


지금도 상가번영회의 높으신 분들을 가끔 만난다. 볼 때마다 힘들다며 다 죽어가는 소리를 하는 꼴을 보면 피가 거꾸로 솟는 느낌이다. 당장이라도 달려가 멱살을 잡고 정녕 이게 원하던 결과인지 이렇게 될 줄 몰랐던 것인지 따지고 싶을 때가 한두 번이 아니다.


결국 나처럼 힘없는 사람들은 '장기판의 졸(卒)'같은 인생일 뿐임을 새삼 깨닫게 되었다. 내 의지대로 되는 것은 하나도 없고 내 갈 길이 누군가의 힘에 의해 강제로 정해지는 세상, 가진 자들의 결정에 따라 운명이 결정되는 세상에서 약한 자들에겐 늘 희생과 고통만 뒤따른다. 오래전부터 생각했지만 이 세상은 약자들이 살아남기에는 너무 가혹하고 불공평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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