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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르웬 Apr 15. 2022

왜 그렇게 살아요?

이렇게라도 살지 않으면 도태될 것 같아서요

또 한 주의 시간이 흘러 주말이 되었다. 밤을 새워가며 일하는 늘 똑같은 일상의 반복이지만 오전, 오후 근무자가 있어 평소보다 이른 퇴근을 할 수 있고 아내도 늦은 저녁이 되어서야 잠깐 출근을 하니 상대적으로 토요일은 마음이 가벼워진다. 해야 할 일들을 서둘러 마무리한 후 오전 근무자에게 당부사항 몇 가지를 알려주고 집으로 향했다.


늘 그렇듯 늦은 아침까지 일어날 생각이 없는 두 여자 덕분에 집안은 적막강산이지만 그래도 평일과는 달리 사람의 온기가 전해져서 좋다. 방에 들어서니 이른 새벽까지 나를 도와 일하다가 뒤늦게 잠이 든 아내가 잠이 덜 깬 목소리로 나를 맞는다.

"왔어? 고생했다. 어서 씻고 들어와."


아내와 대화다운 대화를 할 수 있는 유일한 시간인 주말 아침을 맞아 아내 옆에 나란히 몸을 눕히며 얘기를 꺼냈다.

"그 소식 들었어? 사거리 모퉁이에 있는 OO점 있잖아. 이번 달 말까지만 하고 폐점한다네."

"정말? 왜?"

"자영업자가 문 닫는 이유야 하나밖에 더 있겠어? 매출이 안 따라주니 그런 거겠지. 몇 년 전부터 좋지 않았는데 아무래도 코로나 19 여파가 결정타로 작용한 모양이야."


아내의 한숨소리와 함께 무거운 침묵이 이어졌다. 아무 말도 하지 않는 그 심정을 알 것 같았다. 출퇴근길에 하루도 빠짐없이 보던 같은 브랜드의 점포가 폐점한다는 소식은 우리에게도 언제든 일어날 수 있는 문제였기에 그런 불안감을 느낀 게 분명했다. 20년 가까이 한 곳에서 일하는 동안 주변에서 폐업하는 점포들을 수없이 봐왔지만 이번만큼은 전해지는 느낌이 달랐다. 


오랜 침묵을 깨고 아내에게 만약 로또 1등에 당첨돼서 목돈이 생기면 위약금을 내더라도 이 일을 그만둘 것인지 물었다. 요즘 1등 당첨금으로 할 수 있는 게 뭐가 있겠냐는 대답과 함께 말끝을 흐리는 아내의 마지막 한마디가 유난히 또렷하게 들려왔다.

"되기만 하면 그렇게 하는 것도......"


순간 내 귀를 의심했다. 불과 몇 년 전만 해도 그런 얘기를 꺼낼 조짐이라도 보이면 위약금이 얼만데 그런 소리를 하냐고 펄쩍 뛰던 아내였다. 20년 가까이 일하는 동안 제대로 쉬었던 기간을 다 합쳐 봐야 한 달이 채 되지 않을 만큼 강행군을 하면서도 별다른 내색을 않던 아내의 입에서 그런 말이 나오리라곤 미처 예상치 못했다. 또 한 번 아내에게 몹쓸 짓을 하고 있다는 생각이 머릿속에서 맴돌았다.


아내를 만나고 처음 장사를 시작하면서 앞으로의 삶이 순조롭게 흘러가리란 생각은 하지 않았다. 어차피 그 누구의 도움도 없이 두 사람의 능력만으로 모든 문제를 해결해야 했기에 어려움이 많을 거라는 각오도 했었다. 그래도 계획을 세우고 열심히만 살면 어느 정도 빛은 보일 거라 생각했고 조금씩 나아질 거란 기대는 있었다. 지난 20여 년의 시간 동안 세상 누구보다 열심히 살았다고 자부하지만 제자리를 계속 맴돌고 있을 뿐 크게 달라진 것은 없었다.


이런 우리 부부를 보고 왜 그렇게 사느냐고, 이제는 적당히 즐기며 살아도 될 텐데 왜 그리 가혹할 정도로 스스로에게 엄격하게 하느냐고 말하는 지인들을 자주 만난다. 딸아이가 어릴 때엔 애 크는 거 순식간이라며 어린 시절 기억이 평생 남는 법이니 되도록 많은 추억을 만들어주라는 조언을 듣기도 했다. 미래도 중요하지만 현재도 그에 못지않게 중요하다는 그 말의 뜻을 모르는 바는 아니다.


변명 아닌 변명을 하자면 자영업자만이 이해할 수 있는 직업의 특수성에 그 이유가 있는 것이라 말하겠다. 지금 당장 큰 사고 없이 순항하더라도 언제 어디서 어떤 변수가 생길지 모른다는 불안감에 한순간도 긴장의 끈을 놓을 수 없는 자영업자의 숙명을 안고 살다 보니 그렇게 되었다는 뜻이다. 


우리 부부도 처음부터 지금처럼 살지는 않았다. 빠듯한 살림이긴 해도 나름의 여유를 찾으려 노력했고 남들처럼 적당히 즐기며 살고자 몸부림을 치기도 했다. 하지만 그때마다 어김없이 위기가 찾아왔다. 마치 샴페인을 너무 일찍 터뜨린 것에 대한 경고라도 하듯 한 걸음 나가려 할 때마다 번번이 발목을 잡는 일들이 발생했다. 이런 일이 몇 번 반복되자 유비무환의 자세로 앞날에 대한 대비를 하지 않고서는 버티기 힘들 수도 있겠다는 결론에 이르렀다.


그렇게 살아온 세월이 1년이 되고, 10년이 되고, 20년이 되었다. 나는 지금도 내 판단이 틀렸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끊임없이 몰아치는 폭풍 속에서도 그나마 이렇게 온전히 살아남을 수 있었던 원동력은 현재에 안주하지 않고 항상 미래를 대비했던 것이라는 생각에는 변함이 없다.


자격지심 일지는 몰라도 우리 부부를 바라보는 주변의 시선이 따갑게 느껴질 때가 있다. 왜 그렇게 사느냐고 말했던 지인들처럼 우리 부부에 대한 걱정스러운 시선이 대부분이지만 그중에는 한심한 눈빛으로 바라보는 분들도 적지 않게 있음을 잘 안다. 그런 분들에게 꼭 해주고 싶은 말이 있다. 우리도 이렇게 살고 싶어서 사는 건 아니라고. 적어도 지금 이 순간만큼은 최선을 다 하고 사는 게 보는 이에 따라 그렇게 보일 뿐이라고. 우리 부부도 남들 보기에 폼나게 살고 싶은 마음 간절하다. 하지만 지금은 그럴 때가 아님을 잘 알기에 때를 기다리며 웅크리고 있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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