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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르웬 Apr 18. 2022

당신 고생한 거 내가 다 봤어

우리에게 생후 100일의 기적은 없었다

길 건너편 경쟁점의 폐점과 함께 우리에게 찾아온 딸아이를 두고 사람들은 복덩이라 불렀다. 출산 이후 100일이 되어갈 무렵 주변 상황이 급변하기까지 1년 여 시간 동안은 그 말이 맞는 듯했다. 근무시간이 단축되거나 해야 할 일들이 줄어든 것은 아니었지만 내겐 이른 오전 출근해서 늦은 저녁이 되어 퇴근하는 지극히 정상적인 생활패턴이 주어졌고 아내는 특별한 일이 없는 한 가게에 출근하지 않았다.


짧기만 한 1년이란 시간이 지난 후 모든 것이 예전으로 되돌아갔다. 나는 다시 야간 근무를 하게 되었고 아내는 어쩔 수 없이 일을 해야 했다. 그나마 다행스러운 것은 아내의 산후조리 기간과 부족하긴 해도 내가 집에서 아내와 아기를 함께 돌볼 수 있는 시간이 주어졌다는 점이었다. 긍정적으로만 생각하자면 딸아이는 기가 막힌 타이밍에 태어난 셈이었다.


일하던 근무자들이 모두 그만둔 무더운 8월의 어느 날부터 아내는 갓 100일이 지난 아기와 함께 다시 가게로 나왔다. 유모차에 태워서 올 때가 대부분이었지만 가끔 아이가 울거나 보챌 때면 등에 업은 채 빈 유모차를 끌고 오기도 했다. 가게로 들어서는 두 여자를 바라볼 때면 반가운 마음과 함께 안쓰럽다는 생각이 교차했다.


두 여자를 볼 수 있는 시간은 짧게만 느껴졌다. 가끔씩 아내를 도와 한두 시간 아기를 볼 때도 있었지만 얼굴만 잠깐 보고 집으로 오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퇴근 시간이 늦어질수록 다음 출근 시간에 지장을 줄 수 있기에 한시라도 빨리 퇴근을 해야만 했다. 핏덩이 아기와 아내를 두고 집으로 향하는 발걸음은 무거웠고 집에 있어도 걱정스러운 마음에 늘 마음이 불편했다.


일만 해도 힘들고 지칠 가게에서 아내는 육아와 일을 병행했다. 카운터 한 구석에 둔 유모차에 아기를 재운 틈에 밀린 일을 했고 아기가 깨면 등에 업은 채 손님을 맞이하기도 했다. 출근 후 확인할 것들이 있어 가끔 CCTV를 돌려 보면 차마 보고 싶지 않은 장면들이 눈앞에 펼쳐졌다. 화면 속 아내가 잠시도 쉬지 않고 움직이는 것을 보며 애써 눈물을 참은 적도 많았다. 그 모든 것을 내 눈으로 고스란히 다 봤다.



사진 출처 : 유튜브 채널 '옛능 : MBC 옛날 예능 다시 보기 화면 캡처


지난 2011년 <무한도전>이란 프로그램에서 멤버들이 조정 경기에 도전을 한 적이 있다. 경기를 마치고 콕스 자리에 있던 정형돈이 눈물을 쏟으며 멤버들에게 "내가 봤어!"라는 말을 할 때 얼마나 많은 눈물을 흘렸는지 모른다. 멤버들이 죽을힘을 다 해 노를 젓는 동안 자신은 아무 일도 하지 못한 채 그저 묵묵히 바라보아야만 했던 그 마음이 당시의 내 심정과 똑같았다. 


주변 상황을 그렇게 만든 사람들에 대한 분노,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없다는 무기력함, 그리고 직업에 대한 회의감 등 그 어떤 단어로도 설명하기 힘든 복잡한 감정 속에서 하루하루를 살았다.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가장 견디기 힘든 순간이 그때였다. 적어도 그 당시만큼은 무능한 남편일 수밖에 없었던 나는 어떤 일이 있어도 두 여자만큼은 끝까지 책임지겠다고 다짐했다.


검색창에 '육아'라는 단어를 입력하면 육아 우울증, 육아 스트레스 같은 부정적인 의미의 단어들이 연관 검색어로 뜬다. 그만큼 육아라는 것은 단순히 '아이를 기른다'라는 사전적 의미 이상의 많은 것들을 내포하고 있음을 뜻한다. 특히 경험 없는 초보 아빠, 엄마에겐 그 힘듦이 몇 배는 된다. 


주변을 둘러보면 육아와 집안 살림에 있어 충돌을 하는 부부들을 자주 본다. 누구의 잘못을 탓하기 전에 그 원인은 무관심과 무지에서 오는 경우가 많다. 상대방이 하는 일을 눈으로 직접 보지 못하니 지극히 자신의 입장에서만 말할 수밖에 없다. 모든 것을 다 봤다고 할 수는 없지만 나는 아내가 아이를 키우는 과정을 내 눈으로 직접 봤다. 대부분의 부부는 겪을 수 없는 일이었다. 그걸 직접 눈으로 봤기에 나는 늘 아내에게 죄인일 수밖에 없었다.


가수 리쌍의 멤버인 개리는 조정 경기를 마치고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우리는 조정을 통해서 한 배를 탄 거지만
인생도 한 배를 탄 누군가와 서로 믿지 않으면
제대로 갈 수 없겠구나

우리 부부는 딸아이와 함께 한 배를 탔다. 언제 우리 배를 덮칠지 모를 커다란 파도가 눈앞에서 춤출 때 우리는 서로 믿고 의지하는 것 외에는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그저 하루하루를 견디고 버티며 살았다. 그렇게 딸아이는 3년이란 짧지 않은 시간 동안 가게에서 자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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