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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르웬 May 12. 2022

여보, 나도 좀 살자

 아내의 한마디가 내 가슴을 아프게 했다

사람은 적응의 동물인 동시에 망각의 동물이란 말이 있다. 갑자기 늘어난 근무시간도 어느덧 자연스럽게 적응되었고 아내에 대해 가졌던 측은한 마음과 미안함도 시간이 갈수록 점점 희미해졌다. 힘든 것을 느끼지 못할 정도로 정신없이 살다 보니 이내 모든 게 익숙해졌고 당연히 아내도 그럴 거라 생각했다. 3년이란 긴 시간 동안 단 한 번도 내색하지 않았기에 아내가 얼마나 힘든 시간을 보냈는지 나는 전혀 눈치 채지 못했다.


우려했던 것과는 달리 딸아이는 별 탈 없이 건강하게 잘 자랐다. 간혹 동의 없이 아이 얼굴에 카메라를 들이대는 몰지각한 손님들이 있긴 했지만 큰 사고는 없었다. 오히려 인근에 있는 고등학교에 '눈이 큰 아기'가 있는 가게로 소문이 나서 한동안 관람료(?)를 따로 받아야 하나 고민할 정도로 학생들이 한꺼번에 몰려왔던 게 사고라면 사고랄까 이렇다 할 문제는 없었다.


문제가 생긴 건 아이가 만 3살을 앞둔 초겨울쯤이었다. 여느 때처럼 교대시간이 되어 아내가 아이와 함께 퇴근 준비를 할 무렵 한 무리의 취객들이 몰려왔다. 갓 성인이 된 것으로 보이는 20대 초반의 남자들은 가게에 들어오면서부터 사람이 할 수 있는 온갖 욕을 다 하며 매장을 돌아다녔다. 이미 그들에겐 자연스러운 접두사가 되어버린 '개'를 이용한 개짜증, 개맛있다 등등은 기본이었고 씨X, 존X가 말끝마다 붙었다.


처음 한동안은 그러다 말겠거니 하며 애써 못 들은 척했지만 시간이 갈수록 그 정도는 점점 심해졌다. 한두 명만 떠들어도 시끄러운 판국에 서너 명이 동시다발적으로 해대는 욕지거리는 소음공해에 가까웠다. 한창 말을 배우는 시기의 아이 교육 차원에서도 안 되겠다 싶어 참다못해 대화 중에 욕은 좀 자제해달라고 정중하게 부탁했다.


다들 떨떠름한 표정을 짓긴 했지만 어느 정도 진정되는 분위기였기에 조용히 마무리되나 싶는데 그중 한 녀석의 대답이 내 가슴 깊숙한 곳을 찌르고 들어왔다.

"씨X, 누가 가게에 애 데려오래? 애는 집에서 키워야지."

그 말을 듣는 순간 수만 가지 생각이 머리를 스쳤다. 이것들을 모조리 묶어다가 반쯤 죽여 놓을까 아니면 본보기로 한놈만 묵사발을 만들어 버릴까 하는 생각을 했다가 이내 지워버렸다. 4:1로 싸우는 거니 분명 아내도 그 싸움판에 뛰어들 것이고 아이는 엄마, 아빠가 싸우는 모습을 보고 공포에 떨며 울음을 터뜨리게 될 것이다. 아이가 우는 모습을 보면 나도 아내도 눈이 뒤집힐 것이고 그렇게 되면 사태는 걷잡을 수 없이 흐를 것이 분명했다.


생각이 여기까지 이르자 서둘러 손님들을 내보내는 게 상책이라 판단했다. 먼저 아내에게 아이를 데리고 집으로 가라고 한 후 문제의 말을 한 사람을 불러 세웠다. 술에 취한 사람을 앞에 두고 상식과 논리를 들이대는 것이 얼마나 무모한가를 잘 알았지만 방법이 없었다. 다행히 동행한 친구들의 만류와 설득으로 더 이상의 충돌은 없었다.


그날 새벽, 자리에 앉아 많은 생각을 했다. 어떻게든 아이가 더 이상 가게에 나와서 험한 꼴을 보는 것만은 막아야 했다. 자식의 교육을 위해 이사를 3번이나 했다는 맹모삼천지교까지는 하지 못하더라도 뭔가 대책을 세워야만 했다. 아침에 출근한 아내에게 어젯밤과 같은 일을 자주 겪는가 물었더니 그게 어디 하루 이틀 일이겠냐고 아내가 대답했다. 힘들더라도 내가 집에 데리고 있겠다고 했지만 아내는 반대의사를 분명히 하며 언젠가는 겪어야 할 일이니 다가오는 봄부터 아이를 어린이집에 보내자고 했다.


선뜻 대답을 할 수가 없었다. 당연히 보내야 한다는 마음과 아직은 부모 품에 있어야 한다는 생각이 머릿속에서 계속 부딪혔다. 침묵이 길어지자 그런 내 마음을 눈치챘는지 뒤이어 아내가 한마디 덧붙였다.

"여보, 나도 좀 살자."

깊은 한숨과 함께 내뱉듯 말하는 아내의 얼굴을 보는 순간 무거운 것이 내 머리를 내리치는 듯한 충격을 받았다. 그 표정에는 말로 다 할 수 없는 그동안의 고충이 모두 들어 있었다. 만약 아내가 악을 쓰며 소리 질렀더라면 아마 나도 어떤 식으로든 되받아쳤을 것이다. 더 이상 할 말이 없었고 아내의 뜻을 따르기로 했다.


그날부터 아내와 함께 발품을 팔며 몇 번의 상담을 한 끝에 마침내 아이가 다닐 어린이집을 결정했다. 부모의 품을 떠나 세상에 첫 발을 내딛는 아이라 걱정이 많았지만 우리의 예상을 비웃듯 아이는 빠르게 적응했다. 반나절 정도밖에 안 되는 짧은 시간이었지만 아이가 없는 동안 아내도 잠깐의 여유시간을 가졌고 그렇게 평화로운 일주일이 흘렀다.


모든 것이 제자리를 잡아간다고 생각하던 2주째, 미처 예상치 못했던 일이 발생한 건 그때였다. 월요일부터 조금씩 출근이 늦어지던 아내가 어느 날 출근 시간을 두 시간이나 넘겨 잔뜩 굳은 표정으로 가게에 들어오자마자 눈물을 펑펑 쏟기 시작한 것이었다. 영문도 모른 채 지각한 게 미안해서 연기하는 거냐는 나의 장난스러운 말에 아내는 버럭 소리를 질렀다.

"내가 지금 장난하는 거 같아? 안 떨어지려고 애쓰는 애 억지로 떼놓고 오는 그 심정, 네가 알기나 해?"


그저 늦잠을 자는 줄만 알았던 아내가 알고 보니 아침마다 어린이집 앞에서 전쟁 아닌 전쟁을 치른 것이었다. 전혀 예상 못한 일이었다. 간혹 그런 아이가 있다는 얘기는 들었으나 일주일 동안 별 문제가 없었기에 내 아이만큼은 잘 적응하고 있는 줄 알았고 떼를 쓴다 해도 잠깐일 거라 생각했지 몇 시간 동안 전쟁을 치를 거란 생각은 못했다. 그렇다고 예전처럼 아이를 다시 가게로 데려올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그 사실을 알고 난 후부터 마음이 무거웠다. 내 눈에 아직 어리게만 보이는 아이를 부모의 품에서 잠시나마 떠나보낸다는 게 그렇게 힘든 일인 줄 몰랐다. 매일 아침마다 굳은 표정의 아내 얼굴을 바라보는 것 또한 견디기 힘든 일이었다. 차라리 아무것도 몰랐으면 나았을까? 내가 평범한 직장인이었다면 아내가 시간에 쫓겨 아이를 억지로 떼내고 도망치듯 뛰쳐나오는 일은 없지 않았을까? 꼬리에 꼬리를 물고 들어가다 보면 항상 마지막에 남는 결론은 단 하나, 하루빨리 이 지옥 같은 곳에서 벗어나야 사람답게 살 수 있다는 것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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