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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르웬 May 26. 2022

큐피드가 화살을 잘못 쏴서 그만....

우주 최강의 잘못된 만남

남자는 연애에 별 관심이 없었다. 좀 더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어느 한 사람에게 구속되지 않는 자유연애를 꿈꿨다. 그런 자신의 속내를 숨기는 방법은 단 하나, 현실에서는 도저히 찾을 수 없는 이상형을 전제조건으로 두는 것이었다. 적어도 이 정도 조건은 갖춰야 한 번쯤 눈길이라도 줄 것이라 써놓은 것이 정확히 101가지였다. 그런 조건에 단 하나도 부합하지 않은 사람이 그 여자였다.


여자는 남자보다 더 했다. 조금 삐걱대긴 했지만 그 당시 여자에겐 젊고 유능한 남자 친구가 있었다. 멀쩡한 연인을 매몰차게 버리고 그보다 뭐 하나 나을 것 없는 부실한 노총각을 선택한 것 자체가 아이러니였다. 눈에 보이지 않는 그 어떤 힘이 작용하여 두 사람을 강제로 이어 붙인 게 아니라면 도저히 설명이 되지 않는 희한한 조합은 2003년 이른 봄 만들어졌다.


그 남자 아르웬과 그 여자 '버닝' 이여사의 전쟁은 그렇게 시작되었다.


어쩌다 우리 부부가 '자타가 공인하는 잘못된 만남'을 하게 된 것인지는 여전히 원인 파악이 안 된다. 한쪽이 일방적으로 목을 매고 달려든 것도 아니고(아내가 그랬다는 심증은 있지만....) 그렇다고 해서 둘이 첫눈에 반하는 드라마 속에서나 있을 법한 일도 없었다. 그저 한 공간에서 잠시 스쳤을 뿐이고 그게 인연이 되어 한두 번 만난 게 시작이었다.


남녀 관계란 눈이 뒤집힌 상태에서 만나도 시간이 흐름에 따라 애정이 식기 마련인데 당사자 둘 모두 시큰둥한 상태에서 시작을 했기에 애당초 'So sweet L.O.V.E' 따위는 없었다. 마치 드라마 <도깨비>에서 공유가 했던 "이제 저 둘은 서로가 서로에게 지옥이 되어줄 것이다."(아래 영상 참고)라는 대사처럼 우리 부부는 연애기간 내내 하루하루를 지옥의 문턱에 선 것처럼 싸웠다.


그도 그럴 것이 공통의 관심사도 없고 가치관이 일치하는 것도 아니며 어떤 현상에 대해서도 극과 극의 시각을 가진 우리 두 사람이었기에 다툼이 없을 수가 없었다. 각자 다른 환경에서 성장하여 나름의 주관이 확립된 세월이 30년, 구체적으로 나열해서 글을 쓰면 천일야화(아라비안 나이트) 정도는 가뿐히 넘어설 분량의 수많은 차이점을 갖고 있으니 둘 중 하나가 이해와 양보를 하지 않는 이상 충돌은 필연적이었다.


명절 연휴처럼 특수한 상황을 제외하고 3년이란 연애기간 동안 매일 만났던 우리는 1년 365일 중 300여 일을 싸웠다. 그나마 다행스럽게도 아침에 싸우면 저녁에 만나 화해하고 저녁에 싸우면 그다음 날 아침에 만나 화해하는 패턴이 이어지는 동안 냉전 상태를 길게 끌고 가지는 않았다. 이런 과정을 거쳐서인지 우리 부부는 지난 18년간 이혼 직전까지 가는 심각한 전쟁 한 번을 제외하고는 비교적 평화로운 결혼생활을 이어가고 있다.


얼마 전 우연히 연애 당시의 얘기가 나와서 아내에게 왜 나를 선택했느냐 물어본 적이 있다. 그런 말이 나올 때마다 항상 말없이 피하던 아내가 그날은 웬일인지 지나가듯 한마디를 던졌다.

"내가 뭔 짓을 해도 다 받아줄 거 같더라."


내 입장에서도 특별한 것은 없었다. 그저 나이에 맞지 않게 때 묻지 않은 순수함이 마음에 들었을 뿐이었다. 누군가를 바꾸고 가르치고 만들어나간다는 것이 얼마나 무모한 일인지 잘 알긴 했지만 이 사람을 잘만 다듬어 나가면 꽤 괜찮은 사람이 될 거라는 믿음이 내겐 있었다.

따지고 보면 두 사람 모두 남은 인생을 걸고 엄청난 도박을 한 셈이었다.


냉정하게 봤을 때 20년이 지난 현재 시점에도 우리 부부는 예전과 비교해 크게 달라진 점이 없다. 눈이 빠지게 교집합을 찾느라 분주하지만 아직도 티끌만큼의 공통분모도 찾지 못했다. 각자의 생각은 평행선을 달리고 있으며 여전히 안 맞아도 너무 안 맞는 생활을 하고 있다. 굳이 바뀐 것 하나만 찾으라면 상대 감정의 변화를 알아채는 눈치가 생겼다는 점이다.


얼마 전 부부의 날에도 그랬다. 그 무렵 아내의 몸과 마음은 눈에 보일 만큼 지쳐 있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딸아이는 학급 평균 점수 하락의 일등 공신이 된 성적표를 들고 와 아내의 심기를 더더욱 불편하게 만들었다. 큰 의미를 둘 만큼 대단한 날은 아니었지만 서둘러 진화를 해야 한다는 생각에 퇴근길에 꽃집에 들러 꽃을 샀다.


단골 꽃집 여사장님의 과잉 친절이 부른 참사, 저런 멘트를 어찌 그리 자연스럽게 쓰시던지


비교를 하고 싶진 않지만 주변의 다른 부부들 중에 유난히 호흡이 잘 맞는 부부들을 볼 때가 있다. 한 때는 그런 부부들을 부러워했던 것도 사실이다. 나란히 앉아 커피 한 잔과 함께 책을 읽으며 책에 대한 토론을 하거나 나의 기타 반주에 맞춰 아내가 노래를 부르는 장면을 꿈꾼 적도 있다. 결혼을 하면 아내와 손잡고 유기견 보호센터에 가서 봉사활동을 하리라 마음먹은 적도 있다. 그런데 이 모든 것이 불가능한 여자를 만났다.


사람들은 흔히 부부관계를 '결합'이라는 관점에 중점을 두지만 나는 부부생활이라 함은 그보다는 펼쳐진 백지에 어울리는 조각을 각자 맞춰 나가며 원하는 그림을 완성하는 퍼즐과 같다고 생각한다. 처음부터 완제품에 가까운 퍼즐을 들고 시작하는 부부는 쉽게 조각들을 맞춰나갈 것이고 또 어떤 부부는 실수와 실패를 반복하며 어렵게 조각을 맞춰나갈 수도 있을 것이다. 평생 완성하지 못하고 생을 마감하는 부부도 있을 것이고 너무 이른 시기에 퍼즐을 완성한 후 다른 곳에 눈길을 주다가 완성된 그림마저 무너뜨리는 부부도 있을 것이다.


최근 들어 마음을 많이 비웠다. 나이가 들면서 생긴 변화인지 모르겠지만 조금은 넓은 아량으로 모든 것을 받아들이기로 마음먹었다. 우리 부부는 다른 부부에 비해 좀 더 큰 종이를 받았을 뿐이고 맞춰야 할 조각들이 남들보다 몇백 배 정도 많을 뿐이라 생각하니 마음이 편했다. 비록 먼 길을 돌아 순탄치 않은 과정 속에 살고 있으며 앞으로도 그럴 가능성이 높겠지만 희망을 잃지 않고 끝까지 도전을 해볼 생각이다.  

까짓 거 그림 완성 못하면 어떤가. 최선을 다 해 살았으면 그걸로 된 거지.




그래도 가끔은 우리 부부를 강제 합체시킨 (것으로 추정되는) 도깨비(또는 큐피드)가 원망스러울 때가 있긴 하다. 딸랑 101가지 조건 밖에 없었는데 잘 좀 엮어주셨으면 좋았을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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