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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르웬 Jul 13. 2022

아 글쎄, 아내가 땀을 흘렸다네

북극곰과 사막여우의 만남, 과연 그 결과는?

본격적인 더위가 시작된 것도 아닌데 땀을 많이 흘렸다는 아내의 말을 들으니 사람 체질이 이렇게 바뀔 수도 있는 건가 싶다. 적어도 내가 아는 아내는 땀을 흘리는 사람이 아니었다. 물론 인간인 이상 땀을 흘리지 않고 어찌 살 수 있겠냐만 육안으로 보기에 확연히 티가 날 정도로 폭포수를 쏟아내는 나와 달리 아내는 불과 몇 년 전까지만 해도 한여름 폭염에도 그 흔한 '이마에 맺히는 땀방울'조차 보기 힘든 사람이었다. 함께 하는 시간이 길어지면 체질도 서로 닮아가는 것일까?


20년 전 지금의 아내를 만난 후 처음 영화관을 갔을 때였다. 주말이라 꽤 많은 사람들이 좁은 공간에 있어서인지 늦은 봄임에도 실내가 꽤 답답했던 날이었다. 특히 나처럼 더위에 기겁을 하는 몇몇 사람은 이미 호흡곤란에 가까울 정도의 갑갑함을 호소했고 극장 측에서도 그런 분위기를 감지했는지 영화가 시작되자마자 에어컨을 가동하기 시작했다.


"헉!!"

짧은 신음소리와 함께 아내는 벗어 놓았던 얇은 잠바를 급히 꺼내 입었지만 그걸로는 부족했던지 잔뜩 몸을 웅크린 채 오들오들 떨기만 했다. 그 모습을 본 나는 일말의 의심도 없이 연애 초기에 극히 일부의 여자들만 구사한다는 고도의 전술인 '보호본능 유발형' 연기를 펼치는 거라 생각했다. 비록 모태 솔로로 자라 연애경험은 전무했으나 다년간 다져온 풍부한 이론에 비춰볼 때 눈에 뻔히 보이는 수작이라고 봤던 거다.


괜찮냐고 한 번쯤 물어볼 만도 했으나 이미 생각이 한쪽으로 기울어진 상태였으니 모든 게 옳게 보일 리가 없었다. 못 본 척 외면하고 영화감상에 집중하며 언제까지 쇼를 하는가 지켜보겠다는 심산(心算)으로 힐끗 쳐다 보기를 몇 차례쯤 했을 때였다. 단순히 연기로 치부하기엔 뭔가 심상치 않다는 느낌이 들 만큼 아내는 힘들어하는 모습이 역력했다. 겉으로 드러난 모양새만 놓고 보면 흡사 영하 20℃ 이하 냉동창고에 갇혀 사경을 헤매는 것 같은 착각이 들 정도였다.


급히 갖고 있던 잠바를 던져(?) 주었다. 드라마에서 보는 것처럼 다정한 목소리로 "자기, 많이 춥지? 이거라도 덮어봐. 진작 챙겼어야 했는데 미안해."라는 달달한 멘트와 함께라면 더할 나위 없이 좋았겠지만 오리지널 경상도 남자인 내게서 그런 따뜻한 말이 나올 리 만무했다. 기껏 머리를 굴려 꺼낸 말이 분위기 깨기 딱 좋은 저렴하기 이를 데 없는 표현이었다. "앗따, 이거 갖고 있을라 카이 더럽게 걸리적거리네. 니가 좀 들고 있어라." 


아내는 마치 구세주라도 만난 것처럼 허겁지겁 내 잠바로 몸을 감쌌고 영화를 보는 내내 옷을 뒤집어쓴 채 눈만 빼꼼히 내놓고 있었다. 대부분의 여자들이 체질상 추위를 많이 탄다는 것은 어느 정도 알고 있었지만 그 정도로 추위를 많이 타는 여자가 있으리라곤 상상하지 못했던 나는 그 일이 있은 후부터 휴대용 담요와 얇은 바람막이 잠바를 항상 차 트렁크에 넣고 다녀야만 했다.


이처럼 추위에 약한 아내는 반대로 더위에는 무척 강했다. 아내 기준에서의 여름은 아이들이 방학을 하는 7월 말에서 광복절이 끼어 있는 8월 중순까지 길게 잡아 한 달 남짓이었고 그마저도 폭염주의보가 내릴 정도는 되어야 땀을 흘릴까 말까 심각한 고민을 하는 수준이었다. 


그에 비해 나는 웬만해선 추위를 느끼지 않는 사람이었다. 살을 에는 듯한 칼바람이 부는 곳에서 30년 넘게 겨울을 보내서 단련이 되기도 했고 이후 상대적으로 포근한 남쪽 지방으로 이주해서 살게 된 것도 한몫했지만 가장 큰 이유는 무엇보다도 젊은 시절에 비해 훨씬 풍부해진 좌우 성장형 지방질 몸매 덕분이었다. 이런 비대한 몸뚱이를 갖고 있으니 여름에는 제대로 힘을 못 쓸 정도로 취약한 게 당연했다.


이렇게 기온과 계절에 대한 반응이 극과 극인 두 사람이 함께 살게 되었으니 지난 20여 년간 사소한 충돌은 불가피했다. 나는 5월만 되면 선풍기는 기본이고 여차하면 에어컨 가동까지 호시탐탐 노렸고 아내는 10월에 들어서면 본격적으로 보일러를 가동했다. 웬만해선 씻을 때 찬물로 해결하는 나와 달리 아내는 한여름에도 펄펄 끓는 온수를 썼다. 


옷을 입는 것도 마찬가지였다. 나는 4월 초만 지나면 반팔을 꺼내 입었고 10월 중순쯤이 되어서야 얇은 바람막이 잠바를 꺼내서 본격적인 겨울이 시작되는 12월까지 입는 반면 아내는 혹서기 무렵에만 잠시 반팔 옷을 입을 뿐 그 외에는 늘 긴 팔을 고집했었다. 10월이면 월동준비가 시작되는 것은 기본이고 11월에 접어들면 어김없이 두터운 겨울 외투를 꺼내 이듬해 3월 말까지 거의 5개월가량을 입었다.



띄어쓰기가 눈에 걸리는 나는야 브런치 작가


그런 아내가 예년보다 한 달 정도 빠른 시기에 땀을 많이 흘렸다는 소식을 전하니 그게 그토록 반가울 수가 없었다. 20년 가까이 살면서 서로 다른 성향을 이해하지 못해 사소한 문제에도 충돌을 하던 우리였지만 그중에서 가장 좁히기 힘든 것이 더위와 추위를 나누는 시각의 차이였다. 한쪽이 살 만하면 다른 한쪽은 얼어 죽고 한 사람이 쪄 죽을 것 같을 때 나머지 한 사람은 세상 살기 좋은 온도라 생각하니 '가까이 하기엔 너무 먼 당신'이란 우리를 지칭하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까지 한 적도 있었다.


사실, 아내가 땀을 흘리기 시작한 것처럼 내게도 작은 변화가 있긴 했다. 몇 년 전부터 여름에 샤워를 할 때 찬물을 쓰지 못할 정도로 추위를 느끼기 시작한 것이다. 그나마 아직까지 아내처럼 펄펄 끓는 온수를 쓰는 수준은 아니지만 어느 순간부터 미지근한 물을 선호하게 되면서 추위를 타는 아내가 조금씩 이해가 되었다. 물론 서로의 장점을 흡수하며 시너지 효과를 내는 닮음이었다면 더할 나위 없이 좋았겠지만 아내 말처럼 이렇게 나쁜 것만 닮아가는 하향 평준화를 통해서라도 서로를 이해하는 계기가 마련된다면 그 또한 부부 생활에 있어 긍정적인 신호라 생각한다. 


오랜 시간 동안 '부부는 닮는다'라는 말을 믿지 않았다. 적어도 우리 부부에게는 통하지 않는 상상 속의 표현이라 생각하며 살았고 우리 사이에는 절대 무너지지 않는 크고 견고한 벽이 있다는 생각을 하기도 했다. 최근 들어 그 높고 두터운 벽에 작은 균열이 보이기 시작했다. 부디 아내가 흘리는 땀방울이 그 균열의 촉매제 역할을 해줬으면 하는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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