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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르웬 Jun 25. 2022

이대로 너를 보낼 수는 없단다

아내는 신고하고, 나는 감금(?)하고

대단한 감투는 아니지만 '아동 안전 지킴이집' 활동을 한 지 14년째다. 24시간 영업이라는 특수성 때문에 거의 대부분의 편의점이 활동을 하고 있고 나도 그중 하나일 뿐이지만 가끔은 방송을 통해 아동학대가 의심되는 아이를 보호한다든가 길 잃은 아이를 부모의 품으로 무사히 돌려보내는 등 편의점에 관련된 훈훈한 소식이 들려올 때면 경찰청에서 시행하고 있는 이 제도가 꽤 성공적으로 자리 잡는 것 같아 뿌듯함을 느낀다.


꽤 오래되긴 했지만 나도 비슷한 경험을 한 적이 있다. 아내가 딸아이 손을 잡고 퇴근했던 것으로 보아 2000년대 말쯤으로 기억된다. 여느 때처럼 밤늦게 출근을 했는데 시식대에 초등학교 3학년쯤으로 보이는 아이 하나가 앉아 있는 게 보였다. 자정이 다 된 시각에 아이 혼자 있는 게 흔히 있는 일은 아니라 의아해하던 차에 아내가 먼저 말을 꺼냈다.

"오빠, 쟤 아무래도 집 나온 거 같은데 잘 좀 지켜봐. 내가 물어봤는데 대답을 제대로 안 해."


너무 늦은 시각이라 일단 아내와 딸아이를 집으로 보내고 한참 동안 지켜보기만 했다. 라면을 다 먹은 지 오래됐음에도 아이는 넋이 나간 표정으로 물끄러미 창밖만 바라보고 있었다. 시계를 보니 이미 자정은 넘어섰고 누군가를 기다리고 있는 것 같지도 않아 조심스럽게 아이에게 다가가 눈높이를 맞추고 대화를 시도했다.


"지금 누구 기다리는 거야?"

아이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너 여기 있는 거 엄마, 아빠는 알고 계시고?"

아무 말 없이 또다시 고개를 좌우로 흔드는 것을 보고 뭔가 문제가 있음을 직감했다.


"너 이 시간에 여기 있으면 안 되는데. 집은 어디야?"

"OO 아파트요."

"별로 멀지 않네. 이렇게 늦은 시간까지 집에 안 들어가면 부모님 걱정하시잖아. 집에 얼른 가야지."

"가고 싶은데 엄마가 집에 들어오지 말라고......."


급기야 울음을 터뜨리는 아이를 가까스로 달래고 어떻게 된 일인지 물어봤다. 이야기하는 내내 울음이 뒤섞여 자세한 내막은 알 수 없었으나 모든 걸 종합해보니 뭔가 잘못을 한 아이에게 엄마가 홧김에 집에서 나가라고 한 것이 분명했다. 무작정 자전거를 끌고 나온 아이는 몇 시간을 방황하다가 허기진 배를 채우기 위해 우리 가게를 찾았고 라면 하나를 다 먹고도 집에 갈 엄두를 못 내고 있었던 것이었다. 


어떻게든 해결을 해야 하는데 마땅한 해결방법이 떠오르지 않았다. 맘 같아선 당장 가게 문을 잠그고 아이를 데려다주고 싶었지만 걸어서 왕복하기엔 꽤 먼 거리라 그 시간에 급한 손님이라도 오면 어김없이 '고객의 소리'에 접수가 될 것이고 그렇다고 차에 태워서 이동을 하자니 아이가 타고 온 자전거가 있어 그럴 수도 없었다. 결국 경찰을 불러서 해결해야겠다 싶어 아이에게 말을 꺼냈더니 아이는 경찰이란 말에 기겁을 하고 도망을 가려해 대놓고 경찰을 부를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한참 고민 끝에 아이 몰래 아내에게 경찰에 신고하라는 문자를 보냈다. 그 와중에도 아이는 계속해서 가방을 챙겨 밖으로 나가려고 했다. 모르는 척 내버려 둘 수도 있었지만 인적이 드문 새벽 거리를 아이 혼자 돌아다니게 할 수는 없는 문제였다. 그런 일이 생겨서는 안 되겠지만 행여 사고가 발생하면 법적으로는 책임이 없을지 몰라도 도의적인 책임에서는 결코 자유로울 수 없다는 생각에 필사적으로 문을 막고 섰다. 


1분이 1시간처럼 느껴질 정도로 답답한 시간의 흐름 속에 얼마 후 출입문 너머로 정차를 하는 경찰차가 보였다. 출동한 경찰에게 대충 상황을 설명하고 아이가 집에 가서 심하게 꾸중을 듣지 않도록 부모님께 잘 말씀드려달라는 부탁과 함께 아이가 잘 도착했는지 여부를 알려달라고 했다.


30여 분의 시간이 지나고 경찰로부터 전화가 걸려왔다. 아이는 무사히 집에 잘 도착했고 부모님께도 아이에게 너무 심한 꾸중을 하지 말 것을 당부했다는 소식에 안도의 한숨이 터져 나왔다. 집에 들어간 아이가 눈물의 모자 상봉을 했는지 또다시 매 찜질을 당했는지는 알 수 없지만 집에 들어갔다는 사실만으로도 다행이다 싶었다.


어린 시절 누구나 한 번쯤은 가출을 경험했을 것이다. 그게 자의든 타의에 의해서든. 나 또한 열 살쯤 되던 해에 집 밖으로 쫓겨난 기억이 있다. 단지 어머니께 말하지 않고 친구들과 낚시를 갔다는 이유에서였다. 봄이라 하기에는 너무도 추웠던 3월 초 어느 밤, 나는 그날을 아직도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다. 겨우 속옷만 걸친 채 늦은 밤까지 문 앞에 서서 지나가는 사람들의 시선을 온몸으로 받아야 했던 그 부끄러움을 나는 여전히 잊지 못하고 있다.


지금 기준에선 아동학대에 가까웠던 그 기억 때문인지 나는 집안에서 일어난 일은 집안에서 해결해야 한다는 생각이 강하다. 지금도 가끔 아내는 아이에게 꼴 보기 싫으니 당장 나가라는 말을 자주 한다. 그럴 때마다 나는 아내에게 아무리 화가 나도 그런 말을 쉽게 해선 안 된다며 나무란다. 


한순간의 감정을 다스리지 못한 결과는 뻔하다. 아이에겐 순간적으로 공포가 되고 더 나아가서는 트라우마로 자리 잡게 된다. 그렇게 한다고 해서 별 도움이 안 되는 건 엄마 입장에서도 마찬가지다. 걱정스러운 마음에 아무것도 하지 못할 게 분명하고 시간이 갈수록 남는 건 후회밖에 없다.


다행스럽게도 14년 동안 '아동 안전 지킴이'라는 직책을 맡으며 활동다운 활동을 한 것은 앞서 언급한 한번뿐이다. 그게 10년도 넘은 일이니 오랜 시간 하는 일 없이 명부에 이름만 올려놓고 있는 셈이다. 이 일을 언제까지 할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내가 장사를 그만두는 날까지 부디 특별한 사건사고 없이 그저 명예직으로 활동을 마쳤으면 하는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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