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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르웬 Nov 27. 2022

<短 둘> 소심한 복수

청출어람 청어람

만만치 않은 비용 때문에 참고 또 참다가 인내심에 한계를 보여 그만 저지르고 말았다. 명목상으로는 내셔널지오그래픽을 보기 위해 결제한 거라 가족들에게 말했지만 두 여자 모두 내 말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지 않는 표정이었다.


특히 딸아이는 누굴 닮아서인지 이럴 때 그냥 넘어가는 법이 없었다.

"웃기고 있네. 마블이랑 스타워즈 보려고 결제한 거 다 알아."

어벤저스 엔드게임을 보러 가서도 3시간 내내 잠만 자고 나온 딸아이는 내심 티빙이나 웨이브를 기대하고 있었던 탓인지 적지 않게 실망하는 눈치였다.


그렇다고 순순히 물러나거나 아이에게 미안한 감정을 가질 내가 아니지. 그 말을 듣는 순간 당장 설정에 들어가서 프로필 사진과 닉네임을 바꿔 버렸다. 뒤늦게 그걸 확인한 딸아이는 세상에서 딸을 잡아먹지 못해 안달 난 아빠가 어디 있며 대성통곡을 했다고 한다.


이 자리를 통해 딸아이가 꼭 알았으면 하는 점이 있다. 

"이봐, 딸!! 너는 바른 말하는 것까진 좋은데 눈치 없는 네 엄마를 닮아서 시도 때도 없이 난사하는 버릇이 있어. 난 팩트 폭격을 하더라도 때와 장소를 가려 가며 하는데 넌 그게 안되잖아. 집에서는 어떻게 해도 상관없는데 제발 밖에서는 그러지 마. 잘못하면 왕따 당하거나 몰매 맞아."

이 또한 딸아이 교육 차원에서 했다고 말하면 너무 거창한 것일까?


문득 스타워즈에 나온 다스베이더의 대사가 생각난다.

"I'm your father."

부디 딸아이가 적어도 인간관계에 있어서만큼은 어둠의 포스가 강한 나를 닮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인데 돌아가는 꼴을 보면 시간이 지날수록 나를 능가할 것 같아 그게 걱정이다. 제발 딸아이가 포스의 균형을 맞추는 사람이 되기를 빌고 또 빌어 본다.



오래전부터 구상하고 있던 매거진입니다.
유튜브 쇼츠 영상처럼 짧은 분량 속에 강렬한 한 방을 추구하기에
때로는 소개글보다 더 짧을 가능성도 있지만 발행 글 숫자 늘리려는 수작이라 오해하시면 안 됩니다.
대부분 페이스북에 올렸던 글이며 가볍게 읽고 피식 웃을 수 있는 글 위주로 쓰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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