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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르웬 Feb 25. 2021

로또 같은 아내요? 할 말 많습니다만

20년째 공통분모를 찾는 부부

"아니, 그렇게 안 맞으면서 왜 아직까지 같이 살아요?"

가끔 누군가에게 아내에 대한 불만을 털어놓으면 한결같이 그렇게 묻곤 한다. 솔직히 내가 왜 아내와 아직까지 함께 살고 있는지 그 이유는 잘 모르겠다. 내가 선택한 사람에 대한 책임감일 수도 있겠고 극히 일부이긴 하지만 일종의 오기 같은 것이 작용하는 것 같기도 하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아내에 대한 애정이 기본적인 바탕에 깔려 있다는 것만은 확실하다.


대부분의 부부들이 그렇듯 우리 부부도 연애기간 포함해서 신혼 초에는 충돌이 일상처럼 느껴질 정도로 잦은 마찰이 있었다. 연애기간 2년 동안 '스트리트 파이터'로 불릴 만큼 자주 다투고 다시는 안 볼 사람처럼 헤어짐과 만남을 반복하기도 했지만 결혼 후 같은 공간에 살면서 수시로 일어나는 전쟁 같은 싸움에 비하면 그것은 미미한 수준에 불과했다.


한번씩 심하게 다투는 날이면 '내가 어쩌다 당신 같은 사람을 만났는지 모르겠다'는 이야기도 했고 심지어 상대방을 향해 '절대 이 세상에 태어나서는 안될 인간'이라는 막말까지 서슴지 않았다. 만약 그때 서로의 가족까지 끌어들이는 전면전이 벌어졌다면 나는 지금 17년 차 돌싱남의 위치에서 이 글을 쓰고 있을지도 모를 일이다.


처음 로또 같은 남편, 로또 같은 아내라는 표현을 접했을 때엔 그 숨은 뜻을 모르고 도대체 사람들은 어떤 배우자를 만났길래 인생역전과도 같은 그런 표현까지 썼을까 내심 궁금했었다. 얼마 후 그게 일종의 반어법이라는 것을 알았을 때엔 나만 그렇게 사는 게 아니라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긴 했지만 그전까지는 하마터면 배가 아파 죽을 뻔했다. 


아내와 나는 그 흔한 공동의 관심사가 전혀 없다. 첫 만남의 시간부터 어떻게 인연이 이어졌고 또 어떻게 지금까지 함께 하고 있는지 미스터리이자 불가사의다. 남들처럼 불같은 사랑과 연애를 하지도 않았고 데이트를 하고 헤어질 때도 좀 더 함께 하지 못함을 아쉬워했던 기억이 없다. 공동의 관심사가 없다 보니 데이트를 할 때도 누군가 한 사람이 일방적으로 주도하고 나머지 한 사람은 그저 끌려 다니며 상대방의 기분을 맞춰 주는 일이 다반사였다.


오랜 세월이 흘렀지만 여전히 우리 부부는 함께 뭔가를 하는 일이 드물다. 내가 하는 일의 특수성으로 인한 요인도 한몫하겠지만 그보다는 근본적으로 성향의 차이에서 오는 원인이 가장 크다. 가끔, 부부가 같이 등산을 한다든가 배드민턴이나 테니스 같은 운동이나 다양한 취미 생활을 함께 하는 부부를 볼 때면 그저 신기하고 부러울 따름이다. 


인생을 살아가는 방법이나 추구하는 가치는 물론이고 기본적인 생활 패턴마저도 완전히 정반대인 사람과 함께 하다 보니 여전히 우리 부부는 많은 부분에서 의견 조율이 쉽지 않다. 횟수가 줄어들었을 뿐 다투는 일도 많다. 다만, 오랜 세월 함께하며 터득한 경험으로 연애 때나 신혼 시절처럼 날 선 칼날을 주고받는 소모적인 검술의 향연 대신 고도의 경지에 이른 심검(心劍)과 같은 눈에 보이지 않는 검술을 주고받을 뿐이다.

심검 : 굳이 검을 쓰지 않아도 내공으로 형성된 무형의 검이나 검기가 상대방을 벤다는 무협 소설 속에 나오는 극강의 검술 중 하나 (출처 : 나무 위키 일부 발췌)


잘 어울리지 않는 관계를 흔히 물과 기름 같은 사이라고 한다. 우리 부부는 물과 기름의 관계를 넘어 만나기만 하면 폭발하는 멘토스와 콜라같은 관계에 가깝다. 적어도 물과 기름은 섞이지 않을 뿐 한 공간에 담아둘 수는 있지만 우리 부부는 그렇지 못할 때가 많다.


부부 관계는 물리적인 결합이 아닌 화학적인 결합이라는 말이 있다. 표면적으로 보이는 단순한 합체가 아니라 오랜 시간 전혀 다르게 살아온 두 개의 문화가 서로 흡수 또는 보완 등 다양한 과정을 거치며 새로운 문화를 만들어 내는 것을 뜻함이다. 그런 관점에서 보자면 우리 부부는 아직까지는 진정한 부부라고 할 수가 없다.


어쩌면 영원히 만날 수 없는 두 개의 평행선을 나란히 달리고 있는 우리 두 사람의 미래는 어떤 모습일까? 뭔가 잘못이 있다면 그 시작은 어디서부터였을까? 기회가 된다면 꼭 그 이야기를 해보고 싶었다. 앞으로의 글은 50대 초반 남편의 입장에서 쓰는 지극히 주관적인 시선의 반성문이자 회고록이 될 것이다. 희로애락의 감정이 고스란히 들어있는 날 것 그대로의 글을 통해 우리처럼 살고 있는 부부도 있음을 말하고 싶다. 


'부부 지침서'라든가 '이 부부가 사는 법' 같은 거창한 타이틀을 달고 싶은 생각은 없다. 다만, 앞으로의 글을 통해 결혼을 준비 중인 예비부부나 관계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부부가 배우자에 대해 한 번 더 생각할 수 있는 계기가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 있을 뿐이다.


미리 말하는데 '달라도 너무 다른 부부'라는 종목이 올림픽에 정식종목으로 채택된다면 우리 부부는 출전과 동시에 금메달은 따놓은 당상이라 말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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