꽝손 아내에게 이런 일이.....
공짜 치킨에 대한 미련이었는지 S전자 주식을 받지 못한 아쉬움 때문이었는지는 모르겠다. 자타가 공인하는 꽝손인 아내에게까지 도움을 요청한 것을 보면 그 당시 나는 판단력을 상실했던 게 분명하다.
“당신, 토스 깔려 있지? 이번에 거기서 무료 주식 이벤트 하는데 한 번 해봐. 비대면으로 계좌 개설하면 주식 하나 주거든. 계좌만 만들어놓고 사용 안 해도 돼. 별로 기대는 안 하지만 운이 좋으면 몇만 원에서 몇 십만 원 정도 되는 우량주를 받을 수도 있어.”
버럭 소리를 지르면 어쩌나 우려를 했던 내 예상과는 달리 아내는 별말 없이 계좌를 개설했고 이내 무료 주식 1주를 받았다. 아내가 받은 주식은 대한전선. '그럼 그렇지. 우리 복에 무슨 대형주, 우량주란 말인가.' 주식의 신은 끝내 우리 부부를 외면했다.
“내 그럴 줄 알았다. 하여간에 꽝손계의 탑이야. 대한전선이 뭐고?”
“그러는 당신은 뭐 받았는데?”
“나? 나는 S전자 받았지.”
“진짜? 어디 한 번 보여줘 봐.”
“S전자이긴 한데 좀 작은 스몰 S야. 라지 사이즈가 아닌 스몰 사이즈. 신일 전자라고 저~~ 기 다용도실에서 쉬고 계시는 선풍기 만드는 회사.”
“그건 얼만데?”
“글쎄, 1,800원 정도 되려나?”
“하이고, 난 또 몇만 원짜리는 되는 줄 알았네. 그거나 이거나 별 차이도 없구먼.”
아내의 말은 틀리지 않았다. 처음 주식을 받은 시점에서 내가 받은 신일 전자의 주가는 1,800원대였고 아내가 받은 대한전선은 1,200원대였으니 어느 것이 더 낫다고 할 수 없을 만큼 도토리 키재기, 난형난제 수준이었다. 둘을 합쳐도 겨우 3,000원 정도였으니 치킨은 고사하고 10개짜리 계란 한 판을 사기에도 부족한 금액이었다. 아마도 이 가격이 한동안 지속되었다면 내가 주식판에 뛰어들 일은 절대 없었을 것이다.
한바탕 해프닝이 지나간 후 우리 부부는 다시 평범한 일상으로 돌아왔다. 역시 주식이란 하늘이 허락한 사람들만이 할 수 있는 영역이라 생각했다. 주식에 대해선 까맣게 잊고 하루 12시간의 고강도 근무가 이어지던 어느 날 아침 휴대폰에서 알림음이 울렸다. 또 코로나 관련 문자려니 생각하고 무심결에 확인한 문자를 보는 순간 꺼진 줄 알았던 내 마음속 불씨가 되살아났다.
대한전선 주식 가격이 오르고 있어요
올라봐야 얼마나 올랐겠나 싶은 생각에 건성으로 열어본 화면에는 놀라운 숫자가 찍혀 있었다. 1,200원대의 주식이 2,000원을 돌파하고 있는 것이었다. 내가 가진 종목과 같은 2,000원대였지만 체감상 그 느낌이 달랐다. 부랴부랴 아내에게 메시지를 보냈다.
"당신, 문자 안 왔어? 지금 당신 갖고 있는 주식이 2배 가까이 뛰었어."
호들갑을 떠는 내 말에도 불구하고 아내는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 분명 확인을 했을 텐데 답이 없으니 오히려 속이 타는 건 나였다. 당장에라도 증권 계좌에 돈을 넣고 주식을 사야 하나 말아야 하나 고민이 시작되었다.
한참의 시간이 흐른 후 아내로부터 답이 왔다.
"그래서? (주식)하려고? 남들 하는 거 보면 해보는 것도 괜찮을 같기도 한데...... 돈 잃었다는 사람들 보면 안 하는 게 맞는 것 같기도 하고....."
"이번 달 결산해보니깐 딱 50만 원이 남는데 이것만 해볼게. 우리 형편에 몇천만 원 때려 붓고 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50만 원 정도 없는 셈 치고 한 번 해보면 안 될까?"
"알아서 해. 언제부터 나한테 물어보고 했다고."
말은 그렇게 했지만 나는 아내의 속마음을 안다. 통이 크고 지출에 꼼꼼하지 못한 자신과는 달리 이제까지 살아오면서 헛돈을 쓴 적이 없는 사람이기에 적어도 돈 문제에 관해서는 100% 나를 신뢰한다는 것을.
살다 보니 아내가 이벤트에서 나보다 나은 결과를 얻는 모습을 그때 처음 보게 되었다. 로또 복권을 구매해도 당첨은 뒷문제고 번호 하나 맞히는 걸 본 적도 없고 수많은 경품 추첨에서도 늘 낙첨만 하던 사람인데... 그래도 아내가 오랜만에 내게 큰소리를 치는 걸 보니 괜히 기분이 좋아졌다.
운명의 그날 5월 31일, 나는 증권 계좌에 50만 원을 이체하고 본격적으로 참전을 선언했다. 호반 산업의 대한전선 인수 합병 소식이 전해지면서 상승세를 타기 시작한 아내의 종목은 이미 내가 가진 주식의 가격을 넘어 서고 있었다. 주식에 대해선 아는 것이 전혀 없는 문외한 입장이라 무엇부터 해야 할지 모르던 나는 일단 아내와 내가 갖고 있던 종목을 소량 매수하고 지켜보기로 마음먹었다.
모 온라인 쇼핑몰에 주문을 하면 특이하게도 '아르웬 님(필명)의 주문번호 20000XXXXX은 OO 마켓 서버에 성공적 역사로 기록될 것입니다.'라는 메시지가 온다. 과연 2021년 5월 31일은 내 인생의 성공적 역사, 획기적인 전환점으로 기록될 것인지 아니면 다시는 기억하고 싶지 않은 흑역사의 시작점으로 기록될 것인지 모르겠다. 그런 불확실한 미래와는 달리 이미 내 마음은 온통 핑크빛으로 물들어 가고 있는데 말이다.
본문에 언급되는 종목들은 실제 제가 거래를 했던 종목일 뿐, 종목 추천과는 무관함을 알려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