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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르웬 Nov 02. 2021

주식, 이거 너무 쉬운 거 아닙니까?

초보의 행운인가, 주식 신동의 탄생인가

종잣돈 50만 원으로 할 수 있는 것은 거의 없다

산골 오지에서 나고 자란 아이가 난생처음 저금통을 털어 대형마트에 간다면 어떤 기분일까? 눈이 휘둥그레질 정도로 많은 상품들 중에서 뭘 사야 할지 전혀 갈피를 잡지 못하고 사고 싶은 물건은 넘치는 데 비해 가진 돈은 거의 없는 상황을 맞이한다면? 적절한 비유가 될지는 모르겠지만 처음 주식판에 뛰어들었을 때의 내 심정이 꼭 그러했다.


아마 처음 주식에 입문한 사람들 대부분은 흔히 말하는 대형주, 우량주에 먼저 눈길이 갈 것이다. 삼성전자, 현대자동차, 네이버 등등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누구나 한 번쯤은 들어봤을 그런 주식들 말이다. 당연히 나도 처음엔 그랬다. 하지만 그런 종목들의 1주당 가격은 나 같은 (웬만한 개미보다도 못한) 벼룩 투자자가 감히 넘볼 수도 없는 수준이었다. 이미 대한전선과 신일전자에 일부 금액을 투자했기에 50만 원도 되지 않는 금액으로 의미 있는 수량을 사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했고 심지어 어떤 종목은 아예 그 돈으로는 1주도 살 수 없을 정도로 가격이 높았다. 결국 투자금의 한계에 부딪힌 나는 속칭 동전주(1주당 가격이 천 원 미만인) 위주로 매수를 할 수밖에 없었다.


돌이켜보면 정말 무모한 짓이었다. 차트나 캔들이 뭔지 모르는 건 고사하고 코스피, 코스닥 지수가 뭘 의미하는지도 모르고 단순하게 가격에 맞춰서 이것저것 닥치는 대로 매수를 하다니 전형적인 초보의 모습에서 한 치도 벗어나지 않았다. 마트나 시장에 장을 보러 가도 그렇게 하지는 않을 텐데 시간에 쫓긴 듯 뭐 그리 급하게 허겁지겁 주워 담았는지 평소 내 모습으로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었다. 그렇게 50만 원 가까운 돈을 모조리 주식에 넣어두고는 그냥 기다리기만 했다. 내가 가진 모든 종목이 대한전선처럼 단시간에 2배 가까이 뛸 것이라는 희망에 부푼 채.


내가 워런 버핏인 줄 알았어

주식 격언 중에 '계란을 한 바구니에 담지 말라.'는 말이 있다. 어떤 종목이 오르고 또 어떤 종목이 떨어질지 알 수 없는 불확실성 속에서 여러 종목에 분산투자를 해서 투자금의 일부 또는 전부를 한 방에 날려버리는 위험에 대비하라는 정도로 이해하면 되겠다. 어디서 주워들은 것은 있어서 처음엔 나도 그 비슷한 흉내를 냈었다. 얼마 되지도 않은 돈을 쪼개 대여섯 종목에  분산투자를 해서 나름 위험에 대비한 것이다.


그 모든 계란이 황금알까지는 안되더라도 14K 도금 계란이 되기까지는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마치 밭에서 자라는 작물들이 어느 정도 자라면 잘라먹듯이 일정한 수익권에 도달하면 조금씩 매도를 하며 수익을 실현해나가다 보니 월말을 앞둔 어느 날 실현 수익금은 이미 5만 원을 넘어서고 있었다. 주식에 입문을 한 지 20여 일 만에 50만 원 투자에 5만 원 수익이라니, 그것도 내가 가진 모든 종목이 고르게 수익을 가져오는 결과를 보니 사람들이 이렇게 쉬운 것을 왜 제대로 못해서 깡통계좌가 되었다느니 빚더미에 앉았다느니 하는 것인지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블로그에 일상 이야기를 포스팅하며 이 이야기를 했더니 블로그 이웃분께서 댓글을 달아주셨다.

"형님, 그걸 두고 초심자의 행운이라고 하는 겁니다. 다들 처음엔 그러다가 얼마 안 가서 크게 잃곤 하죠."

"정말 그렇게 생각해요? 어디 한번 두고 봅시다."

이미 기고만장, 자신만만했던 내게 그런 댓글이 눈에 들어올 리 없었다. 나는 분명 종목을 찾아내는 눈이 타고났으며 기가 막히게 저점에서 매수를 하는 엄청난 감각을 갖고 있는 거라 생각했다.


'한 달에 10%의 수익이다. 5천만 원을 투자하면 한 달에 5백만 원을 버는 것이 된다. 얼마 되지 않은 정기예금을 해지하고 본격적으로 해야 하나? 그렇게 되면 이렇게 고생 고생하면서 일을 하지 않아도 손쉽게 지금 내가 버는 수입보다 더 벌 수도 있을 텐데.' 머릿속에는 온통 그 생각뿐이었다. 딱히 뭔가를 하지도 않고 손가락 몇 번 놀려 몇 종목 매수를 한 후 잠시 기다리기만 했을 뿐인데 이 정도면 일정 시간 집중해서 공부하고 투자를 하면 20% 정도는 우습게 벌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이 추세대로 나가면 중대형 아파트는 힘들어도 연말쯤 수입차 한 대는 뽑을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몇 년 투자해서 꾸준히 수익을 내면 꿈에 그리던 '이른 은퇴'가 가능할 것이고 그때부터는 사랑하는(???) 아내와 남은 인생을 여유 있게, 행복하게 살 수 있을 것 같았다. 물 맑고 공기 좋은 곳에 아름다운 집을 짓고 잔디 위에 놓인 테이블 위에서 향이 진한 커피 한 잔과 함께 흔들의자에 앉아 책을 뒤적이며 옆에 누워 애교를 부리는 반려견의 배를 쓰다듬어주는 내 모습을 상상했다. 이 모든 것이 멀지 않은 미래에 펼쳐진 내 모습 이리라.


막노동꾼 출신으로 서울대에 수석 합격을 한 장승수 씨가 쓴 <공부가 가장 쉬웠어요>라는 책이 있다. 삶이 얼마나 힘들었으면 책 제목을 그렇게 지었을까 싶은 생각이 들기도 했지만 처음 그 제목을 봤을 때엔 왠지 모를 거부감이 들었다. 적어도 나처럼 공부와 담을 쌓은 사람들에겐 그 말은 거의 '망언'에 가까웠다. 그런데 주식에 입문을 하고 얼마 되지 않은 시점에 갑자기 그 책 제목이 떠올랐다. 


나는 오늘 수많은 주식 투자자들로부터 돌 맞을 소리를 하게 될 것 같다.

"주식이 가장 쉬웠어요."


본문에 언급되는 종목들은 실제 제가 거래를 했던 종목일 뿐 종목 추천과는 무관함을 알려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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