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가 이래 보여도 상담 전문입니다만
'오늘도 무사히' 그리고 '오늘은 어떤 일이'
늦은 밤 출근을 하고 일을 시작할 무렵이면 공존하기 힘든 이 두 가지 감정이 항상 교차한다.
코로나19 사태가 장기화되면서 나타난 변화 중 가장 큰 것이 늦은 밤이나 새벽 시간대에 손님이 급감했다는 점이고 아울러 취객이 거의 없어졌다는 점이다. 업종에 따라 집합 제한이나 금지가 오랜 기간 지속되면서 나타난 당연한 결과이다. 사람 마음을 뒤집어 놓는 취객이 없어졌다는 점은 분명 환영할 일이지만 그런 평화를 누리기까지 매출 감소라는 엄청난 비용을 치르는 셈이니 장사꾼 입장에선 그게 마냥 유쾌한 일만은 아니다.
그날도 평온한 하루였다. 문이 부서져라 발로 차고 뛰어 들어온 그 여성 고객만 없었다면.
잔뜩 술에 취한 채 비틀거리며 들어온 그 여성은 혀 꼬부라진 소리로 다짜고짜 커터칼을 찾았다. 심야 시간에 커터칼을 찾는 사람이라고 해봤자 야간에 공사를 하는 업자들을 제외하곤 거의 없는 편이라 조금 의아한 감이 들긴 했지만 그래도 고객이 물어보니 어쩔 수 없이 문구 매대 쪽으로 안내를 했다.
거친 손길로 진열대를 뒤적이다가 카운터에 던지듯 내놓은 것은 공업용 커터칼이었다. 순간 뭔가 잘못되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여성 고객의 얼굴은 화장이 지워질 정도로 눈물로 범벅이 되어 있었다. '새벽시간에 만취한 여성이 울면서 공업용 커터칼을 사려한다.' 오랜 시간 장사를 하다 보니 나도 모르게 발달한 것이 육감이다. 무조건 말려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다고 어림짐작만으로 돈 내고 사겠다는 것을 막을 수는 없는 노릇이고 난감해하다가 겨우 생각해낸 것이 평소 하지 않던 친절 베풀기였다. 이런 상황에서는 상대방의 감정을 절대 건드리지 않아야 하고 최대한 아무렇지 않다는 듯 자연스럽게 말을 해야 한다. 자칫 잘못 일정한 선을 넘는 경우 흥분한 고객이 결제와 동시에 밖으로 나가는 순간 모든 것은 물거품이 될 수도 있다.
“포장지 제가 뜯어 드릴게요. 가지고 가봤자 쓰레기잖아요. 이거 그냥 버리면 되는 거죠?”
포장지를 대신 뜯어주고 최대한 시간을 끌며 눈물 좀 닦으라며 티슈를 건넸다. 필요하다면 물티슈라도 드리겠노라 말씀드리니 그제야 그 여성 고객은 말을 꺼내기 시작했다. 짧게나마 하는 얘기를 묵묵히 다 들어주었다. 역시 예상대로 남자 친구와 싸우고 홧김에 뛰어 들어온 게 맞았다. 한참의 시간이 흐른 후 흥분을 가라 앉힌 고객은 커터칼을 그냥 두고 나갔다.
하루가 지나고 비슷한 시간대에 그 고객은 다시 찾아왔다. 이번에는 혼자가 아닌 남자 친구와 함께였다.
"사장님, 어제는 정말 죄송했어요. 그리고 감사합니다." 라는 인사말을 시작으로 어제 있었던 일들을 비교적 상세히 이야기했다. 남자 친구와 다툰 후 너무 화가 난 나머지 남자 친구 앞에서 칼로 자해를 할 생각이었는데 칼을 사러 왔다가 내가 선한 눈빛으로 이야기를 다 들어줘서 화가 많이 누그러졌다고, 다시 오기 부끄러웠지만 남자 친구에게 꼭 소개하고 싶어 용기를 내서 왔다고 했다.
길게 말할 것도 없고 그럴 필요도 없었다. 말이든 행동이든 딱 한 번만 더 생각하고 실행에 옮기라는 말과 함께 두 사람이 오래도록 서로 사랑하며 살길 바란다는 덕담을 건넸다. 마스크를 쓰고 있어 내 눈빛만 봤기에 다행이지 험상궂은 내 얼굴까지 다 봤더라면 무슨 일이 일어났을지 생각만 해도 아찔했다. 두 고객이 나간 후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사실, 내겐 떠올리고 싶지 않은 기억이 하나 있다. 이 일을 시작하고 얼마 되지 않았을 때였다. 늦은 밤 서둘러 출근하던 중, 주차된 차를 타기 위해 아파트 숲길을 가로지르는데 50대 무렵의 아저씨 한 분이 벤치에 앉아 있는 게 보였다. 한겨울 그 시간대에 사람이 혼자 앉아 있는 것은 극히 드문 일이었기에 나도 모르게 시선이 그쪽으로 고정이 되었다. 그리고 잠시 후 그 아저씨와 아주 잠깐 눈이 마주쳤는데 순간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 살아오는 동안 단 한 번도 보지 못한 그런 눈빛이었다. 포기, 체념, 달관 그 어떤 단어로도 설명할 수 없는 슬픈 눈빛이었다.
출근 시간에 쫓기기도 했고 굳이 내가 다가갈 분위기도 아닌 것 같아 무심코 그냥 지나쳐 가게로 향했다. 아무 일 없었던 듯 일에 매달려 다음날 아침을 맞은 나는 충격적인 이야기를 들었다. 그날 새벽 우리 아파트에서 50대 아저씨가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는 소식이었다. 이웃주민도 아니고 우리 아파트와는 아무런 연고도 없는 분이라 했다.
그 얘길 듣고 한동안 자책을 많이 했다. 내가 그분께 조금의 관심이라도 보였다면 사고를 막을 수 있었을까? 그저 옆에 앉아서 하는 말이라도 들어줬더라면 그분이 생각을 달리 하지 않았을까? 후회가 막심했지만 이미 벌어진 일에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었다.
그 일을 겪은 후 나는 새로운 마음가짐을 가졌다. '아무리 보기 싫은 진상 고객이라 해도 이야기를 다 들어주자.' '했던 말 또 하고 했던 말 또 하는 만취 고객이라 해도 최대한 감정 상하지 않게 해서 돌려보내자.'라는 다짐을 했다. 때로는 부부싸움을 하고 뛰쳐나온 남자의 넋두리를 들을 때도 있고 또 때로는 집에서 쫓겨나 방황하는 청소년들의 이해 못 할 이야기들을 들어주기도 하는 등 고해성사를 받는 신부님 같은 기분이 들기도 하지만 그로 인해 그 사람들 마음이 편해진다면 그걸로 만족하려 한다.
지금 이 순간에도 말하지 못할 고민을 안고 사는 사람들이 많으리라 생각한다. 하고 싶은 말이 있어도 꾸역꾸역 참고 있는 분이 계실지도 모른다. 그분들께 말하고 싶다. 눈치 보지 말고 부끄러워하지 말고 당당히 말하시라. 내 얘길 들어달라고. 찾기 힘들면 나한테라도 하시길 바란다. 언제든 들어 드릴 테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