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쯤 그들은 어떻게 살고 있을까
"사장님, 혹시 이런 사람 본 적 있습니까?"
인근 국밥집 사장님이 내민 휴대폰 속 영상에는 낯익은 얼굴이 있었다. 최근 들어 새벽 시간에 가끔씩 라면을 먹으러 오던 20대 청년이었다. 한눈에 보기에도 옷을 갈아입지 않은 지 몇 주일은 된듯한 남루한 옷차림에 겨우 컵라면 하나만 먹고 힘없이 돌아가는 모습이 예사롭지 않아 기억에 남아 있던 터였다.
"방금 파출소에 접수하고 오는 길인데 혹시 이 사람 보면 꼭 좀 신고해주이소."
사장님 말씀에 따르면 인근 술집과 식당 앞에 쌓아 놓은 공병들이 며칠째 계속 사라졌고 CCTV를 통해 확인해보니 그 사람 짓이었다는 얘기였다. 그렇게 한 곳에서 많이 훔친 사람이 이 동네에 다시 오겠냐며 피해금액이 크지 않으니 포기하시는 게 어떻겠냐고 말씀드리고 일단은 알겠노라 대답했다.
며칠 후 내 예상을 뒤엎고 그 청년은 새벽 시간대에 우리 가게를 찾았고 커다란 가방 속에서 주섬주섬 공병을 꺼내기 시작했다. 그동안은 공병들을 다른 곳에서 팔고 그 돈으로 우리 가게를 찾았던 것 같은데 그날은 대담하게도 아예 한 자리에서 공병을 처분하고 라면을 먹기로 마음먹은 게 분명했다. 카운터 위에 놓인 공병들에는 선명하게 '업소용' 세 글자가 찍혀 있었기에 더 이상 의심의 여지는 없었다.
최대한 자연스럽게 공병을 매입하고 그 돈으로 라면을 계산한 후 자리에 앉았다. 해야 할 일을 다 하고 이제 신고만 남았는데 아무렇지 않게 전화기를 들 수가 없었다. 행위만 놓고 보자면 당연히 절도라는 범죄행위이고 신고하는 것이 당연한데 과연 내가 지금 신고하는 것이 옳은 일인가 마음속에서 갈등이 일어났다. 그렇게라도 먹고살겠다는데 그걸 막아야 하는 게 옳은 일인지 판단이 서지 않았다.
순간 오래전 우리 가게에서 일했던 영훈이(가명)가 생각났다. 가출해서 오갈 데 없이 방황하며 일자리를 찾던 중 나와 인연을 맺었던 아이였다. 여기저기 몇 군데 면접을 봤지만 초라한 행색 때문에 모두 거절당하고 마지막으로 찾은 곳이 우리 가게였다. 내 입장에서도 썩 달갑지는 않았지만 직접 행동으로 보여주겠다고 한 번만 믿어달라는 그 말을 차마 외면할 수 없어 받아들이고 일을 시키게 되었다.
비록 수시로 가불을 하긴 했지만 우려와 달리 영훈이(가명)는 일을 잘했었다. 이전에 했던 아이들과 비교해도 손색이 없을 정도로 열심히 했고 손님들로부터 칭찬도 많이 받곤 했다. 사건이 터진 건 일을 시작하고 3개월 남짓 되었을 때였다. 평소처럼 출근을 했는데 정작 있어야 할 영훈이(가명)가 보이지 않았다. 카운터 위에는 '사장님, 정말 죄송합니다.'라는 짧은 메모만이 놓여 있었다. 밤새 번 돈을 모두 들고 도망을 간 것이었다. 피해를 입은 금액도 금액이지만 믿음에 대한 배신이 너무 컸다.
몇 개월 후 기억이 잊힐 무렵 경찰서에서 걸려온 전화 한 통으로 영훈이(가명) 소식을 들었다. 담당 형사 말에 의하자면 PC방을 돌아다니며 절도 행각을 벌이다가 잡혔다고 했다. 여죄를 추궁하던 과정에서 우리 가게가 나왔고 확인차 전화를 한 것이었다. 처벌을 원하느냐는 물음에 하지 않았으면 한다고 말했지만 다른 범죄 규모가 너무 커서 구속을 면하기는 어려울 것 같다는 담당 형사의 말에 마음이 무거워졌다. 우리 가게를 떠나던 그날 바로 신고를 했더라면 그 뒤는 조금 달라지지 않았을까 후회가 밀려왔다.
'그래, 다시는 영훈이(가명) 같은 일이 일어나서는 안된다.' 결심을 하고 떨리는 손으로 전화기를 집어 들고 매장 내 창고에 들어갔다.
"네, OO파출소입니다."
"여기 OO동에 있는 GS25입니다. 주소는 OO동 XXX번지, OO상가 뒤편에 있습니다. 얼마 전 접수된 걸로 알고 있는데 OO동 공병 절도 사건 말입니다. 그 용의자가 여기 있습니다. 지금 라면 먹고 있는 중이니 5분 정도 뒤에 도착해주시면 고맙겠습니다."
갈 때 가더라도 먹던 건 마저 먹을 수 있도록 해주고 싶었다. 그게 내가 해줄 수 있는 마지막 배려였다. 잠시 후 경찰이 도착했고 청년은 모든 걸 순순히 인정하며 경찰차에 탔다. 어깨가 처진 채 문을 열고 나가는 그 뒷모습이 어찌나 처량해 보이던지 그날 하루 종일 마음이 불편했다.
뒤늦게 전해 들은 얘기에 따르면 그 청년은 부모님과 함께 피해 업주들을 찾아뵙고 진심으로 뉘우치며 사과 했고 사장님들은 별 다른 처벌을 원치 않는다는 뜻을 밝혀 간단한 조서 작성 후 훈방 조치되었다고 한다. 그 후로 오랜 시간이 흘렀지만 내 머릿속에 비교적 생생하게 남아 있는 두 얼굴을 떠올려봤다. 지금쯤 30대 중반이 되었을 두 사람은 어디에서 어떤 모습으로 살고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