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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르웬 Nov 23. 2021

사는 게 아무리 힘들어도

지금쯤 그들은 어떻게 살고 있을까

"사장님, 혹시 이런 사람 본 적 있습니까?"

인근 국밥집 사장님이 내민 휴대폰 속 영상에는 낯익은 얼굴이 있었다. 최근 들어 새벽 시간에 가끔씩 라면을 먹으러 오던 20대 청년이었다. 한눈에 보기에도 옷을 갈아입지 않은 지 몇 주일은 된듯한 남루한 옷차림에 겨우 컵라면 하나만 먹고 힘없이 돌아가는 모습이 예사롭지 않아 기억에 남아 있던 터였다.


"방금 파출소에 접수하고 오는 길인데 혹시 이 사람 보면 꼭 좀 신고해주이소."

사장님 말씀에 따르면 인근 술집과 식당 앞에 쌓아 놓은 공병들이 며칠째 계속 사라졌고 CCTV를 통해 확인해보니 그 사람 짓이었다는 얘기였다. 그렇게 한 곳에서 많이 훔친 사람이 이 동네에 다시 오겠냐며 피해금액이 크지 않으니 포기하시는 게 어떻겠냐고 말씀드리고 일단은 알겠노라 대답했다.



며칠 후 내 예상을 뒤엎고 그 청년은 새벽 시간대에 우리 가게를 찾았고 커다란 가방 속에서 주섬주섬 공병을 꺼내기 시작했다. 그동안은 공병들을 다른 곳에서 팔고 그 돈으로 우리 가게를 찾았던 것 같은데 그날은 대담하게도 아예 한 자리에서 공병을 처분하고 라면을 먹기로 마음먹은 게 분명했다. 카운터 위에 놓인 공병들에는 선명하게 '업소용' 세 글자가 찍혀 있었기에 더 이상 의심의 여지는 없었다.


최대한 자연스럽게 공병을 매입하고 그 돈으로 라면을 계산한 후 자리에 앉았다. 해야 할 일을 다 하고 이제 신고만 남았는데 아무렇지 않게 전화기를 들 수가 없었다. 행위만 놓고 보자면 당연히 절도라는 범죄행위이고 신고하는 것이 당연한데 과연 내가 지금 신고하는 것이 옳은 일인가 마음속에서 갈등이 일어났다. 그렇게라도 먹고살겠다는데 그걸 막아야 하는 게 옳은 일인지 판단이 서지 않았다.


순간 오래전 우리 가게에서 일했던 영훈이(가명)가 생각났다. 가출해서 오갈 데 없이 방황하며 일자리를 찾던 중 나와 인연을 맺었던 아이였다. 여기저기 몇 군데 면접을 봤지만 초라한 행색 때문에 모두 거절당하고 마지막으로 찾은 곳이 우리 가게였다. 내 입장에서도 썩 달갑지는 않았지만 직접 행동으로 보여주겠다고 한 번만 믿어달라는 그 말을 차마 외면할 수 없어 받아들이고 일을 시키게 되었다.


비록 수시로 가불을 하긴 했지만 우려와 달리 영훈이(가명) 일을 잘했었다. 이전에 했던 아이들과 비교해도 손색이 없을 정도로 열심히 했고 손님들로부터 칭찬도 많이 받곤 했다. 사건이 터진  일을 시작하고 3개월 남짓 되었을 때였다. 평소처럼 출근을 했는데 정작 있어야  영훈이(가명) 보이지 않았다. 카운터 위에는 '사장님, 정말 죄송합니다.'라는 짧은 메모만이 놓여 있었다. 밤새  돈을 모두 들고 도망을  것이었다. 피해를 입은 금액도 금액이지만 믿음에 대한 배신이 너무 컸다.


몇 개월 후 기억이 잊힐 무렵 경찰서에서 걸려온 전화 한 통으로 영훈이(가명) 소식을 들었다. 담당 형사 말에 의하자면 PC방을 돌아다니며 절도 행각을 벌이다가 잡혔다고 했다. 여죄를 추궁하던 과정에서 우리 가게가 나왔고 확인차 전화를 한 것이었다. 처벌을 원하느냐는 물음에 하지 않았으면 한다고 말했지만 다른 범죄 규모가 너무 커서 구속을 면하기는 어려울 것 같다는 담당 형사의 말에 마음이 무거워졌다. 우리 가게를 떠나던 그날 바로 신고를 했더라면 그 뒤는 조금 달라지지 않았을까 후회가 밀려왔다.


'그래, 다시는 영훈이(가명) 같은 일이 일어나서는 안된다.' 결심을 하고 떨리는 손으로 전화기를 집어 들고 매장  창고에 들어갔다.

웬만해선 겪고 싶지 않지만 장사를 하다 보면 어쩔 수 없이 접하게 되는 경찰청 문자

"네, OO파출소입니다."

"여기 OO동에 있는 GS25입니다. 주소는 OO동 XXX번지, OO상가 뒤편에 있습니다. 얼마 전 접수된 걸로 알고 있는데 OO동 공병 절도 사건 말입니다. 그 용의자가 여기 있습니다. 지금 라면 먹고 있는 중이니 5분 정도 뒤에 도착해주시면 고맙겠습니다."


갈 때 가더라도 먹던 건 마저 먹을 수 있도록 해주고 싶었다. 그게 내가 해줄 수 있는 마지막 배려였다. 잠시 후 경찰이 도착했고 청년은 모든 걸 순순히 인정하며 경찰차에 탔다. 어깨가 처진 채 문을 열고 나가는 그 뒷모습이 어찌나 처량해 보이던지 그날 하루 종일 마음이 불편했다.  


뒤늦게 전해 들은 얘기에 따르면 그 청년은 부모님과 함께 피해 업주들을 찾아뵙고 진심으로 뉘우치며 사과 했고 사장님들은 별 다른 처벌을 원치 않는다는 뜻을 밝혀 간단한 조서 작성 후 훈방 조치되었다고 한다. 그 후로 오랜 시간이 흘렀지만 내 머릿속에 비교적 생생하게 남아 있는 두 얼굴을 떠올려봤다. 지금쯤 30대 중반이 되었을 두 사람은 어디에서 어떤 모습으로 살고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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