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이름을 불러줘

by YS



출근길에 창밖을 바라보니 어느새 푸릇푸릇 해졌다. 여린 잎을 가진 나무들이 줄지어 서 있었다. 4월 첫 주만 해도 벚꽃축제, 진달래 축제, 꽃잎만큼 많은 사람들이 거리로 쏟아져 나왔었는데...... . 그 많던 꽃잎들은 어디로 갔나. 아파 보였던 그 나무도 여름이라는 옷을 입었을까.


봄이 나를 불렀는지 오랜만에 콧바람을 쐬고 집으로 가는 버스 안이었다. 한창 벚꽃이 필 때라 거리마다 꽃잎이 바람에 흩날려 들어왔다. 왼쪽도 오른쪽을 봐도 쭉 뻗은 꽃길.

“와, 예쁘다.” “저게 다 벚꽃인가? 꽃구경 안 가도 되겠네!” 여고생들의 감탄사와 찰칵거리는 카메라 소리. 봄 풍경에 취한 와중에 흰 껍질이 벗겨진 나무 하나가 보였다.


둥치에서 나무 윗부분으로 나뉘어 지는 굵은 가지 몇 개만 남겨두고 칼같이 잘랐다. 위에 판자를 놓으면 흔들림 없이 제자리에 놓일 정도로. 큰 와이(Y) 자 다발 같았다. 껍질이 희게 벗겨지니까 자작나무인가. 벚나무? 가로수로 많이 쓰이는 플라타너스? 가지에 잎이든 꽃이든 있어야 구분을 하지. 다 봄인데 혼자 겨울이었다. 외롭고 아파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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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선줄에 걸릴까 봐 가지치기를 너무 한 것인가. 전날 내린 비에 다 꺾인 것일까. 병들어서 옆 나무에 옮을까봐 다 쳐버린 걸까. 1980년대 플라타너스에서 1990년대에 은행나무로, 요즘 들어 벚나무나 이팝나무, 조팝나무로 바뀐 것처럼 가로수도 시대별로 유행하는 게 있다던데* 대체하는 과정에서 저렇게 잘라버린 것인가.



가로수는 도로 미화, 미기후 조절(주변 온도 조절)**, 대기오염 정화, 섬광 및 교통소음의 차단·감소, 방풍·방설·방시·방화 등의 방제 기능, 차량 주행 안전과 보행자의 쾌적함 보호를 위해 심는다.*** 개나리처럼 다년생 식물일 경우. 1년 이상 된 가지에서 꽃이 핀다고 한다. 모든 가로수가 다년생이지는 않겠지만 만약 오래된 가지에서 꽃과 잎이 피는 품종인데 ‘규격’에 맞춰서, ‘보기 좋게’ 하기 위해 네모반듯하게 잘라버린다면 그해 꽃은 피울 수 있을까. 잎만 무성하지 않을까. 나무도 자신과 닮은 어린 나무를 세상에 퍼트릴 의무가 있을 텐데, 사람에 의해 이름도 잃고 의지도 잃은 채 도로에 방치돼 있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기 전에는/ 그는 다만/ 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았다. //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 //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준 것처럼/ 나의 이 빛깔과 향기에 알맞는/ 누가 나의 이름을 불러다오./ 그에게로 가서 나도/ 그의 꽃이 되고 싶다. // 우리들은 모두/ 무엇이 되고 싶다. / 너는 나에게 나는 너에게/ 잊혀지지 않는 하나의 눈짓이 되고 싶다.” -김춘수 ‘꽃’-


사람들에 의해 이름을 잃어버린 너지만, 네게도 ‘이름’이 있었다. 봄이면 여린 싹을 틔우고 꽃이 피고 시간에 지남에 따라 붉고 노랗게 물들 ‘계절’이 있었다. 개인 의지가 아닌 타인의 의지로 인해 뺏긴 너의 시간은 누가 찾아줄까. 하얗게 꽃을 피워 사람들에게 사진을 찰칵찰칵 찍혔을 너, 회사 앞 가로수처럼 수많은 연둣빛 잎을 가진 나무를 생각한다. 울퉁불퉁한 가지를 가졌지만 꿋꿋하게 하늘을 이고 있는 하얀 나무는 누군가에게 하나뿐인 라임오렌지나무가 됐을지도 모른다.

나는 어떤 이름으로 불리고 있나. 사회가 지어준 이름 말고, 역할에 맞춰 명명된 것 말고 내가 가진 이름은 무엇일까. 나도 당신에게 꽃 같은 이름으로 기억되고 싶다. 잊히지 않고 두고두고 생각나는 존재가 되고 싶다.



* http://me2.do/GSwlStkz , 시선뉴스 정유현 기자 글 참조.

** 나뭇잎과 지표면으로부터의 증발산에 수반된 잠열에 의한 열에너지의 방출에 의해서 미기후를 조절하는 효과가 있다고 한다 (http://blog.daum.net/jang387/15890278). 쉽게 말하면 나무를 심으면 주변 온도를 낮춰주는 효과가 있다고 한다. 더운 여름에도 시원하게 지낼 수 있다.

*** http://blog.naver.com/soenaaa/50171936935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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