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상황은 의미가 있다

-19, 실행하는 생각과 행동의 견고함

by YS
09274495.jpg?type=w150&udate=20160218 김중혁의 '가짜 팔로 하는 포옹'


막차시간이라 다행이었다. 얼굴이 붉어진 불금족, 회식 피플 속에 내가 가려졌으므로. 포르노 회사의 직원과 배우라는 설정 때문에 놀라긴 했지만 사람이 사랑에 빠지는 상황을 잘 묘사해서 자꾸 생각난다.

사람들은 태어나면서부터 상황에 맞는 ‘폼’을 배우면서 살아간다. 학원 강사나 선생님의 일과, 회사원이 일하는 폼이 다를 것이고 기자와 동화작가가 쓰는 글의 폼이 또 다르며, 정치가와 세미나 강사가 하는 말의 폼도 차이가 있을 것이다. 일을 할 때도, 말을 할 때도, 글을 쓸 때도 각각의 ‘상황에 맞는 형식’에 담았을 때 효과가 극대화된다.



차양준은 포르노 회사의 상황 감독으로, 회사의 ‘가이드라인’에 맞춰 작품을 찍도록 감독과 스태프들을 관리 감독한다. 그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상황’. “상황과 전희와 섹스의 비율이 1대 1대 2여야”하고 상황이 “스무 개 아래면 위험하다”며 감독들과 알력 다툼을 벌인다. 촬영에 나오지 않는 송미를 설득하러 가서는 “모든 상황에는 일리가 있고 모든 상황엔 의미가 있다"라며 송미가 돌아와야 하는 이유를 통계 수치를 들어서 설명한다. 그에게 상황이란 돈이고 그를 성공으로 이끈 지표다.


화면으로 위로받는 외로운 남자들의 우상이자, 양준과는 달리 상황보다 이미지를 중시하는 오형수 감독은 춘하 프로덕션의 명감독이다. 대본과 상관없이 “자기의 감대로 찍을 것”이라 말하며 회사 방침을 어길 시 편집권을 가져가겠다는 양준의 말에 “너를 가위로 확 잘라서 발가락이 팔에 붙어 있게 편집할 수도 있다"라며 반박한다. 본인의 작품세계 안에서는 완전했으나 현실에서 그는 그 오만함 때문에 작품 두 개 중 한 작품에서 교체된다. 차양준은 말만 ‘다리에 부목을 대듯’ 단단한 것이 아니라 그것을 실행하는 생각도 행동도 견고했다.


자신이 출연하던 작품에서 갑작스럽게 잠수를 타던 송미에게 차양준은 ‘이야기’로 그녀를 설득시킨다. 회사가 보여주는 믿음이라며 그녀는 작품 속에서 얼굴을 보는 비율이 더 높은 배우며 악플 비율이 25%밖에 안 되는 배우라며 통계를 들어 설명한다. 강제적인 설득이 아니고 “하나만 답해달라, 그래야 송미 씨가 할 이야기를 만들어줄 수 있다"라며 차근차근 설득하는 그의 ‘목소리’에 송미는 마음을 열게 된다.


송미는 차양준의 목소리가 자꾸 생각나서 그에게 촬영을 마무리하겠다고 전화를 한다. 그의 이야기를 듣고 싶어 한다. 촬영에 복귀한 송미는 자신이 돌아온 이유가 그가 말한 통계가, 자신을 다른 관점에서 보는 게 재미있었다고 말한다. 상황 감독을 하기 위해 현장을 찾아온 양준에게 자신이 섹스 장면을 찍을 때 견디는 방법을 알려준다. 경사 길을 내려오는 ‘탁구공’을 떠올리면 흥분이 되고 그 시간을 견딜 수 있다고.


그녀의 촬영을 지켜보던 그에게 보이는 환한 송미의 미소. 그 순간 그녀가 그의 마음에 들어왔다. 자전거가 아닌 탁구공이 통, 통, 통. 그와 그녀가 공유한 비밀이 이제는 그들에게 새로운 시작이 되었다. 상황만 중시하던 차양준에게 그녀라는 새로운 폼이 생겼다. 촬영장에 돌아온 송미에게 이상한 통계가 아니고 근거가 있는 데이터임을 강조하며 “개인들이 모이면 어떤 방식으로든 흔적”을 남기며 “외로운지는 모르겠지만 그렇게 다들 서로의 위치를 확인한다"라고 답한 양준은 송미에게 향하는 자신의 마음을 찾았을까. 송미가 그에게 보낸 메시지를 확인했을까 궁금하다.


『가짜 팔로 하는 포옹』중 「상황과 비율」, 김중혁, 2015년 7월, 9쪽~5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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