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가 되어 행복한가?

by YS

나무가 되어 행복한가?


00003447.jpg?type=w150&udate=20131101 한강의 '내 여자의 열매'

출판 창비 발매 2000.03.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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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을 살아가면서 무언가가 참을 수 없을 만큼 괴로워지는 때가 있다. 내가 하고 있는 일, 생각, 앞으로 닥쳐올 일들이 무겁게만 느껴지는 순간. 나는 손을 놓고 싶은 충동을 느낀다. 나를 이 세상과 연결하고 있는 것들에서 자유로워지고 싶다. 그것은 무척이나 달콤한 유혹이다. 그러나 용기가 없어 벗어나지 못하고 항상 현실로 돌아온다. 일반적인 사람들이 죽음으로써 해방을 꿈꾼다면, 이 글의 주인공은 식물로 변함으로써 자신의 바람을 성취한다.



아내의 변화는 몸에 생기는 멍부터 시작한다. 이유도 모르게 멍이 피기 시작한다. 식물의 싹이 피듯이 멍은 아내를 동물에서 식물로 변화하게 한다. 녹색 멍. 그것은 무언가 원시적이고 신비한 기분을 느끼게 한다. 식물로 변하기 위해 아내가 존재했다고, 자연스러운 현상이라고 말하는 것 같다. 아내는 점점 밥보다 물과 햇빛을, 갑갑한 방보다는 바람을 원하게 된다. 피우지 못 했던 많은 채소들을 대신하는 것처럼 아내는 식물로 자라게 된다.


인간의 감각은 사라졌지만 아내는 세상을 자유롭게 인식할 수 있게 되었다. 아내가 남긴 열매는 아내의 죽음과 동시에 새로운 생명의 출현을 암시한다. 식물성의 완결을 보여준다. 한편으로 시고도 끝 맛이 씁쓸했던 열매의 맛은 아내의 삶과 남편의 삶을 말해주는 것 같다. 한없이 우울했던 사람들의 삶을 대변해주는 매체로 말이다.



자신의 몸에 흐르는 피를 갈고 싶어 했던, 끊임없이 세상으로부터 벗어나고 싶었던 아내는 식물이 되어서야 그 꿈을 이루었다. 화분에 갇힌 채소들처럼 갑갑한 아파트에 갇혔던 아내에게 세상은 답답하고 무섭고 박살 내고픈 것, 참을 수 없을 정도로 끔찍한 것이었다. 그런 세상을 벗어날 수 있는 기회를 버리고 남자를 택했지만 행복하지 않았다. 아내가 염오 감을 느낀 것은 무엇인가.


물론 처음에 염오 감의 대상은 그녀가 살고 있는 세상이었다. 바닷가에서 일생을 보낸 어머니의 삶이 되지 않기 위해 뛰쳐나왔다. 생활하기 위해서는 직업을 가져야만 했고 삶에 찌들어야만 했다. 그런 자신의 삶이 역겨워서 벗어나려 했다. 남자를 만나기 전까지는. 그 남자를 만나서 머리를 맞대고 화초처럼 지내고 싶었을 것이다. 자신과 다르지만 외로움을 가진 남자라면, 그녀를 감싸줄 수 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남편은 아내의 괴로움을 알지 못 했다. 남편 자신의 외로움을 달래 줄 사람, 놀라울 정도로 차분한 목소리를 가진 사람이 필요했을 뿐이다. 아내가 하루가 다르게 말라가는 동안에도 그는 자신의 행복한 삶만을 보고 있었을 뿐이다. 그 속에서 아내는 고통 속에서 식물이 된 것이다. 아무도 자신을 보지 않았으므로 아내는 존재하지 않았다. 이 글 속에서 진정으로 외로운 사람은 ‘나’가 아닌 ‘아내’다.

염오 감에 자신을 식물로 변화시킨 아내의 모습이 무척이나 슬퍼 보였다. 자신의 참모습을 보지 못하는 사람들에 둘러 싸여있다는 것은 얼마나 고독할까. 평온함을 핑계로 자기가 좋은 것만을 뽑아냈던 남자는 얼마나 어리석은가. 혹시 내가 또 다른 나무인간을 만들고 있는지도 모른다. 아니, 나도 나무가 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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