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근 후 책상에 앉았다.

by 뽀송드림 김은비

브런치북에 연재 중인 소설 다음 편을 올려야 하는데, 오늘은 도통 글이 써지지 않는다. 머릿속은 텅 비었고, 눈앞에는 매년 9월이면 어김없이 찾아오는 야간대학에 제출할 서류와 할 일 들이 쌓여 있다. 마음은 이미 소설 속 인물들과 함께 다음 이야기에 가 있는데, 현실의 나는 이 고단한 숙제들로부터 도망치고 싶다.


솔직히 말하면, 이럴 땐 내게 분신이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한다. 그에게 이 모든 서류와 공부를 떠맡기고, 나는 훌쩍 도망가 편의점에서 캔맥주나 사 마시고 싶은 밤이다. 모든 걸 잠시 멈추고 숨고 싶은, 그런 날.


하지만 이내 씁쓸한 웃음이 나온다. 도망갈 곳은 없고, 내게 분신도 없다. 이 모든 일은 결국 내 몫이라는 걸 잘 아니까.


어쩌면 이 고단한 시간들이 바로 내 소설의 다음 챕터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젊은 날의 무모한 도전 대신, 삶의 무게를 짊어지고 한 걸음씩 나아가는 한 사람의 이야기가 될 테니.


그래, 일단 하자. 서류 한 장, 책 한쪽을 넘기며 오늘을 살아내자.


빨리 졸업하고 싶다. 졸업 후에는 오랫동안 마음속에 품어왔던, 아무에게도 말하지 못했던, 그래서 더욱 소중한 단 하나의 계획을 실행할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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