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전 11시 정각. 창문 가득 쏟아지는 햇살,
하지만 내 정신은 여전히 밤샘 후의 몽롱함.
대학 과제는 미궁 속, 브런치 글은 서론만 붙잡고
키보드 앞에 굳은 채, 시계만 노려본다.
배에서 들려오는 꼬르륵 소리, 가장 현실적인 알람.
냉장고 문 열 힘도 없다. 믿을 건 싱크대 위,
너구리 한 봉지. 생존을 위한 최소한의 노력.
냄비에 물을 올린다. 타닥타닥 가스 불 소리가
잠깐의 쉼표를 허락하는 듯하다.
곧 주방 가득 퍼지는 정겨운 해물 냄새.
보글보글. 끓어오르는 물에 둥근 면과 스프 투하.
다시마 한 조각, 이 작은 배려가 얼마나 큰 위로인지.
4분 50초, 딱 그 정도의 기다림이 필요하다.
김이 모락모락, 얼큰하고 시원한 국물 색깔.
지친 눈에 들어오는 따뜻하고 강렬한 색채.
후루룩. 꼬들한 면발을 호호 불어 넘긴다.
단짠 매콤한 국물이 목을 타고 내려가자,
막혔던 혈관이 뚫리듯, 머릿속 아이디어도 슬며시 풀린다.
따뜻한 에너지가 온몸에 퍼지며, 다시 집중할 힘을 준다.
한 그릇을 비운다. 깨끗하게, 남김없이.
책상 위, 컴퓨터 옆에 놓인 빈 냄비가 나의 훈장이다.
자, 이제 괜찮아. 든든한 힘을 얻었으니.
남은 과제와 글을 마무리하고,
개운하게 오후를 맞이할 시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