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정 가까운 시곗바늘, 야간대학 강의실 불빛 뒤로 지친 귀가. 고요 속에 잠든 집, 현관을 밀고 들어선다.
주방의 작은 풍경, 설거지통에 쌓인 흔적들.
뽀얗게 우러난 국물 자욱한 사기그릇 하나, 라면의 기억. 밥알 몇 톨 눌어붙은 숟가락 옆에 놓여 '아, 사리곰탕 면을 먹었구나.'
방문 틈, 희미한 컴퓨터 불빛, 이어폰 너머 새어 나오는 '시험 범위'를 짚는 나직한 인강 소리.
중학교 3학년의 긴긴밤, 공부를 멈추지 않으려 재빨리 끓여냈을 간편한 위로. 뜨거운 국물에 밥까지 말아 후루룩, 든든하게 속 채우고 다시 화면 속 암기 노트에 눈을 박았을 네 모습.
말없이 먹고 간 것이 아니라, 집중을 놓치지 않으려 조용히 먹어치운 시간의 증거. 작은 어깨 위로 얹힌 예비 고등학생의 무게.
내일 아침, 뽀득뽀득 닦아놓을 이 그릇들에 묵직한 사랑과 응원을 담아두마.
오늘 밤, 이 늦은 귀가는 네가 남긴 사리곰탕의 따뜻함과 중3의 고독한 분투 덕분에 훈훈하게 잠이 든다.